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등반ㅣ이탈리아 포르도이] "즐거운 등반 인생은 66세부터!"

글 사진 임덕용 꿈 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악우회 2019. 5. 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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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 클라이머들 포르도이 등반 동행.. "99세까지 등반하는 게 최고 행복"
포르도이의 바위 위에 선 이탈리안 자일 파트너 플로리안. 대학 교수 출신인 그의 뒤로 파소 포르도이의 구비진 길이 보인다. 길의 왼편 끝이 케이블카 주차장이다.
에른스트 뮐러는 산만 그리는 화가이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를 등반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에만 그의 이름을 내건 6개의 산악 박물관이 있다. 메스너의 박물관에는 뮐러의 그림이 여럿 걸려 있다.
뮐러는 지난해 한국 TV프로그램 EBS 세계테마기행 ‘알프스의 산골마을’편에 출연해 자신의 화실을 보여 준 적이 있다. 그는 항상 명랑하고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하다.
줄리오는 정원사로 일하다 은퇴했다. 주말이면 야시장에 수레를 끌고 나가 골동품을 팔고 있으며, 평일에는 시간만 나면 클라이밍을 즐긴다. 조용한 성격에 수줍음이 많다. 뮐러와 줄리오는 등반 파트너인데 성격은 음과 양이다. 한 명은 태양이고 한 명은 달이다.
프롤리안은 교수 출신으로 지금도 가끔 대학에서 특강을 한다. 너무 조용해서 같이 등반하면 그가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을 정도이다. 항상 잔잔하고 인자한 미소가 하얀 수염과 무척 잘 어울리는 그는 매우 지적으로 보인다.
산 그림 화가인 에른스트 뮐러가 3번째 마디를 선등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등반하는 필자는 ‘한국의 라스트 검객’ 또는 ‘동양 도사’로 불리는 분위기 메이커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성격으로 산에만 가면 펄펄 날아다니지만 집에서는 병든 닭처럼 비실거린다. 우리는 매주 월, 수, 금요일 오전이면 암장에 모여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등반을 한다. 날씨가 좋거나 시간이 맞으면 아르코나, 돌로미티의 여러 벽을 같이 등반한다.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가는 사람은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해, 등반 중에 전화 통화를 하고 등반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며 항상 같은 정신, 같은 몸의 파트너이며 같은 영혼임을 확인하는 사이다.
6개월간의 긴 겨울이 끝나는 5월이 되었지만 해발 2,500m 고산지대는 잔설과 누런 초원이 늦가을처럼 느껴진다. 돌로미티는 북부 이탈리아의 3개 주 접경지역이다. 그중 베네치아와 코르티나를 포함한 벨루노Belluno주와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Marmolada와 카나제이를 포함한 트렌티노Trentino주, 셀라와 오르티세이를 포함한 알토 아디제Alto Adige주가 만나는 교통 핵심지점에 포르도이Pordoi가 있다.
매년 봄이면 이탈리아의 유명한 사이클 대회인 ‘지로 디 이탈리아Giro d’Italia’가 열리는데 선수들에게 ‘죽음의 고개’로 불리는 악명 높은 산길이 포르도이고개다. 수 백 미터 높이의 굽이진 고갯길은 차를 운전하기에도 힘들 정도지만,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며 주변 산들을 보는 재미로 전 세계에서 온 사이클 마니아들이 달리는 길이기도 하다.
운행을 하지 않는 텅 빈 포르도이 케이블카역에 주차를 하고 장비 점검을 하며, 등반 파트너를 뽑기로 정한다. 매번 같이 등반을 다니지만 항상 더블 로프에 두 팀으로 등반을 한다. 서로를 너무 잘 알지만 누구와 등반을 하는가에 따라 등반의 즐거움이 다르다. 안주와 술이 맞아야 하고, 술맛에 따라 술잔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조금이라도 고도가 높은 산은 벽에 눈이 많아, 접근이 쉽고 난이도가 낮은 루트를 찾았다. 서로 선등을 교대로 하는 형식이라 누가 앞서가든지 재미있게 등반한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공을 이리 저리 던지며 발로 차며 몸을 푸는 것처럼 노닥거리며 등반한다.
정원사 출신의 줄리오가 3번째 마디의 기념사진 명소에서 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3번째 마디 종료지점의 에른스트와 줄리오. 50년 이상된 자일 파트너 사이다.

