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일본의 식물상도 가깝고도 멀더라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2019. 6.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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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역사의식의 대립으로 등 돌리게 되는 먼 나라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는 지척의 나라가 일본입니다. 일본의 식물상을 이해한다면 우리나라 식물상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기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고마가네 숙소에서 본 중앙알프스 풍경

조금 싱겁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은 문화도 식물상도 낯설지 않으면서 낯선 구석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것과 비슷하지만 다양한 변이가 나타나고, 우리나라에는 전혀 없는 식물도 아주 많이 분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중앙알프스(기소산맥)의 6월 초순 설경

일본의 중심인 혼슈 위주로 살펴본 결과 울릉도의 제주도의 식생이 함께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중앙알프스의 맞은 편으로 보이는 남알프스(아카이시산맥) 풍경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고지대 식물을 보러 나가노현 고마가네 시의 중앙알프스(기소산맥)를 먼저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케이블카라 부르는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간 그곳은 해발 3,000m에 가까운 고지대답게 아직도 설경이었습니다.

홀아비바람꽃과 비슷한 일본종의 군락

그 높은 곳에 사스래나무는 보이지 않고 거제수나무로 보이는 나무가 눈 속에 파묻혀 낮은 키로 자라는 모습부터가 좀 특이했습니다. 그 외에 눈향나무, 월귤, 담자리참꽃, 눈잣나무, 만병초 등으로 보이는 것이 간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백두산과 설악산에서도 자라는 장백제비꽃

하지만 우리나라의 것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공부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분비나무로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그건 잎이 비틀리며 자라는 점이 우리나라의 분비나무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송라

그런 식으로 우리 땅에서 자라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상 근처에는 암매가 자란다고 하는데, 가서 원 없이 사진 찍으며 놀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직 꽃이 덜 핀 풀산딸나무

그런데 이곳은 위험한 급경사의 눈길을 오르거나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도 있어서 신기했습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제지하거나 통제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죽거나 다쳐도 본인이 책임지는 제도, 정말 멋집니다.

가래나무 같지만 암꽃차례가 아래로 늘어지는 나무

설맹이 올까 봐 썼던 고글을 벗고 맞은편 남쪽 풍경을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올라온 높이만큼의 높은 산맥이 그쪽에도 널따랗게 겹겹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꽃차례가 위를 향하는 일반적인 가래나무

그곳은 남알프스라 불리는 아카이시산맥이라고 합니다. 북쪽에도 북알프스라 불리는 산맥이 또 있다고 합니다. 정말 희한한 산세를 가진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재선충 피해가 심각한 지역의 모습

로프웨이를 타고 도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와 거기서부터는 걸어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 식물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홀아비바람꽃을 닮았으나 조금 다른 일본 홀아비가 지천이었습니다.

야히코산

장백제비꽃처럼 설악산이나 백두산 쪽에서 자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연영초 같이 생겼는데 꽃 색이 다른 것이 있기도 했습니다. 송라를 발견했을 때는 장한 일이라도 해낸 양 기분이 좋았습니다.

산앵도나무 종류인데 꽃이 잎 위쪽에 달리는 나무

백두산 쪽 탐사에서도 보지 못했던 풀산딸나무를 발견했을 때는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아직 꽃이 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었습니다.

가래나무 같은데 잎이 좀 좁은 유형이다 싶었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가 암꽃차례를 수꽃차례처럼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기이한 삼나무 모습

마치 중국굴피나무처럼 날개 달린 열매를 맺는 나무라고 합니다. 저지대 쪽에는 정상적인, 아니 우리 눈에 익숙한 가래나무도 있었습니다.

삼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옻나무

재선충의 피해가 심각해 보이는 지역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일본도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그 전쟁터 모습이 자연의 본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흐름 앞에 인간의 간섭은 그저 일시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덩굴옻나무의 열매

니가타현의 야히코 신사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간 야히코산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식생을 만났습니다. 바다와 인접한 그곳에서 열매를 맺은 얼레지와 어린 덩굴옻나무가 함께 자라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상록성으로 보이는 괭이밥 종류

산앵도나무를 닮았으나 꽃이 잎 아래로 달리지 않고 잎 위쪽으로 달리는 나무도 제 눈에는 참 신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는 꽃대

일본은 어딜 가나 삼나무 천지입니다. 삼나무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고, 오래된 삼나무는 신목 대접을 받습니다.

