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도 정리가 필요해..엑셀부터 DB앱까지 '덕질정리분투기'

홍성윤 2019. 5. 1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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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정리된 소장품은 매력적이다.
[쉽게 읽는 서브컬처-69] 덕후(오타쿠)는 수집하는 존재다. 이전 글(덕질도 '구독하는 시대' 왔다)관련기사 바로가기에서 구입보다 구독을 택하는 '구독경제형 마니아'가 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의 본질은 수집이다. 대중문화 작품을 애호하는 마니아들은 열성적으로 만화책과 피규어를 모으고, DVD와 블루레이를 수집하며 음반을 소장한다.

문제는 정리와 관리다. 특히 컬렉션이 방대해질수록 정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아무리 값진 물건일지라도 무작정 쌓아두기만 하면 너저분한 잡동사니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사후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수집가 중에는 집에 이미 갖고 있는 물건인지도 모르고 중복 구입했다가 허탈해 했던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소장품 목록이 필요한 이유다. 정리는 본인의 의지와 곤도 마리에(일본의 정리 전문가)의 일인 만큼, 본문에서는 컬렉션 관리를 위한 방법론만 다루겠다.

엑셀로 정리한 소장 블루레이 리스트. 007 관계자 아닙니다.

◆태초에 엑셀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셀은 만능 프로그램이다. 기초적인 자료를 분석하고, 통계를 내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 있어 이 정도의 범용성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없다. 컬렉션 관리의 시작 역시 엑셀이다. 타이틀명을 비롯해 작가나 감독, 장르, 매체 구분, 포장 개봉 여부, 구입처 및 구입 일 등을 기록해두면 훌륭한 소장품 목록이 된다. 검색과 정렬이 쉽고 거의 대부분 컴퓨터에 엑셀이 설치돼 있는 것 역시 이점이다. 후술할 상당수 프로그램도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추출할 때 CSV 같은 엑셀 호환 포맷을 이용한다. 덕분에 웹 커뮤니티에서는 나름의 분류법과 항목을 기입해둔 엑셀 양식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엑셀 관리법의 단점이라면 일일이 수동으로 기입해야 하는 부분과 시각적인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파일을 오프라인에 저장할 경우 외부에서 목록을 확인하거나 업데이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글 문서 스프레드시트에 업로드한 소장 게임 소프트. 후술할 메멘토 앱에서 정리한 내용을 구글 문서에 동기화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구글 드라이브

"이 만화책 몇 권까지 샀더라?" 홍대에 있는 만화 전문서점에서 종종 들리는 소리다. 덕후들이 혼잣말을 곧잘 하기도 하지만, 수집 현황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하기도 하고 서가에 꽂힌 책들을 사진으로 찍어놓기도 하지만 아쉽다. 클라우드 스토리지(저장공간)가 그런 아쉬움을 채워준다. 정리해둔 엑셀 파일을 온라인 저장공간에 동기화하거나 온라인상에서 직접 수정할 수 있기 때문.

엑셀 작업이 가능한 대표적인 클라우드 서비스는 구글 드라이브다. 구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저장공간이자 문서도구 통합 서비스로 구글 문서, 구글 스프레드시트, 구글 프레젠테이션은 각각 MS오피스의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존 엑셀 파일을 그대로 업로드할 수 있고, 온라인상에서 직접 편집이 가능하다. 드롭박스처럼 동기화 기능에 특화된 클라우드 저장공간 서비스를 활용할 수도 있다.

MS의 온라인 구독 기반 '오피스365'에 포함된 엑셀은 온라인 저장을 지원한다. MS의 클라우드 저장공간인 원드라이브(OneDrive)에 파일을 저장해 다른 컴퓨터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열람·수정할 수 있지만, 유료(월 8900~1만1900원) 서비스다 보니 구글 드라이브나 드롭박스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상품 바코드를 스캔해 목록을 완성하는 모바일 앱들. 마이무비 바이 블루레이닷컴(오른쪽 첫째)의 미묘하게 어긋나는 표지들이 신경 쓰인다.

◆쓰지 마세요, 스캔하세요

일일이 수동으로 입력해야 하는 엑셀의 맹점을 보완하고 싶다면 개별 앱 활용이 답이다. 해당 앱을 통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상품의 바코드를 스캔하면 자동으로 상세 내용을 기입해주기 때문. 특히 책 목록 관리에 특화된 앱이 많은데, 출판된 모든 책에는 고유한 국제표준 도서번호(ISBN)가 부여돼 있고, 뒤표지에 바코드 형식으로 표시돼 있기 때문이다.

