롸잇 나우! 뉴트로 갬성..인싸들의 핫플 '돈화문로' [여행]

권이선 2019. 6.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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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원조 익선동.. 100년 전통, 현대식으로 재해석 / 저잣거리 누비는 모던보이·모던걸.. '개화기 데이트' 인기
걷는다는 건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다. 억겁의 몸을 입은 거리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그가 보내온 세월을 짐작하는 일이다.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안국역으로 이어지는 ‘돈화문로’는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루 수만명의 무감한 발걸음은 정체 모를 음식점과 금은방, 영어학원 등이 뒤섞인 풍경을 미로처럼 빠져나간다. 하지만 골목 안의 오래된 그림자를 두어 시간 천천히 따라가보면 이곳은 그 어느 거리보다 서정적이다.
◆서울 최고(最古) 한옥마을… 낡음은 아름다움으로

종로3가역에 위치한 익선동 일대는 요즘 가장 ‘핫’하고 ‘힙’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옥에 들어선 식당과 카페, 잡화점을 찾는 인파들로 평일에도 발디딜 틈이 없다. 그러나 단순히 예쁜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곳으로 치부하기엔 익선동은 너무도 특별하다. 서울의 ‘한옥마을’ 하면 흔히들 북촌이나 남산을 떠올리지만 ‘원조’는 바로 익선동이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서울 중심 노른자 땅에서 100년을 버티며 자태를 지켜왔다.

익선동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개발업자 정세권이다. 그는 ‘건양사’라는 주택 회사를 차려 1930년 무렵부터 익선동을 필두로 북촌, 서촌,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등 서울 전 지역에 도시형 한옥단지를 만들었다.
관광객들이 한옥의 모습을 간직한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이제원 기자
정세권은 단순한 집장사꾼이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차지한 경성 바닥에서 저렴한 가격에 집을 제공하며 조선 사람들의 주거권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조선물산장려회’ ‘조선어학회’ 등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를 후원하고 고문으로 활동했다. 이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재산을 강탈당하고, 세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이렇게 지어진 익선동의 한옥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한옥의 모습과는 다르다. 전통을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혁신적이다.
관광객들이 한옥의 모습을 간직한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이제원 기자
골목으로 짤막하게 튀어나온 추녀와 높이 달린 창문…. 3만여㎡ 면적에 집 110채를 다닥다닥 짓다보니 크기도 작다. 대신 행랑방과 장독대, 창고의 위치 등을 실용적으로 재배치하고 다락방과 지하를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수도와 전기가 들어왔고, 환기와 일조권 등 구조에도 신경 썼다.
 
어느덧 펼쳐진 저잣거리에 마음이 괜스레 들뜬다. 익선동은 복고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뉴트로(New+Retro)’ 그 자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가맥집 ‘거북이슈퍼’. 무너진 한옥 담이 야외 미술품처럼 보인다. 권이선 기자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카페 ‘식물’. 한옥 기와를 켜켜이 쌓아 만들어진 외벽이 특징이다. 권이선 기자
서울 종로구 익선동 초입에 위치한 ‘호텔 세느장’. 권이선 기자
한옥보존지구인 익선동에는 한옥의 겉모습은 보존하면서 내부 리모델링만 거친 가게들이 줄지어있다. 건물의 묵은 때를 벗겨 예술의 숨결을 더하며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그려낸다. 무너진 한옥 담과 벽의 못 자국 등 100년의 흔적은 운치 있는 미술품이 됐고, ‘동백양과점’ ‘익동다방’ ‘세느장’ ‘거북이슈퍼’ 등 예스러운 상점 이름들은 세련된 인상마저 풍긴다. 이곳의 터줏대감 카페 ‘식물’도 한옥 3채를 터서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거주하다 돌아온 사진작가 루이스 박이 한국도 곧 전통을 중시여길 것을 간파하고 아직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익선동에 문을 열었다. 수리를 위해 걷어낸 지붕을 켜켜이 쌓아 독특한 무늬의 외벽을 만들었고 한옥의 문을 떼어내 화장실 거울로 재단장했다. 카페 ‘식물’은 때로는 예술가들의 공연이나 전시가 이루어지는 오픈 스페이스로 활용된다.
1920∼1930년대 개화기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골목을 걷고 있다. 이제원 기자
망사가 드리워진 모자와 실크 드레스 차림의 ‘모던걸’, 정장 조끼에 서스펜더(멜빵)를 갖춘 ‘모던보이’가 골목 곳곳을 누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사의찬미’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한때 유행했던 ‘한복 체험’과 유사하다. 3시간에 3만여원을 내면 개화기 의상을 입고 인근 관광은 물론 대여점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익선동에서 시작된 ‘개화기 체험’은 전주 한옥마을, 경주 첨성대 일대, 인천 차이나타운 등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삼겹살과 갈매기살 등을 파는 고기골목이 나온다. 초입에 바로 보이는 ‘광주집’을 시작으로 총 10여개 점포가 삼각주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골목 사이로 비껴 들어온 저녁 햇살을 맞으며 연기를 피우고 고기를 굽는 사람들 얼굴엔 생기가 넘쳐흐른다.
종묘 돌담과 노변 상점들이 죽 이어진 서울 종로구 서순라길 전경. 이제원 기자
◆돌담 따라 걷는 비밀 산책로, ‘서순라길’
 
