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 '대여료' 뜯으며 '공유 경제'로 포장하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2019. 6. 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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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이것은 공유경제인가 대여경제인가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Thank you for Sharing your husband with me."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그린 북(Green Book)>의 마지막 장면, 피아니스트 돈 셜리가 차량 기사 토니의 부인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당신 남편을 보내줘서(빌려줘서) 고맙소" 미국 남부 투어 2개월간 남편과 떼어놓고 운전기사로 써먹었으니 당연히 미안하고 고마울 터이다.

여기서 'Sharing'이라는 단어는 ‘보내주다’ 또는 ‘빌려주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사람을 빌려준다는 말이 이상하므로 ‘보내주다’라는 번역이 훨씬 자연스럽겠다. 그런데 만일 일군의 집단이 저 대사를 이렇게 번역한다면 어떨까? "당신 남편을 나와 공유해줘서 고맙소."

Sharing Husband 뜻은 ‘남편 공유’?

영화에 돈 셜리 박사가 동성애자임을 암시하는 장면이 잠깐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 대사를 놓고 부인과 보스(Boss)가 '남편을 공유’한다고 번역하는 건 넌센스다. 그런데 한사코 이 단어를 ‘공유’라는 말로 번역하려는 집단이 있다.

그런 집단이 어디 있겠냐고? 안타깝게도 이 나라 정부 지도자들과 재벌 총수들이 그런 집단에 속해 있다. ‘Sharing’이란 단어는 ‘빌려주다’라는 의미로 자주 쓰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단어를 ‘공유’라고 번역하는 집단, ‘공유 경제(Sharing Economy)’의 전도사들 말이다.

이들이 말하는 대표적인 공유 경제의 사례인 카쉐어링(Car Sharing)을 들여다보자. 미국의 우버(Uber), 동남아시아의 그랩(Grab), 한국의 타다(TADA)에 사용되는 차량은 과연 ‘공유’되는가? 이 차량들은 이미 개인 소유의 차량(우버, 그랩)이거나 특정 기업(타다)이 소유한 차량이다. 공유라는 개념과는 애시당초 관계가 없다.

공유경제 전도사 그룹에는 재벌 총수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최근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이 "밀레니얼 세대는 이제 자동차 소유가 아니라 공유를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럼 현대차그룹이 '차량 공유’를 위해 하는 일이 뭘까? 동남아시아의 우버라 할 수 있는 그랩에 투자한 것 정도이다. 이게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공유’란 말인가.

‘공유’라고 한다면 동네 놀이터나 공원처럼 내가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는 경우에 쓰는 개념이다. 하지만 카쉐어링의 경우 정확히 말하면 개인 또는 회사의 차량을 (운전기사까지 함께) 잠시 빌려서 쓰는 개념이다. 여기서도 ‘쉐어링(Sharing)’은 공유가 아니라 빌려쓰기로 번역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 지난 2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서 이재웅 쏘카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봉이 김선달, 이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자

그러니 외국에서 도입해온 Sharing Economy라는 말은 ‘공유경제’가 아니라 ‘대여경제’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훨씬 정당하다. 실제로 우버·그랩·타다 서비스를 요청한 뒤에 차를 잠시 얻어서 타고 ‘대여료’를 지불하지 않는가.

실제로 한국의 ‘타다’ 서비스의 실체는 차량을 빌려주는(!) 렌트카 사업이다., 렌트카 사업인데 차량 기사까지 딸려오는 게 합법이냐고? 바로 여기에 타다 사업주의 번뜩이는 재치(?) 기존 제도의 허점을 활용한 대목이 있다. 11~15인승 차량을 대여할 경우에 한해 기사까지 함께 알선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예외규정은 본래 관광지에 여러 명이 함께 와서 큰 차량 1대를 렌트했는데, 하필이면 1종 면허를 소지한 이가 아무도 없을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둔 조항이다. 그런데 타다 사업주는 이 예외조항을 기가 막히게 활용해 11인승 카니발로 사실상의 택시 사업을 만들어낸 거다.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봉이 김선달과 같은 일이 ‘혁신’으로 포장되어 있는 거다.

