자동차로 들어가는 천년의 휴양섬-고군산군도
오랜만에 선유도에 갔다.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가 생긴 뒤 처음 가 보는 여행이었다. 예전에는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여행길이었지만 이제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좋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역시 가는 길이 편해서 좋았고, 마구마구 개발되면서 사라지는 오래전 마을 풍경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대장봉에 오르면 고군산군도를 사랑하게 된다
고군산군도는 군산 앞바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57개의 섬을 일컫는 지명이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10곳이고, 그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풍경과 양식을 제공해 주는 무인도가 47곳이다. 유인도를 대표하는 주요 섬으로는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등 네 곳을 꼽을 수 있다. 이 섬들은 다섯 개의 다리와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다리는 군산시, 또는 부산군 변산에서 이어지는 새만금방조제이다. 이곳은 원래 바다였고, 방조제 도로가 생기며 연결되었으니 ‘다리’ 맞다. 새만금방조제길 중간쯤에 고군산군도로 들어가는 첫 번째 섬 신시도가 있고, 그 신시도와 무녀도를 연결하는 ‘고군산대교’가 있다. 무녀도 서쪽에 선유도가 있는데, 두 섬은 ‘선유교’가 연결한다. 또한 선유도와 거의 붙어있는 장자도는 ‘장자교’가 이어준다. 장자도는 본섬인 장자도와 옆 섬인 대장교로 분리되어 있는데, 두 섬 역시 대장교라는 이름의, 조그만 다리가 이어주고 있다. 서울 수도권 등 군산 북쪽에서 향하든, 광주, 부산 등 군산 남쪽에서 향하든, 고군산군도로 들어가는 길은 달리는 맛을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라 할 수 있다.
고군산군도 여행은 특별한 탐험 개념이 아닌 한, 주로 이 네 곳의 섬에서 이뤄진다. 여행자 취향에 따라 그 섬이 그 섬일 수도 있고, 4섬4색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물론 여행 앞에 ‘취재’와 ‘원고’라는 숙제가 붙어있으므로 어차피 전자를 선택할 여지는 없다. 고군산대교를 지나 군도로 들어선 내가 맨 먼저 들어간 섬은 장자도 중에서도 대장도이다. 먼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장도가 주요 섬 맨 안쪽에 있고, 그곳에 대장봉이 있기 때문이며, 그 대장봉에서 바라보는 군도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능력 있는 사진가의 작품을 통해 많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장도는 크기도 작고, 집도 몇 채 되지 않는 섬이다. 이 섬의 이름이 대장도가 된 연유는 크게 놀랍진 않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대장도에 나타나 ‘훗날 이곳에 크고 긴 다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 했고, 섬 주민들이 그 말을 믿고 이 섬을 ‘장자도’가 아닌 ‘대장도’라고 불렀는데, 훗날 이곳에 다리가 생겼고, 그 다리 이름이 대장교라는 것이다. 이토록 ‘재미없는 스토리’가 또 있을까, 싶었지만 대장도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저 짧고(대장교는 30m) 작은 다리의 역할은 한강의 한남대교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에 ‘재미’ 따위는 접어버리기로 했다.
대장도 길 끝에 있는 펜션을 냉큼 예약한 이유는 ‘내일 아침 대장봉에 올라 일출 사진도 찍고, 장자도, 선유도, 무녀도, 신시도의 전경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장봉은 진짜로 네 곳의 섬의 ‘대장’이라고 할 만한 ‘방점의 지점’이었다. 물론 네 곳의 섬 곳곳에 솟아있는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 하나하나가 특별하지만, 주관적으로는 대장봉이 최고였다. 다음날 아침, 펜션 창문에 붉은 기운이 비치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얼굴에 물만 바르고 해발 142.8m 대장봉에 올랐다. 대장도 본섬에서 볼 때는 뒷동산 같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길을 나서니 경사가 몹시 가파른, 만만치 않은 ‘거의 직선’ 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출 사진과 동영상 욕심’에 헉헉거리며 그 길을 오르며 계속 해가 뜨는 곳을 돌아보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일출 ‘순간’을 담을 기회는 없었다. 그저 솔잎 사이로 어른거리는 장면만 보았을 뿐이었다. 결국 정상 근처에 전망이 넓은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이미 솟은 태양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숱한 일출과 일몰 가운데 ‘군도’의 그것들이 유난히 예쁜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대비의 미학’이다. 섬이 몰려 있으니 섬과 섬의 사이의 간격이 적당하고, 이른 아침 출항하는 고깃배가 있고, 높은 지역에서 바라보니 바다와 하늘의 거리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일출 장면을 볼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여행의 중심지는 역시 선유도해수욕장
