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성수연방·파워플랜트 등 공간기획자 손창현 OTD 대표

권한울 2019. 5. 2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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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 밥으로 돈버는 서점..
골목맛집 모은 맛집 편집숍..
핫플레이스 제 손에서 탄생했죠
서점과 레스토랑 벽을 허문 `아크앤북`을 만든 손창현 OTD 대표가 서울 을지로 아크앤북 내부에 있는 북(Book)터널에서 웃고 있다. [이충우 기자]
소문난 맛집을 푸드코트 한곳에 모아놓으면 어떨까? 이 상상은 현실이 됐다. 경리단길과 가로수길 맛집을 한곳에 모은 광화문 D타워의 '파워플랜트', 스타필드하남 '마켓로거스', 여의도 SK증권빌딩 '디스트릭트Y' 등이 이런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모이니 러브콜을 보내오는 기업도 생겼다. 공간기획자 손창현 OTD 대표(42)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른바 '맛집 편집숍'이 성과를 올리자 이번엔 서점에 도전장을 냈다. 획일화된 서점의 진열 방식을 취향 중심으로 확 바꿔 서점 '아크앤북'을 열었다. 주제만 맞으면 작은 독립출판사의 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점과 레스토랑의 경계도 무너뜨렸다. 이곳에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서점 책을 가져다 봐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수익은 책 판매보다는 서점 내 라이스프타일숍 '띵굴'과 레스토랑, 카페 등에서 내겠다는 전략이다. 훗날 서점과 미용실이 함께 있는 공간도 만들겠단다.

지난해 말에는 성수동 구두공장 건물을 복합 식음료 문화 공간 '성수연방'으로 탈바꿈시켰다. 공장이었던 곳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읽고 즐기며 한나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국판 첼시마켓'이 됐다. 최근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관행을 허물고 취향을 저격해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남자, 손창현 대표를 지난달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서점 아크앤북에서 만났다.

―공간기획자는 생소하다. 어떤 공간을 기획했나.

▷2014년 건국대 스타시티 3층에 '오버 더 디쉬'를 선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셀렉트 다이닝'을 도입했다. 쉽게 말해 지역 맛집을 한곳에 모은 것이다. 입소문이 나 사람들이 모이면서 서울 광화문 D타워의 '파워플랜트'와 여의도 '디스트릭트Y', 스타필드하남의 '마켓로거스' 등도 맡아 기획했다. 프랜차이즈 업체 대신 지역의 개성 있는 맛집 위주로 구성한 게 주효했다.

―서점과 복합문화공간도 잇달아 선보여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을지로 부영빌딩 지하에 1920년대 미국풍 인테리어로 꾸민 아트북 서점 '아크앤북'을 열었다. 6개월 안에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이 목표였지만 두 달 만에 목표를 달성했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올 1월엔 서울 성수동에서 신발공장으로 사용하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을 선보였다. 살림 관련 유명 인스타그래머인 이혜선 씨와 합작으로 '띵굴' 편집숍 세 곳도 연달아 개장했다.

―공간 기획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과거에는 공간의 기능이 중요했다면 이제 다시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과거엔 기능에 충실했는데 지금은 그 안에 체류하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더 주목하는 것 같다. 발뮤다, 다이슨 등은 제품으로 이런 것을 풀어냈다면 우리는 콘텐츠로 풀어낸 것이다. 우리는 공간을 제안할 뿐 아니라 만들어 운영까지 하는 기업이다.

―왜 맛집에 주목했나.

▷2007년 애경그룹 산하 AMPLUS자산개발 부동산운영팀에서 상업시설 개발팀장으로 일할 때다. AK가 민자사업으로 수원역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유통업체 빅3에 비해 너무 열세였다. 계속 콘텐츠를 발굴해야 하는데 럭셔리 브랜드를 집중해서 공략하다 보니 유치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콘텐츠가 유통업체 빅3를 뛰어넘을까 다양한 시도를 하다가 유니클로를 수원역사에 처음 들여왔다. 유니클로가 백화점에 문을 연 첫 사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장하는 날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렸다. 분당의 루이비통을 오픈한 이후 AK 내에서 사람이 이렇게 몰린 적은 처음이었다. 크라제버거와 스무디킹 등 홍대나 강남의 유명한 맛집도 수원역사에 들여와 문을 열었는데 그것도 잘됐다.

그때 유니클로 같은 SPA 브랜드와 맛집이 유통업체 빅3를 뛰어넘을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맛집을 모아서 뭔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회사를 나와서 실행에 옮기게 됐다.