카 쉐어링과 함께 소위 ‘공유경제’의 사례로 빈번하게 인용되는 에어비앤비(Airbnb) 사업 역시 누군가 이미 배타적인 소유권을 확보하고 있는 집 내지 공간을 ‘빌려주는’ 서비스이지 그 공간을 ‘공유’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부터 시작하자. 공유경제는 대여경제로, 카쉐어링은 차량대여업으로, 에어비앤비는 부동산대여업이라고 말이다. 차량과 부동산을 빌려주고 그 지대(Rent)를 받아 이윤을 챙겨가니 이거야말로 렌트 이코노미, 대여경제란 이름이 적절하지 않은가.

공유경제 할 거라면 제대로 하자

몇몇 지자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카쉐어링을 독립적으로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적어도 이 차량들은 개인 또는 회사의 소유가 아니라, 지역민의 세금으로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해 확보한 공유(!) 자산들이다. 이런 차량들을 저렴한 가격에 시민들에게 대여하는 것이야말로 지역 도서관이나 생활체육센터와 같은 공유경제 개념에 훨씬 적합하다.

요즘 핫 이슈가 되어 있는 택시 사업도 마찬가지다. 승차 또는 배차 거부나 불친절한 서비스는 대부분 이들 택시기사들이 사납금 채우기에도 급급하거나(법인택시) 생활임금보다 턱없이 낮은 벌이로 내몰리는(개인택시) 문제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그 해법이 ‘타다’와 같은 민간 자본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사실상 면허 없는 택시사업을 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있을까?

비록 이상주의라는 욕을 먹을지언정 완전월급제에 기반한 택시공영제라는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일 택시 서비스가 버스·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과 조화를 이루며 시민의 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에 우버·그랩·타다가 활용하는 플랫폼 앱 서비스를 가미하면 훨씬 완벽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

버스·지하철이 커버하기 어려운 시간대나 지역, 혹은 대량의 짐을 함께 이동해야 하는 경우 또는 이동권 약자들이 이동해야 하는 경우에 택시 서비스는 충분히 버스·지하철을 대체하는 대중교통으로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버스·지하철보다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경우에는 약간의 할증요금을 붙여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 또는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가 플랫폼 앱을 개발해 보급하고, 이 앱에 기반해 움직이는 공영 택시 서비스를 도입한다. 법인 택시에 지급해온 보조금을 출자 내지 지분으로 전환하여 지속적으로 법인 택시를 공영 택시 시스템으로 유도한다. 당연히 공영 택시 기사들의 경우 완전월급제를 시행하되 승차·배차 거부를 할 수 없도록 규칙을 적용한다.

개인택시의 경우 면허를 팔고 공영 택시 기사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지속적으로 개인택시 사업을 지속할 자유와 권리도 보장한다. 개인택시를 지속하는 이유는 택시 기사들 평균적인 벌이에 비해 더 많은 소득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만일 현실이 반대로 작동한다면 공영 택시 시스템으로 합류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공상이 아니다

이런 모델은 엄밀히 말하면 공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해외의 몇몇 지자체들이 선도적으로 시행한 경험도 있고, 해외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의 몇몇 지역에서도 '100원 택시'. '1000원 택시'와 같은 사실상의 공영 택시 서비스가 시도된 바 있다. 비슷한 취지에서 '무료버스'와 같은 진보적인 실험도 시행된 바 있다.

물론 이 모델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서울과 같은 메트로폴리스(대규모 도시)에 적용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의미있는 경험이 꽤 존재한다. 물론 지자체 선거로 지방권력이 바뀔 때마다 이 사업의 지속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이라는 도전과제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이제 이런 대안을 놓고 더 진지한 토론이 벌어질 필요가 있다. 택시업계에서 촉발된 논란도 있지만,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기도 해서 지금이 바로 전사회적 토론을 벌일 좋은 시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지자체 또는 총선에서 ‘무상버스’와 같은 공약이 제시된 적도 있지 않은가.

차량이나 부동산 대여업에 '공유경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줘선 안 된다. 공유경제를 하려면 진짜 그 이름에 걸맞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제 치열하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쟁을 시작할 때이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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