망주봉은 또한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갖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고군산군도의 선유도는 그저 오랜 세월 감춰져 있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 인기 여행지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선유도가 중세 한반도의 대중국 교류의 거점이자 당시 왕의 행궁이자 휴양지로 이용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추측’이 가능한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 때 망주봉 주변에는 왕의 행궁(송산행궁)이 있었고, 고려의 외교 관료가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정,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오룡묘, 그리고 자복사와 사신의 숙소인 객관도 이곳에 있었다. 선유도가 당시 중국과의 교류는 물론 왕의 집무공간,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이용되었다는 말이다. 사신들을 맞고, 그들이 머물던 곳이었으며, 왕의 행차도 간혹 이뤄졌다니 휴양과 놀이 문화도있었지 않았겠냐는 상상도 가능한 것이다. 아울러 망주봉 문화유적 안내문을 읽으며, 선유도 일대의 고려 문화 복원 작업이 진행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유도해수욕장을 걸었다. 깨끗하고 단단한 모래사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서해안 최고 반열의 해변이다. 해안선과 나란히 날아다니는 짚라인 이용자들의 모습에서는 이용자들의 짜릿한 즐거움이 전해지기도 했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또한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숲, 해안선을 침범하지 않은 상업 시설 등 휴양 해변으로서 썩 괜찮은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해수욕장 주변은 곧 시작될 피서철을 대비하는 정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명사십리 모래사장에는 벌써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해질녘 서해 감성에 빠져있는 연인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해안선 끝부분에 이르자 붉은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 해당화다. 데뷔 60년을 맞았다는 가수 이미자 선생의 대표 적인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섬마을 선생’ 가사에 등장하는 해당화는 매우 우아한 꽃이다. 활짝 벌어진 꽃잎과 그 중앙에 올라와 있는 노란색 암술, 수술의 색깔 대비에서 한복의 치마저고리를 연상했다. 해당화는 5월부터 7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색깔이 곱다고 만지거나 꺾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 꽃잎은 예쁘지만 꽃대에 작고 단단한 가시들이 촘촘하게 있어서 자칫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의 꽃말은 ‘이끄시는 대로’이다. 해당화 꽃밭 뒷편에 있는 선유3구에는 작은 포구와 등대, 방파제가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망주봉의 모습은 앞에서 바라보는 것과 또 달랐다. 방파제 끝에는 붉은색 등대가 서 있다. 여행 당시엔 그저 평범한 등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기도하는 손’의 모양을 한 ‘기도 등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등대 앞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고기 잡는 어선, 여행자들을 가득 실은 유람선, 낚시 다녀오는 작은 배들도 보였다. 선유도 일대의 대부분 포구에는 유람선 승선장이 있다. 고군산군도를 바다에서 바라보며 도는 배들이다. 공식적인 승선요금이 있지만 미리 전화를 하면 조금 깎아주기도 한다. 선유도 남쪽에는 옥돌해변과 해변데크 산책로가 있다. 선유도 명사십리해수욕장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물론 피서철이 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해변데크 산책로는 선유도 여행에서 꼭 걸어볼 만한 길이다. 바다를 끼고 걷는 느낌이 좋았고, 바로 앞에 둥둥 떠 있는 작은 무인도들의 모습도 예뻤다. 한 바퀴 천천히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으로, 사진을 찍고 사색하며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그 길 초입에 있는 옥돌해변은 작고 귀여운 해변이다.
▶날것의 느낌, 무녀도의 바다
무녀도 오토캠핑장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갯벌체험장이 있다. 바다가 갈라지는 해변이다.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동네 어부가 먼저 들어가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들을 걷어오고, 오토캠핑장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갯벌 체험 행사도 진행된다. 갯벌을 따라 들어가면 저 멀리 선유도 망주봉이 보이고 무능도에 입도할 수도 있다. 무녀도에도 작은 해변이 있다. 벌구미해변이 그곳이다. 역시 호젓한 해변이다. 무녀도는 날것의 느낌이 강한 섬이다. 캠핑장이 있고 광활한 갯벌에서 채취 체험을 할 수 있는 게 그렇고, 해안선에서 보이는 다소 거친 바다가 주는 감성일 것이다.
▶새만금과 고군산군도를 이어주는 높은 섬 신시도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안동수(다큐PD)]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4호 (19.06.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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