책 소장 내역·독서 이력 관리 앱으로는 비블리, 북플, 산책(iOS), 책꽂이+(안드로이드), 데일리북(안드로이드) 등이 있다. 바코드 스캔으로 빠르게 책 목록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비블리의 경우 서가 사진을 촬영해 업로드하면 OCR(광학식 문자 판독) 기술을 이용해 한꺼번에 등록하거나, YES24나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 구매내역을 가져와 등록해주는 편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책 관리 앱은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이 높다. 서재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비블리는 큐레이션을 통한 추천 도서 서비스, 북플은 책을 통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특화돼 있는데, 소장 목록 관리만을 원하는 사용자에겐 마이너스 요소이기도 하다.

DVD, 블루레이처럼 영화 타이틀을 수집하는 사람을 위한 관리 앱으로는 '마이무비 바이 블루레이닷컴(My Movies by Blu-ray.com)이나 My Movies Pro(유료)가 대표적이다. 특히 '마이무비 바이 블루레이닷컴'은 세계 최대 블루레이 관련 정보 및 포럼 사이트로 유명한 블루레이닷컴에서 개발한 앱이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에 기반을 두었지만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의 경우 누락된 경우가 많다. 또 모바일 앱에서 한글로 검색해 등록할 때 어려움이 있다. 대신 전 세계 아마존 가격 데이터를 취합해 할인 판매 등 정보를 제공해 효과적인 소비를 돕고, 플레이스테이션4 등 게임 타이틀도 추가할 수 있어 게이머에게도 유용하다. My Movies는 무료 버전의 경우 타이틀 등록이 50개로 제한돼, 제대로 쓰려면 유료 버전인 pro를 사야 한다. 지금은 '한국판 넷플릭스'를 표방하며 OTT 서비스에 힘을 쏟고 있는 왓챠지만, 원래는 영화를 감상하고 평점을 남기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주는 앱으로 출발했다. 활용에 따라서는 왓챠도 소장한 영화 타이틀 목록을 정리하는 용도로 이용할 수 있지만, DB를 다른 파일 양식으로 추출하거나 원하는 방식으로 정렬할 수 없어 한계가 분명하다.

Discogs는 모바일 앱과 웹사이트를 통해 음반 리스트를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가 직접 기초 DB를 생성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어 국내 음반 데이터도 꾸준히 느는 추세다.

정리 앱들의 춘추전국 시대. 게임, 만화, 영화, 음악부터 퍼즐, 운동화, 곰인형, 칼(?)까지 다양한 수집품마다 모두 앱이 출시돼 있다. 그리고 모두 유료다.

◆덕질 통합 DB를 꿈꾸며, 메멘토와 탭 폼즈

소장품 관리에 특화된 앱들은 편의성과 시각적 만족도 측면에서 엑셀보다 우월하다. 문제는 이 모든 앱이 '따로 국밥'이라는 데에 있다. DVD와 책, 음반, 게임 타이틀을 등록하고 관리하기 위해 각각 다른 앱을 설치하고 실행하고 등록하고 열람하는 과정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DB의 통일성도 해친다. 온갖 앱을 헤매다 다시 엑셀 정리파로 돌아오는 경우도 이 때문이다.

분야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덕질 통합 DB를 만들 순 없을까. 답은 '있다'이다. 메멘토 데이터베이스(Memento Database, 이하 메멘토)는 안드로이드용 앱과 PC 프로그램으로 출시된 DB 구축·관리 앱이다. 메멘토의 장점은 분야에 상관없이 '나만의 DB'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 도서, 음악, 게임 등 대표적인 덕질 분야는 외부 웹사이트에서 기초 데이터를 가져와 자동으로 입력해주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데이터 소스를 가져오는 웹사이트가 국내 사정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 소스를 설정할 수 있어 보완 가능하다. 간단한 함수도 지원해 "만화책 발매 권수와 구매 권수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구매 필요'로 표시, 일치할 경우 '구매 완료'로 표시" 같은 설정도 가능하다. 또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동기화 및 백업 기능을 제공하고 자체 클라우드 저장공간을 통해 앱-PC 프로그램-웹 간 교차 편집도 가능하다. 무료 버전도 대부분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유사한 기능의 DB 구축 프로그램으로는 탭 폼즈(Tap Forms)가 있다. 아이폰용 앱과 맥용 프로그램이 있다(필자가 보유한 기기로는 탭 폼즈를 체험해볼 수 없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메멘토 앱으로 정리한 블루레이 리스트. 표지를 비롯한 상세 정보는 자동으로 기입된다.
◆피부에도 지름에도, 관리가 필요해

덕질의 본질은 수집이다. 그리고 수집과 저장 강박을 나누는 건 정리와 관리다. 출판사와 작가별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과, 개봉 연도에 맞춰 나란히 진열돼 있는 프랜차이즈 블루레이는 덕질에 그럴듯함과 자기만족을 더한다. 완벽한 관리법을 찾아 엑셀에서 시작해 온갖 앱을 헤맸다. 아직 정착은 못했다. 모든 덕질이 그렇듯 그 지난한 과정조차 즐거운 법이다.

[홍성윤 편집부 기자]

덕질에 끝이 없듯, 정리에도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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