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 갱년기 엄마와 봄바람 맞다

2019. 5. 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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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와 갱년기 엄마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얼핏 개그 소재 같지만 현실에서는 나의 일상이다. 누구보다 엄마를 좋아하고 따르던 아들은 사춘기가 되고 나서 내 아들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늘 방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과 함께 한 몸이 되어 침대에 눕는다. 밥 먹으라고 해야 겨우 일어나 맛있게 밥을 먹고 다시 리플레이 하듯 침대에 눕는 아들을 보는 건 고역이었다.

작은 일에도 감정이 요동치는 갱년기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핸드폰 그만 봐라, 공부 좀 해라” 를 앵무새처럼 매일 매일 되풀이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밖은 한창 아름다운 봄꽃이 만발한 봄날이었는데, 집안은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의 한복판이었다.

성북동 북정마을은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화해의 손짓은 봄 여행이었다. “엄마랑 봄 여행 가지 않을래?” 예상했던 대답이 건네졌다. “멀리 가기 귀찮아요.” 아들은 사춘기가 되고 나서 엄마 아빠 따라 다니는 걸 멈췄다. 그런 아들이 여행이라는 말에 따를리 만무했다.

“멀지 않아. 서울이고 진짜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흥미로운 곳이야. 진짜 가까워.” 얼르고 달랬다. “함께 나가면 너 좋아하는 메뉴로 맛있는 저녁도 사줄께.” 아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예쁜 봄옷도 사줄게” 까지 말하고 나서야 아들은 못 이기는 척 옷을 입으며 쐐기를 박는다. “한우 꽃등심 먹고 싶어요. 그리고 봄옷으로 예쁜 후드티하고 연한 색의 청바지 사주세요. 그거 아니면 안 나갈래요” 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오냐, 꽃등심 먹고 옷 사러 가자!”고 대답했다.

봄 여행주간에서 마을여행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들의 봄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들과의 약속대로 멀리 나가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서울에서도 지루하지 않고 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감성을 만져주는 곳을 가야만 했다. 이미 봄 여행주간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팁을 얻은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아들과 함께 전철을 탔다. 우리의 목적지는 성북동 북정마을이었다.

봄 여행주간 홈페이지
https://travelweek.visitkorea.or.kr/

여행주간은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4년부터 시행한 국내여행 활성화를 위한 다양하고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매년 다른 콘셉트들로 정해진 국내 여행지들의 소개를 보면 꼭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북정마을은 서울의 한양도성 성곽마을이자 추억을 소환시켜주는 곳이다.

이번 봄에는 어디로, 무얼 하러 갈까? 꼭꼭 숨겨둔 이야기를 꽃피우는 봄 향기 가득한 마을여행지, 국내 1호 로케이션매니저가 말해준 마을의 다양한 풍경과 특별한 이야기와 일상을 만나는 시간으로 제안한 2019 봄여행주간에서 북정마을은 단연 돋보였다.

서울의 추억과 여유를 느껴보는 정겨운 북정마을은 서울 성북구 성북로 23길 132-3의 주소를 가진 서울의 성곽마을이자 달동네로 알려진 골목마을이다. 한양도성 숙정문, 심우장, 와룡공원, 길상사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북정마을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모습.

조선시대, 궁중에 메주를 만들어 바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해서 북정마을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재미난 유래를 전한다. 이곳을 거닐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낡고 부서진 슬래트 지붕들과 그 사이 사이 보이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붕들, 언덕처럼 구비치는 골목길들 사이 사이 존재하는 작고 투박한 오래된 옛집들, 한 사람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들은 지금은 서울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옛날 그 시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기에 충분한 향수를 지닌 곳이다.

최순우 옛집은 4월부터 11월까지만 시민에게 개방된다.

북정마을을 가기 위해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왔다. 가장 먼저 갈 곳으로 정한 곳은 최순우 옛집이었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최순우 옛집은 시민문화유산1호다. 혜곡 최순우는 평생 박물관인으로 살았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을 역임했다.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살았던 집인 최순우 옛집은 2002년 시민들의 힘으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보존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지켜져왔다. 현재 집 안에는 유품과 친필 원고 등이 상설전시되고 있으며 시민 참여문화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관람시간 : 4월~11월 화요일~토요일 오전 10:00~16:-00
휴관 : 일요일, 월요일, 추석 당일, 12월~3월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5길 9

최순우 옛집에는 최순우의 유품과 친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최순우 옛집을 나와 선잠단지를 따라 쭈욱 올라가면 길상사가 나온다. 불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길상사는 고급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자야)이 199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모든 것을 다 기증하여 길상사로 개원하게 됐다.

16세에 기생이 되어 인생을 살아간 김영한은 시인 백석과의 러브스토리로도 유명하다.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 주시요'라는 유언을 남겼고, 1999년 그녀는 길상헌 뒤뜰에 뿌려졌다. 그녀와 시인 백석의 러브스토리는 길상사를 방문할 때마다 아름답게 이야기가 꽃 피워지는 듯했다.

길상사는 성북동의 명물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주택가의 끝자락에 위치한 길상사는 석가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색등이 수놓듯 장식되어 있었다. 거기에 온갖 아름다운 봄꽃들이 만발하니 1년 중 이맘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23번지 길상사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오색 연꽃등이 길상사를 수놓고 있다.

성북동 좁은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시인이 죽기 직전까지 살았던 두 칸짜리 집이다. 이 집은 다른 집들과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모두가 남쪽을 바라보며 지어진 골목길의 다른 집들과는 달리 심우장은 북향집이다.

성북동 꼭대기인 달동네에 있기에 이곳에선 남쪽에 있는 조선총독부가 보였다. 만해는 보고 싶지 않은 조선총독부를 등에 지고 북쪽으로 창을 냈다. 심우장의 툇마루에 앉아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심우장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만해 한용운의 동상과 님의 침묵 시.

민족자존의 역사를 간직한 심우장은 울창한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다. 만해가 직접 심었던 향나무도 함께 하고 있다. 두 개의 방에는 ‘님의 침묵’ 시집과 연구논문, 옥중공판기록물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친필 액자와 초상화도 걸려 있다. 심우장은 서울시 기념물 제7호이자 사적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관람시간 : 09:00~18:00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29길 24

두 칸의 방 안에는 만해 한용운의 초상화와 시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심우장을 나와 좁은 골목길을 굽이굽이 걷다보면 어느새 북정마을을 알리는 이정표와도 같은 카페와 해우소가 나온다. 우물 미니 쉼터에는 마을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그 옛날에나 사용했을법한 펌프도 보였다. 서울에서도 높은 지역에 있는 북정마을에선 저 멀리 서울의 여러 풍경들을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다.

우물이 있던 자리엔 펌프와 의자가 이곳을 사랑방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북정마을 산책길에서 아들과 화해하고 싶었다. “엄마 어릴 적엔 지금 보는 이런 풍경들이었어. 이렇게 이웃집과 우리 집이 가깝게 붙어 있어서 밥하는 냄새도, 싸우는 소리도 맡고 들을 수 있었단다. 눈이 오면 자연스레 언덕길에서 눈썰매도 탈 수 있었지.” 나는 아들보다 더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좁고 작은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덥다고 자꾸 손을 빼려는 아들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연신 힘을 주었다.

북정마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2019 봄 여행주간은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들에게 화해의 시간을 선물로 주었다. 봄날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새 돌아서면 여름이 앞서오기 때문이다. 봄 여행주간 누군가와 어디로든 떠나보자. 여행이 옳다는 것을 발길이 닿는 그곳에서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책기자단|김은주cremb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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