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복적 정의' 위한 교실 평화훈련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

2019. 6. 19. 09: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갈등 해결은 당사자들의 몫… 서로 받아들인 방법과 약속으로 피해 회복

“누가 할래?”

“저요!” “저요!” “제가 할게요.” “저번에 제가 먼저 하기로 했어요.”

“너희들은 누가 했으면 좋겠니?”

일러스트 김상민
우리 반에는 매일 갈등이 생긴다. 어떤 날은 적고, 어떤 날은 많지만 갈등이 생기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다. 올해부터는 갈등 당사자들이 원하면 학생들 중에 갈등을 중재할 진행자를 정한다. 물론 교사가 진행할 때도 있다.

진행자들은 당사자들과 동그랗게 앉아서 서클을 진행한다. 의자에 앉기도 하고 바닥에 앉기도 한다. 그리고 4개의 회복적 질문을 한다.

“무슨 일이야?” “어떤 피해가 생겼어?” “어떻게 피해를 회복할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사과나 보상의 방식 등 자발적 실천

진행자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심판을 하거나 강제를 발휘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한다. 회복적 질문이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갈등을 풀어나갈 방향을 제시한다. 진행자나 교사의 역할은 본인들이 원할 때까지 서클을 유지하는 것, 울타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이다.

회복적 질문에 따라 당사자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갈등의 실체와 그로 인한 피해를 직면한다. 또 피해를 회복하고 앞으로 서로가 지킬 약속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갈등을 풀든지, 끊든지 그것은 당사자들의 몫이다. 서로 받아들인 방법으로 피해를 회복하고, 서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정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 시간을 정해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서로의 관계는 어떤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회복적 정의.’ ‘회복적 생활교육.’ 2013년 3시간의 교사 연수를 통해 처음 들었던 말이다. 연수하는 내내 삶의 패러다임에 조금씩 균열이 갔고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교사로서 진정으로 원하던 패러다임과 방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은 잘못하면 그만큼의 벌을 받는 ‘응보적 정의’다. 아이들은 벌을 적게 받기 위해 물귀신작전, 변명, 물타기, 반항, 공격, 기계적인 인정과 사과, 침묵 등의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교사는 아이들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충분한 증언·증거·정황 등을 모으고 그것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결국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게 만들고 정해진 규칙대로 벌을 준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재발 방지를 기대하면서 이런 치열한 과정을 감내한다. 그런데 벌을 받는 아이들은 벌을 받은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난다, 피해를 본 아이들은 벌 받은 아이들이 자기에게 복수를 꿈꾸지 못할 정도로 강한 벌을 주지 않아 억울하고 불안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지고 회복하는 ‘회복적 정의’다. 회복적 정의는 자발적인 책임으로 피해가 회복돼 깨어진 관계와 공동체가 회복되면 정의가 회복되었다고 보는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어떤 일의 피해와 영향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목적은 갈등 상황과 그 맥락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당사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돕는 것이다.

피해와 영향이 확인되면 당사자들은 모든 에너지를 영향과 피해를 회복하는 데 집중한다. 사과나 보상의 방식, 내용 등을 자발적으로 정하고 실천한다. 그리고 이런 영향과 피해를 예방하고 원하는 관계가 되기 위한 약속을 정하고 행동한다.

물론 지금도 상황이 발생하면 아이들은 물귀신작전과 변명, 반항의 전략을 사용한다. 살아온 습관을 쉽게 벗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도가 예전과 같지 않다. 서클이 시작되면 비난과 평가가 거의 일어나지 않고 해결방법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구쟁이들이 약속을 지키려고 신경쓰는 것이 귀엽기까지 하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시간이 걸린다. 갈등을 건강하게 전환하느라 걸리는 시간이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분리시킨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방과후 시간 등 최소 10~20분이 확보된 시간에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서클을 진행한다.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교실 내 변화

응보적 생활지도와 비교하면 단일 갈등사안 처리 시간이 2배 이상은 걸린다. 대신 보이는 시간만큼만 걸린다. 응보적 생활지도는 처벌 후 아이들을 달래는 숨겨진 시간, 비슷하거나 더 강하게 반복되어 처리하는 시간과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거나 시간이 절약되기까지 한다. 같은 갈등사안이 반복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교사의 에너지도 절약이 된다. 사법권도 없는 교사가 갈등사안에서 감추려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부터 처벌의 수위를 정하는 것, 그것을 강제하는 과정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변화 없이 문제가 반복되니 소진되어 버린다. 반복되지 않도록 힘으로 누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도 흥부와 놀부 역할극을 하고 실제 친구들의 갈등사안을 응보적 정의로 다뤄보면서 했던 말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혼란스러워요” “어려워요”였다. 응보적 생활지도를 하며 내가 속으로 했던 말이다.

회복적 정의를 접하고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멋모르고 했던 첫 번째 실천이 학급도난사건 서클이었다. 도둑을 잡거나 물건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우리의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 모두가 만족한 시간이었다. 성과라고 하면 이후에 도난사건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 회복적 질문, 신뢰서클, 문제해결서클, 회복적대화모임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이런 실천을 통해 1년 동안 한마디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아이의 목소리를 신뢰서클에서 들었다. 강하게 침묵 전략을 쓰던 아이가 2학기에는 회복적 질문에 대답했다. 왕따로 고통받던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고 심지어 친구가 생겨서 학교생활 내내 웃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장애물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좋은 패러다임이어도 바쁘게 돌아가는 교육과정과 몰아치는 행정업무들 탓에 충분히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 교사 주도로 하다보니 겨우 학기 초와 말에 신뢰서클 한두 번, 나머지 기간은 회복적 질문으로 연명했다. 이런 암묵적 교육과정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올해는 학기 초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교육과정에 평화훈련을 편성했다. 지금까지 회복적 정의 이론교육, 문제해결서클 및 신뢰서클 체험, 역할극을 통한 회복적 질문 및 문제해결서클 실습, 소그룹 신뢰서클 실습, 진행자 훈련을 했다. 아직도 신뢰서클 설계 실습, 회복적 대화모임 체험, 비폭력대화 훈련 등 과정이 남아있다. 이렇게 실천하기까지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쉽지 않고 지름길은 없지만 가야 할 길이므로 나의 오랜 습관과 싸우며 가고 있다. 오늘도 가야 할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간 동료교사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이 길을 간다.

김호빈 경기 구리 인창초등학교 교사(실천교사 정책팀)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