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무형문화재를 찾아>천연염료 잎·송화 꽃가루.. "비단꽃에 벌·나비가 날아들죠"

이경택 기자 2019. 6. 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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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채화장 보유자가 인두로 실크를 지져 꽃잎을 만들면서 궁중채화 제작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밀랍과 깃털로 만든 새.

(12) 황수로 채화장 보유자

생화 장식 금지하던 조선 궁중

비단·모시로 만든 꽃으로 단장

19세기 이후 맥 완전 끊기고

남아있는 건 어사화 몇 점뿐

복원위해 대학원서 역사전공

2004년 덕수궁서 특별 전시회

진짜 꽃과 똑같아 관람객 찬탄

전승 위해 사재로 박물관 지어

2004년 덕수궁 중화전의 야외 월대에서 세계박물관대회 특별기획전으로 궁중채화를 전시했을 때 일이었다. 비단과 밀랍, 종이 등의 재료로 만든 조화인 채화(彩花)의 현란함도 눈부셨지만 채화를 실제 꽃으로 착각한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에 관람객들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채화는 ‘가화(假花)’입니다. 그러나 시중의 여느 조화와 달리 진짜 꽃의 느낌과 향기가 살아있어요. 모든 재료가 천연이기 때문이죠. 꽃잎·열매·뿌리 등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염료를 쓰고 꽃술의 꽃가루에는 송홧가루를 묻히고 꿀을 바릅니다. 벌과 새의 몸통은 밀랍으로 만들고, 새의 깃털은 실제 깃털을 사용하죠. 벌과 나비가 몰려드는 것도 그 때문이죠.”

황수로(83) 박사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채화장(彩花匠) 보유자다. 경남 양산의 동부산CC 회장이자 동국대 석좌교수인 황 보유자를 지난 7일 동부산CC 입구에 있는 궁중채화연구원에서 만났다. 연구원 앞에는 오는 9월 21일 완공 예정인 ‘한국궁중꽃박물관’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채화는 궁중의 꽃장식과 연회, 의례 등에 사용되던 비단, 모시 등으로 만든 꽃을 말한다. 생화 장식을 금하던 궁중에서 행했던 장식법 중 하나다. 최근에는 몇 차례 전시를 통해 채화가 어떤 것인지 많이 알려졌지만 황 보유자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만 해도 문화계 인사들에게도 채화는 낯선 분야 중 하나였다.

“원래는 젊은 시절 생화를 이용한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전시회도 많이 했죠.그런데 어느 날 가위로 꽃줄기를 잘라내는데 붉은 액체가 주르륵 흐르는 거예요. 피 같았습니다. 문득 깨달음이 왔어요. 그동안 나무를 많이 잘랐는데 잘라낸 것보다 더 많은 꽃을 심고 만들겠다고요. 한 30여 년 전 일입니다.”

마침 외조부가 궁에서 일을 보시던 분(궁내부 주사)이어서 종이나 비단으로 꽃을 만들어 상에 올리는 모습에 익숙해 있었다. 자연스럽게 채화에 이끌렸다.

“어려웠습니다. 조선 시대 궁중채화는 19세기 이후 맥이 끊긴 상태였죠. 옛 궁중채화처럼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남아 있는 것이 없었어요.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어사화(御賜花·조선 시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 몇 점이 전부였어요. 복원을 위해서는 옛 기록을 뒤져보는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하게 됐죠.”

황 보유자는 이화여대 가정학과 출신이다. 그러나 동아대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모두 역사를 전공했다.

그의 채화 작품이 덕수궁 중화전 전시 등 몇몇 전시를 통해 알려지며 국내외에서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아름다운 한국 궁중채화전’에서는 프랑스 궁정에 4대째 꽃을 납품해 온 가문의 플로리스트&깃털 세공인 브루노 르제롱(Bruno Legeron)이 초청돼 동서양의 꽃문화를 함께 펼쳐 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2017년 7월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한 청와대 국빈 만찬장에 전시된 화려한 궁중채화도 황 보유자의 작품이었다.

“채화 복원작업을 하며 역시 가장 힘든 것은 ‘원본’ 없이 의궤 기록만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채화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보존상의 문제 때문이었을 겁니다. 채화는 밀랍 등 천연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온도, 습도 등 환경에 민감해요.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짓게 된 것도 우리 후손에게 채화의 아름다움을 계속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상 2층 연면적 920㎡ 규모로 건립되는 ‘한국궁중꽃박물관’ 1층에는 도구 전시실을 비롯해 밀랍실, 문헌자료실이, 2층에는 수장고와 특별전시실, 명품서화전시실이 들어선다. 2층 주 전시장에는 고종 정해년(고종 24년) 만경전에서 열린 신정왕후 조대비 팔순잔치 상차림인 ‘고종정해진찬(高宗丁亥進饌)’이 채화로 장식돼 차려진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인 통도사 동원 스님,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0호인 이재순 석장, 대구중요무형문화재 이종환 창호장, 김규영 대한민국 목조각 명장 등이 참여, 땅 매입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에 걸친 대공사를 벌였다. ‘한국궁중꽃박물관’은 세계 유일무이한 궁중채화 전문박물관이다.

양산 = 글·사진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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