60대 클라이머들의 행복

서로 약 올리기도 하지만 격려를 많이 하는 게 이들의 등반 방식이다.
“어이 줄리오! 너는 역시 힘이 넘쳐! 너무 힘주면서 등반하다 돌이 빠지면 어떻게 하나?”
“무슨 소리야! 나는 힘이 너무 없어서 겨우 헉헉거리며 올라가느라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는데?”
“프롤리안! 어제 저녁에 뭐 먹었어? 왜 그렇게 잘 올라가지? 임(필자)에게 인삼이라도 얻어먹은 거야?”
“어이! 임! 너는 지금 무술 하니? 왜 발이 그렇게 높게 올라가지? 나는 보기만 해도 발에 쥐가 나! 흉내도 못 내겠네.”
4번째 마디를 오르면 포르도이 케이블카역 주차장이 왼편으로 보인다.
정상으로 이어진 마지막 피치를 오르기 전 모인 플로리안(왼쪽), 줄리오, 필자.
말하는 수준이 완전 아이들이다. 골목에서 바람 빠진 공을 차는 아이들이 신이 나서 떠들며 노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어려진다고 하던데, 우리가 그렇다. 난이도는 5급 정도이고, 8마디의 리지 등반 수준이라 봄맞이 첫 등반으로는 최고이다. 차가운 암각이 조금은 매섭게 느껴진다. 몇 개의 녹슨 하켄이 나오지만 노련하게 프렌드를 적절하게 설치한다.
로프가 꺾이는 부분에서는 조금은 과장될 정도로 긴 슬링으로 로프가 꺾이지 않게 등반하는 게 완숙미 넘치는 노장들의 등반이다. 마다마다 두 개의 대형 하켄에 체인이 걸려 있지만 슬링을 체인 위에 다시 걸어 2중·3중 확보를 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행복은 점점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많다. 21세기 노년층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은퇴 후 배우자와 잘 지내는 것? 자녀들이 결혼하고 손주들이 자라는 걸 보는 것? 대한노인회가 노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건강이 행복의 이유’라는 응답이 60%였다. ‘건강하지 못해서 불행하다’는 응답이 35%이다.
건강 다음으로 바라는 점은 일자리라고 한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벌어서 쓰겠다는 노년층이 늘어나고 있고, 노인취업 훈련센터도 많이 찾고 있다. 퇴물 취급 받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노년층의 행복이 과연 무엇일까? 즐겁게 일하면서 얻는 건강! 현역처럼 일하면서 틈만 나면 클라이밍을 하려는 에른스트 뮐러, 줄리오, 플로리안의 최고 행복은 무엇일까? 은퇴하면 연금으로 충분히 먹고 놀고 사는 이들의 남은 행복은 무엇일까?
돌로미테를 배경으로 플로리안이 정상에 오르고 있다.
에른스트가 출발 전 루트 파인딩을 하고 있고, 플로리안이 확보를 하고 있다.
필자가 정상 마지막 마디 크랙을 오르며 프렌드를 설치하고 있다.
“하이 임! 나는 99세까지 내 수준에 맞는 루트를 찾아 친구들과 등반하는 어린이가 되는 거야!”
“당연하지! 나도 99세까지만 등반할거야. 그 다음에는 자전거나 타고 트레킹이나 하면서 살자고!”
“나는 99세면 자연 암장은 못 갈 것 같고 그냥 인공 암장이나 갈까 해.”
“나는 한국에 가서 내가 오르던 바위나 올라볼까 해. 70년 전 올랐던 루트를 다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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