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0주기] '부림사건'으로 본 변호사 노무현

안채원 , 김종훈 기자 2019. 5. 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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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법조계 "노무현은 사람에 대한 애정 가졌던 변호사..부림사건도 잊지 말아야"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981년 9월 전두환 정권이 소위 '부림사건'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것이 내 삶을 바꾸었던 바로 '그 사건' 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 속 한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부림사건은 삶의 전환점이었다. 부림사건을 시작으로 그는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 국가가 국민에게 누명 씌운 '부림사건'…노무현을 만나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소개된 부림사건은 5공화국 군사정권 초기 통치기반을 확보하고자 조작된 사건이다. 부산지검 공안부는 당시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회사원 등 총 22명을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불법 체포했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반국가단체 행위에 해당한다며 누명을 씌운 것이다. 체포 이후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던 22명은 결국 재판에까지 넘겨졌다.

부산에서 활동 중이던 변호사 노무현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자원한 게 아니었다. 선배인 김광일 변호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노무현 사료관 자료에 따르면 불법 체포 이후 불구속기소로 풀려난 윤연희씨는 노 변호사와의 첫 만남에 대해 "제가 '우리는 국가보안법 사건인데, 가난해서 돈도 드릴 수 없다'고 했더니 잘 알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시던 기억이 난다"며 "'걱정했는데 억수로 좋다'고 우리끼리 안도를 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변호인 접견 중 피해자 몸에 남은 고문 흔적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 부산에서 변호사 한두 명 죽었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 될 줄 아시냐"던 검사의 협박은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노 변호사는 검찰 기소의 이유가 됐던 책들을 직접 읽어봤다.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와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는 재판과정에서 이 책들이 결코 불온 서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시절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노무현 사료관


법정에서 노 변호사는 격정적이었다. 노무현 사료관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 고호석씨는 "당시 (노 변호사가) 거의 공범 수준이 돼 변론을 했다"며 "검사의 공소사실이나 판사의 언급에 대해 '어떻게 그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라며 열변을 토하다가 자기감정을 삭이지 못해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잠시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장면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수사기관의 고문 사실 등을 눈감은 채 피고인 모두에게 징역 5년에서 7년 사이의 중형을 선고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피해자들은 1983년 12월 전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 33년 만의 무죄 확정과 국가 손해배상 책임 인정 판결

피해자 22명은 1999년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이들은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재항고했고 지난 2009년, 마침내 재심 공판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엄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재심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남은 피해자 5명은 다시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지난 2014년 2월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한영표)는 이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가 최종적으로 무죄를 확정했다. 33년 만에 얻어낸 무죄 판결이었다.

법원은 부림사건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했다. 부산지방법원 제8민사부(부장판사 김창형)는 지난 2015년 11월 부림사건 피해자 2명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 선고를 하며 "과거 군사정권 시절 수사기관이 저지른 불법에 대해 사법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고 이 판결로 조금이나마 피해회복이 되길 바란다"고 사과했다.

◇ 법조계 "부림사건과 변호사 노무현의 정신, 모두 잊지 말아야"

법조계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노무현 변호사에 대해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진 변호사였다"며 "그게 없었다면 부림사건도, 그 이후 다양한 인권 관련 사건들의 변호도 끝까지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시점에서 우리 변호사들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의뢰인에 대한 진심과 애정을 더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변호란 결국 사람을 대변하는 일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부림사건에 대한 법조계의 시선도 특별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장은 "부림사건을 생각하면 영화 변호인에서 그려냈던 노 전 대통령의 울부짖음이 떠오른다"며 "이 땅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역사"라고 말했다.

사법부가 다시금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민영 변호사는 "부림사건을 그저 지나간 사건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사법부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늘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 등에 대해서도 사법부가 언제나 눈을 떠 감시하고, 적극 관심을 가져야만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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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원 , 김종훈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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