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버스 노선 17% 없애거나 단축

최원우 기자 2019. 5. 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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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 파장.. 49개 폐지, 317개 단축·조정, 653개 배차축소 계획
국토부 "경기도가 버스비 200원 먼저 올리면 고용기금 등 지원"

7900번 버스는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여대를 출발해 서울 종로2가와 광화문을 거쳐 서울역 환승센터까지 50㎞ 구간을 다니던 광역버스다. 2012년부터 운행해왔다. 그런데 지난달 22일부터 7900번의 서울 쪽 종점이 지하철 사당역으로 바뀌었다. 기존 노선 가운데 서울 시내 구간(17㎞)은 운행하지 않는 것이다.

한 이용객은 "7900번은 수원 서부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민들로 자주 만원(滿員)이 됐다"며 "이용객이 적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노선이 단축돼 출근하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노선 변경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수원시 관계자는 "운행 거리가 길어 기사들이 기피했고, 적자가 심한 데다 주 52시간 근로제로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버스 회사 입장"이라고 했다.



전국 10개 지역 버스 노조가 예고한 파업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12일 경기도 수원시 광교 차고지에 정차한 버스 앞으로 버스 회사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박상훈 기자
7900번만이 아니다. 오는 7월 버스 회사의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앞두고 버스 노선 폐지나 단축이 속출할 전망이다. 경기도 버스정책과는 최근 도내 31개 시·군을 통해 주 52시간제 도입을 앞두고 버스 회사들이 세운 사업계획서를 집계했다. 계획서에 따르면 버스 회사들은 7월 1일 기준으로 전체 2185개 버스 노선 가운데 49개 노선을 폐지하고 317개 노선은 단축·조정하겠다고 했다. 전체 노선의 16.7%에 해당한다. 653개 노선은 운행 횟수를 줄인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전체 노선의 절반에 가까운 1019개 노선 운영이 바뀌는 셈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버스 회사 계획대로라면 7월 1일이 되면 현재 운행 중인 버스 9714대 중 10% 가까운 848대가 감차(減車)된다"며 "승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버스 회사와 협의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노선 축소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한편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12일 합동 회의를 열고 15일로 예정된 버스 파업 대비에 들어갔다. 파업 예고일을 3일 앞두고 뒤늦게 대비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작년 3월 근로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 특례 업종에서 노선버스를 제외할 때 이미 예견된 일이다.

국토부는 경기도가 시내버스 요금을 200원 올려 2500억원 재원을 마련하고 여기에 정부가 고용기금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부담을 버스 이용자에게 지우겠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3일 버스 노조와 비공개 회동을 갖기로 했다. 13~14일 이틀간 버스 노사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15일 전국 10개 지역 2만대 버스가 멈춰 설 전망이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광교 차고지와 서울 광진구 지하철 건대입구역을 오가던 1002번 버스도 지난 5월 초 노선이 대폭 짧아졌다. 출발지가 기존의 광교 차고지에서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청~서울 지하철 강남역을 다니던 1251번은 노선이 없어졌다. 성남시는 "1002번은 기사들의 근로시간과 휴게 시간 관리가 어려워 노선 길이를 줄였다"며 "1251번은 신분당선 개통으로 이미 승객이 줄어든 상태"라고 했다.

인천 계양구 계산삼거리~서울 마포구 지하철 공덕역을 오가던 2500번도 노선이 사라졌다. 해당 노선을 운영하던 버스 업체는 "그동안 적자 누적에도 시민의 편의를 위해 운행을 해왔으나 경영 악화로 인해 더 이상 운행이 어렵다"고 공지했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이자 수요가 적은 노선부터 정리한 것이다.

버스 업계에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오는 7월 1일이 되면 노선 단축·조정은 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경기도 집계에 따르면 경기도 버스 전체 노선 2185개 중 10%인 222개 노선은 첫차 시간을 미루거나 막차 시간을 앞당길 예정이다. 일부 중복 구간도 조정한다. 수원시 관계자는 "버스 기사는 4시간 운전하면 의무적으로 30분을 쉬어야 하는데 한 번 왕복하는 데에만 4시간 넘게 걸리는 장거리 노선은 근로시간을 관리하기 어렵다"며 "변경이 불가피해 서서히 통폐합하는 중"이라고 했다.

버스 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도와 각 시·군, 버스업체는 지난 8일 모여 상생협의회를 열었다. 경기도 지역 버스 노선 인허가권은 기초단체인 시·군이 갖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시·군에 무리한 노선 조정은 없는지 검토해서 계획을 다시 보내라고 요청했다"며 "시민과 버스 회사 측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과 달리 경기도 버스는 대부분 민영 체계여서 지자체가 노선 변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버스 회사 노선 변경이 불법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버스 회사가 운행 횟수 등을 바꾸려면 이를 지자체에 신고하고 필요한 경우 수요 조사 등을 거쳐야 한다. 이를 어기면 1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사업자 입장에선 주 52시간제를 어기고 형사 처벌을 받느니 임의로 노선을 줄이고 과징금을 내는 게 낫다고 보고 노선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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