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무릎꿇린 '아마존의 황제'

부에노스아이레스/안상현 특파원 2019. 6.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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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석권한 전자상거래업체] 99년 창업 아르헨 '메르카도 리브레'
부에노스아이레스=안상현 특파원

지난달 13일 오후(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 번화가 팔레르모 거리. 화창한 가을 날씨(남반구에 속하는 아르헨티나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 아래 노천 카페에 많은 시민이 앉아 있었지만, 거리에는 정적이 흘렀다. 카페에 앉은 시민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켜놓은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하길래?" 하는 궁금증에 옆 테이블에 앉은 30대 남성의 스마트폰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봤더니 현지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메르카도 리브레(Mercado libre)' 앱(app·애플리케이션)이 켜져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시민들도 모두 같은 앱에 접속해 '모바일 쇼핑'을 하고 있었다.

이날은 아르헨티나 전자상거래회의소가 매년 진행하는 온라인 상품 할인 행사 '핫세일(Hot Sale) 2019'의 첫날이었다. 3일간 진행된 이 행사에 5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정가보다 20~50% 낮은 가격에 물건을 판매했다. 아르헨티나판 '블랙프라이데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3일간 1690만명이 메르카도 리브레를 방문했다. 아르헨티나 전체 인구(약 4510만명)의 37.4%다. 메르카도 리브레의 시장디렉터인 에르난 스토이사씨는 "설탕부터 노트북까지 세일 기간에 팔린 상품만 100만개 이상"이라고 밝혔다.

세계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이름 높은 업체는 미국의 아마존(Amazon)이다. 하지만 정작 아마존 밀림이 있는 남미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기업 메르카도 리브레가 중남미 지역을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카도 리브레가 진출한 중남미 국가는 브라질, 멕시코, 칠레 등 18국에 달한다. 미국 인터넷마케팅업체 컴스코어(Comscore)에 따르면, 작년 2월 기준 중남미 지역 온라인 구매자 중 47.4%(5620만명)가 메르카도 리브레를 이용했다. 16.6%(1972만8000명)로 2순위를 차지한 아마존과 비교하면 거의 3배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다. 올해 초 기준 메르카도 리브레의 등록 이용자 수만 2억7400만명으로 중남미 전체 인구(약 6억5700만명)의 41.7% 수준이다.

남미 시장 장악한 아르헨의 '유니콘'

미국 벤처 업계에서는 기업 가치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의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신생 회사)을 '유니콘(Unicorn)'이라고 부른다. 0.07%의 신생 회사만 달성한다는 관련 통계에 근거해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전설의 동물에 빗댄 것이다. 메르카도 리브레는 남미의 '유니콘'이다. 지난 2007년 8월 중남미 기업 중 최초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당시 1주당 가치는 18달러에 불과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은 604.49달러(7일 종가 기준)로 치솟았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298억1300만달러(약 35조3433억원)로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기업 트위터(291억5400만달러)보다 높다. 아르헨티나 기업 중 제일 높은 몸값이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국영 에너지 기업 YPF의 시가총액은 56억달러에 불과하다.

중남미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메르카도 리브레'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르코스 갈페린(47). /아르헨티나 매체 '디아리오(Diario)26'

메르카도 리브레의 시작은 닷컴 열풍이 일던 1999년이다. 현 최고경영자(CEO) 마르코스 갈페린(47)이 JP모건 파트너스·골드만삭스 등 미국 투자사들로부터 받은 투자금 760만달러로 아르헨티나에서 창업했다. YPF에서 일했던 갈페린이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은 직후였다. 메르카도 리브레의 롤모델은 1995년에 설립된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eBay)였다. 이베이는 2001년 9월 메르카도 리브레의 지분 19.5%를 인수하면서 대주주가 됐고, 2016년 지분을 매각하기 전까지 독점 파트너로 함께했다. 메르카도 리브레의 첫 사업 모델은 중고 물품 경매였지만, 지금은 일반 생활용품부터 자동차, 선박, 항공기, 부동산 등 모든 상품을 파는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했다.

시장 지배 비결은 공격적인 사업 확장

닷컴 버블 때 창립된 메르카도 리브레는 전자상거래의 불모지였던 중남미 지역에서 개척자로서의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아마존이나 중국의 알리바바 같은 강력한 외부 경쟁자들이 중남미 시장에 진출했는데도 아성을 지키고 있는 비결은 따로 있다.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통한 시너지다. 여러 회사들을 인수해 만든 자회사 메르카도 파고(Mercado Pago)와 메르카도 엔비오스(Mercado Envios)가 대표적이다.

브라질 상파울루주(州) 외곽의 카자마르에 세워진 '메르카도 리브레' 물류센터. 올해 3월 문을 연 이 물류센터의 크기(11만1000㎡)는 축구장 15개를 합친 것만 하다. /jeonline.com.br

2004년 설립된 메르카도 파고는 미국의 페이팔(Paypal) 같은 핀테크(FinTech) 업체다. 가상 계좌와 애플리케이션, 선불카드 등을 이용해 손쉬운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47.9%(3억1500만명)에 달하는 중남미 특성상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필요 없는 전자결제 시스템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올해 1분기 메르카도 파고를 통해 지불된 금액은 56억달러(약 6조6091억원), 거래량은 1억4390만 건에 달했다. 최근에는 아르헨티나 북서부 도시 코르도바에 6000㎡ 규모의 핀테크 사업용 인공지능 개발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무기 메르카도 엔비오스는 물류 업체다. 현지에 물류 창고를 세워 저렴한 비용으로 거래 물품을 배송한다. 올해 1분기 메르카도 리브레에서 팔린 상품 8280만개 중 6240만개가 메르카도 엔비오스를 통해 배송됐다. 중남미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는 그 자체로 시장 진입장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지 물류 창고를 통한 배송은 기업 경쟁력을 더한다. 특히 최근에는 총매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브라질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멕시코 시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브라질 상파울루 외곽 카자마르시(市)에 축구장 15개를 합친 규모(11만1000㎡)의 물류센터를 세워 운영을 시작했고, 이번 달에는 멕시코 북쪽 테포초틀란시에 세운 10만㎡ 규모의 물류 창고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앞서 있던 현지 창고 규모의 각각 2배, 3배가 넘는 규모다.

메르카도 리브레는 2년 전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소기업에 영업자금을 대출해주는 자회사 메르카도 크레디토(Mercado Crédito)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며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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