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는 예술에게 축복이었을까

홍진수 기자 2019. 5. 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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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베니스 비엔날레 11일 개막
ㆍ90개국 참여…한국 작가 6명, 이불·아니카 이 등 모두 여성
ㆍ한국관 주제 ‘역사 속 젠더’

이탈리아 조각가 로렌조 퀸이 베니스 수로 위에 세운 구조물 ‘6쌍의 손’. 퀸은 2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때는 거대한 아이의 손을 형상화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이번 작품은 그 후속으로 분열을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AP연합뉴스

오는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고의 미술전 ‘베니스 비엔날레’가 막을 연다.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부의 25회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시작한 작은 국제미술전이 120여년의 역사를 거치며 ‘비엔날레’의 대명사가 됐다. 격년제로 열리는 전시를 의미하는 명칭 ‘비엔날레’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1회 행사의 참가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영국, 벨기에, 폴란드, 러시아 등 7개국뿐이었다. 올해 열리는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국가관만 90개가 마련됐다. 본전시에는 세계 각국에서 작가 79명이 초청됐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총감독이 직접 운영하는 아르스날레의 본전시와 나라별로 꾸미는 자르디니의 국가관 전시로 나뉘어 진행된다.

한국은 이번 전시에 작가 6명이 참여한다. 공교롭게도 한국관 김현진 예술감독까지 7명이 모두 여성이다. 본전시에는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불, 아니카 이, 강서경이 초청장을 받았고, 한국관 전시 작가로는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이 일찌감치 선정돼 작품을 준비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랠프 루고프(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디렉터)가 제시한 전시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다. 이 말은 1930년대 영국의 정치인 오스틴 체임벌린이 한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체임벌린은 지루한 태평기가 아닌 흥미로운 ‘난세’에서 살아보라는 중국의 저주문을 차용해 자신들이 그 저주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고 연설했다. 그러나 실제 중국에는 이런 말이 없다고 한다. 어쨌든 ‘흥미롭지만, 결코 평화롭지는 않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는 적절한 주제인 셈이다.

이불 작가가 지난 3월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디엠지(DMZ)전’ 간담회에서 ‘오바드 V를 위한 스터디’를 설명하고 있다. ‘오바드 V를 위한 스터디’는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할 ‘오바드 V’ 축소 모형이다. 연합뉴스

이불은 1999년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작가인 동시에 본전시 참여작가로 나서 특별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이번에는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 철수 과정에서 나온 해체 잔해로 높이 4m 구조물을 제작해 전시할 계획이다.

한인 1.5세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니카 이(Anicka Yi)는 2016년 ‘휴고 보스 프라이즈’를 수상한 최초의 한국인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의 격년제 예술상인 ‘휴고보스상’은 영국의 ‘터너상’과 더불어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강서경은 지난해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를 방문한 루고프 총감독의 눈에 띄어 초청을 받았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강서경은 회화와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해 전통회화를 재해석하고 있다.

한국관의 제목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이다. 지난해 한국에 번역된 미국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을 빌려왔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이 쓴 <파친코>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한계와 굴레에 갇히지만 투쟁적으로 삶을 살아내고야 만다. 남화연과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은 모두 역사 속 여성을 주제로 한 영상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김현진 감독은 “최근 시각예술의 언어와 상상력을 통해 근대화의 역사를 다시 읽고 쓰고 상상하는 영역이 확장되어왔는데, 이것을 더욱 혁신적으로 견인할 주요한 동력은 바로 젠더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며 “동시대 시각예술 활동은 지난 한 세기의 역사들을 규정해온 서구중심, 남성중심 등의 범주를 더욱더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비판적 젠더의식을 통해 한층 역동적이고도 풍요로운 시각서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관은 본전시에 앞서 9일 개막식을 연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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