―입맛이라는 게 주관적이라 맛집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일본 발뮤다 창업자가 "취향·기호는 개성적인 게 존재하지만 대중성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걸 느낀다. 어떤 맛집이라도 대중성이 겸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역량이 바로 우리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회사원에서 CEO가 됐다. 창업 스토리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미국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부동산 개발 분야로 전향했다. 내 손으로 공간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2006년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에서 부동산 컨설턴트로 일했다. 오피스 등을 사고팔거나 외국 기업이 국내에 진출할 때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했다. 2007년에는 AMPLUS자산개발 부동산운영팀에서 팀장으로 일하며 AK플라자, AK몰 등 상업시설 기획·관리 업무를 맡았다. 이후 2011년부터 3년간 삼성물산 개발사업본부에서 일하며 상업시설 개발에 참여해 국내 리테일 관련 경력을 쌓았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콘텐츠의 중요성을 빨리 알았다. 누군가 콘텐츠를 채워 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럼 누가 채워 주나 생각했더니 아무도 없었다. 세상은 빅 브랜드에서 스몰 브랜드로 시대가 넘어가고 있었고,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시대적 흐름을 빨리 깨달았고 용기 내서 창업했다.

―처음 시도한 일이 무엇이었나.

▷건대 스타시티 3층의 버려졌던 공간을 살렸다. 그게 스타시티 3층 '오버 더 디쉬'다. 2층에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는 바람에 3층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던 상황이었다. 개장 첫 주에는 사람이 한 명도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그런데 3주 차 되는 순간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왔다. 버려진 상권에 '셀렉트 다이닝'이 생긴 것 자체가 화제였다.

광화문 D타워 `파워플랜트`. [사진 제공 = OTD]
―이후로는 사업이 술술 풀렸나.

▷고생을 많이 했다. 1년 정도는 사무실도 없이 제안서를 들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았다. 공동창업자가 10억원 정도 자금을 냈고, 나 역시 10년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을 전부 넣었다. 계속 도전한 끝에 광화문 D타워 파워플랜트, 스타필드하남 등에 문을 연 맛집 편집숍이 반응을 얻자 투자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OTD의 사업 운영 방식은 어떻게 되나.

▷OTD가 건물을 장기 임대한 후 빈 공간에 맛집 브랜드를 채워넣는 식이다. 우리가 인테리어를 해주기 때문에 맛집 주인은 약간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주방기기만 가지고 들어오면 된다. 초기 비용이 혼자 창업할 때보다 5분의 1 수준이다. 이후 매출 중 일정 부분을 공유한다. OTD로선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지만 입점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매출이 늘어나게 된다.

―해외 사례에서 벤치마킹을 하기도 하나.

▷'성수연방'을 만들면서 첼시마켓을 벤치마킹했다. 첼시마켓은 한때 과자공장이던 공간을 상업시설로 개조하고 주변 소상공인을 끌어들여 뉴욕의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성수연방은 독특한 맛집, 개성 있는 스몰 브랜드들을 모았다는 것 외에도 특성이 많다. 예를 들어 빵을 만드는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돼 있다. 과거 성수동에 구두공장이 많았고 생산을 많이 하던 지역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장소가 가진 의미를 복합문화공간에 살렸다.

궁극적으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파머스마켓을 꿈꾸고 있다. 주말마다 지역 농산물이 모여 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요즘엔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주로 만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그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업하며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이제는 매출액 393억원을 올리는 안정 궤도에 들어섰지만 실패한 순간도 있었다. 지금은 폐점한 오버 더 디쉬 홍대점이 유일한 실패작이다. 홍대도 건대와 같은 대학가라는 생각만을 갖고 건대점과 비슷한 브랜드로 홍대점을 꾸몄다. 결과는 실패였다. 건대와 홍대는 지역적 특색이 달랐던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은.

▷지금 우리는 '프롬 빅 투 스몰(From big to small)'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작은 것들을 담아내는 큰 그릇을 만드는 회사다. 아크앤북은 서점과 맛집을 섞었는데, 새로운 아크앤북에는 미용실도 넣을 생각이다. 이를 통해 공간 자체가 특별해지도록 할 것이다. 이마트24와 신개념 편의점을 만드는 일도 시작할 예정이다.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나.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뉴욕과 홍콩 진출을 검토 중이다. 지역의 유명한 맛집, 스토리 있는 빵집 등을 골라 담은 셀렉트 다이닝과 띵굴을 합친 사업 모델로 진출하게 될 것 같다.

―창업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혁신과 도전은 엄청난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면 좋을 것 같다. 의미 있는 일일수록 거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창업을 한다는 건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 정도 각오는 하고 도전해야 한다.

He is…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과를 졸업했다. 건축공학 석사 과정 중 미국의 한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주도적으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부동산 개발 분야로 전향했다. 대학원 졸업 후 2006년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에 입사해 부동산 컨설턴트로 일했다. 2007년 애경그룹 산하 AMPLUS 부동산운영팀으로 회사를 옮겨 AK플라자, AK몰 등 상업시설 기획·관리 업무를 맡았다. 2011년부터 3년간 삼성물산에서 상업시설 개발에도 참여했다.

기능이 아닌 취향으로 공간을 채우는 시대가 왔다는 걸 깨닫고 회사를 나와 2014년 OTD를 창업했다. 지역 맛집을 한곳에 모은 광화문 '파워플랜트', 식당과 서점의 경계를 무너뜨린 '아크앤북', 구두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바꾼 '성수연방'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공간 기획의 달인으로 떠올랐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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