여러 개로 갈라진 열매차례의 모습(꽃대)

쓰쿠바산 신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난타이산의 숲 속에도 거대한 자연산 삼나무 신목이 있습니다. 이날 날씨가 좋지 않아 비가 내리고 뿌연 안개구름 속이다 보니 더욱 신목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색감을 떠나 핸드폰 카메라가 더 잘 찍힌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했습니다.

잎 위에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 나무

어느 숲에서는 윗부분이 잘려 주변부에서 여러 개의 새 줄기가 올라와 곧게 자라는 삼나무 군락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두목(頭木) 또는 두절목(頭切木)이라고 하는 것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면 요리 음식점

재목을 다듬을 때 그 대가리를 잘라낸 나무토막을 가리켜 두목이라고 한답니다. 두목을 하고 나서 새로 자라난 줄기가 세월이 지나면서 거대해져서 장관을 연출하니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기이한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일본 인형

삼나무도 삼나무지만 이들 나무를 타고 오르는 커다란 덩굴옻나무에 신이 났습니다. 덩굴옻나무는 전남 여수시의 외진 섬에만 자생하는 나무여서 국내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나무입니다.

몇몇 수목원에 심어져 있는 것은 대개 미국산이라 약간 다른 종류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어린 열매까지 보게 되어 세상을 다 가진 양 기뻤습니다.

상록성으로 보이는 괭이밥 종류를 만났을 때는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다 꽃대를 만났을 때 또 한 번 기뻤습니다. 첫날 묵었던 숙소의 마스코트가 꽃대이고, 그곳의 노천탕에 꽃대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바로 옆이 여탕이라 카메라를 들고 갈 수 없어서 참아야 했습니다.

중앙알프스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도 꽃대를 발견했으나 확인할 시간이 없었기에 아쉬웠는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다시 발견한 것입니다. 꽃대는 모 박사님 도감에 서울 정릉에서 찍은 사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생지가 없는 식물로 여깁니다. 옥녀꽃대나 홀아비꽃대와 달리 꽃대는 꽃차례가 2갈래로 갈라지는 점이 특징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살펴보니 갈라지지 않아 한 줄기인 것도 있고, 여러 개로 갈라져 열매를 맺고 있는 것도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잎 위에 꽃이 피어 열매를 맺은 나무를 발견했을 때는 일본이 아주 먼 나라처럼 여겨졌습니다.

일본을 자주 못 가보는 견문 좁은 풀꽃나무 애호가로서 짧은 시간 가서 보고 느낀 일본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깨끗하게 잘 보존하는 듯한 나라, 오래된 건물이더라도 항상 관리하고 정돈하는 듯한 나라, 여럿이 모여 있어도 침묵하거나 조용조용 얘기하는 나라,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하이!"와 "아리가또!"를 외쳐대며 다가오는 나라, 서비스업 종사자건 마을 주민이건 눈빛만 마주쳐도 인사하는 나라, 과도해 보이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친절을 베푸는 나라였습니다. 그 안에 감춰진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선진국 같기는 한데 카드가 되지 않는 곳이 의외로 많은 나라, 젊은 사람 보기가 어렵고 아르바이트 종사자조차 고령자인 나라라는 느낌도 물론 함께 받았습니다.

사는 곳의 환경에 영향을 받고 적응해 사는 것은 식물뿐이 아닙니다. 사람도 그러해서 그 나라의 국민성이나 민족성의 형성에도 환경적 요소가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동양이면서도 특이한 일본의 산수(山水)가 지금의 식물상과 문화를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며칠 새에 현지화됐는지 한층 간사해진 발음으로 말하는 나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영어 공부보다 일본어 공부가 하고 싶어지니 큰일입니다. 그만큼 일본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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