시끌벅적한 골목을 빠져나와 바로 옆 ‘서순라길’도 걸어보자. 조선시대 치안을 담당했던 순라군(巡邏軍)이 야간에 종묘를 순찰하던 길이다. 종묘의 서쪽에 위치한 서순라길은 종묘공원 입구에서 담장을 따라 창덕궁 앞길인 율곡로까지 이르는 800m 거리다.
 
익선동과 골목 몇 개를 사이로 두었을 뿐인데 서순라길의 시간은 유독 천천히 흐른다. 종묘 안을 지키고 있는 100년 넘은 갈참나무들이 기와를 넘어와 큰 그늘을 드리우고, 돌담과 가로수 사이로 남산서울타워가 보여 덕수궁 돌담길 못지않은 운치가 있다. 허름한 구멍가게와 상패사, 철물점 등 오래된 상점들과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카페와 식당, 공방들이 어우러진다. 예쁜 가게 몇몇이 들어서긴 했지만 아직은 외부인의 손이 덜 미친 비밀 산책로 같은 곳이다.
종묘 연못 사진이 붙은 서울 종로구 서순라길 돌담 아래 빨간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이 자리는 노천 술집 ‘예카페’의 한 좌석으로, 넷플릭스 영화 ‘페르소나’에서 아이유와 정준원이 와인을 마시던 자리다. 이제원 기자
길 초입에는 최근에 나온 넷플릭스 영화 ‘페르소나’ 중 ‘밤을 걷다’에서 아이유와 정준원이 와인을 마신 노천 술집 ‘예카페’가 있다.
 
한옥의 지붕을 그대로 간직한 ‘살롱순라’도 가볼 만하다. 라일락과 장미로 둘러싸인 테라스에서 식사와 함께 와인과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끝자락에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홍어요리 전문점 ‘순라길’이 위치한다.
한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종로구 서순라길에 위치한 한옥 형태의 상점 앞을 지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순라길’을 지나 길 끝에 이르면 안국역 인근에 위치한 창덕궁 돈화문이 고개를 내민다. 후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창덕궁은 서울에서 종묘 다음으로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북악산과 응봉산 자락에 터를 잡은 궁궐은 1405년 조선 태종에 의해 세워졌다.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조선 왕조의 이궁(離宮)이다. 창덕궁의 백미는 후원. 후원은 창덕궁 뒤편에 자리한 정원이다. 후원의 아름다움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데 있다. 후원 안쪽에 자리한 계곡인 옥류천은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 수로를 굴곡지게 해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 시를 한 수 읊는 놀이)’을 즐기던 곳이다.
 
이 아름다운 서순라길도 한때는 흉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일대가 1950년대 후반 우범지대가 되면서 정부는 서순라길을 폐쇄했고, 돌담 바로 앞까지 판잣집이 밀고 들어와 돌담에다 도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40여년간 방치되다 1995년 이후 도로 개설 공사와 돌담 복원 등을 거듭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서울돈화문국악당 국악마당 전경. 권이선 기자
◆국악이 흐르는 길, ‘국악로’
 
돈화문로는 ‘국악로’로도 불린다. 이름에 걸맞게 국악강습소, 국악기 판매상, 전통 한복점들이 즐비하다. 이 지역이 국악의 성지가 된 것은 ‘요정’과 관련이 있다. 익선동 북쪽 길은 광복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 요정정치와 기생관광의 중심지였다.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오진암’도 이곳에 있었다. 요정에서 일하던 기생들은 익선동 일대에 집을 얻어 옷을 지어 입고, 교습소에서 민요 가락을 배우며 밤낮으로 장구와 가야금을 연주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국악마당에서 한 시민이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권이선 기자
오진암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익선동에 묻어 있는 가락 소리는 여전하다. 창덕궁 건너편의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대표적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들어선 부지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유소가 있었다. 서울시는 창덕궁 일대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2009년 이 부지를 매입해 서울돈화문국악당을 준공했다. 이 국악당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건축음향(자연음향) 국악 전문 공연장이다. 음향장치 등 별도의 확성 없이 보다 청명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140석의 객석은 무대와 가까워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꼭 공연을 관람하지 않더라도 가볼 만한 곳이다. 전통 한옥과 현대 건축 양식이 혼합된 공간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푸른 잔디로 조성된 국악마당에서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음료와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글=권이선 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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