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콜트는 아직 남았다

전병역 산업부 차장 2019. 4. 2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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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약 4년 전 여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개인적으로 록 음악과 기타를 좋아해 지나는 길에 유명한 깁슨 일렉기타 생산공장에 견학을 가봤다.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가 잠든 고장인 멤피스의 깁슨 공장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전시관은 변변찮고 생산시설은 초라했다. 각종 목재와 선반, 낡은 기계들이 먼지로 덮여 있었다. 이곳이 세계 최고 브랜드로 꼽히는 깁슨의 산실이라니….

그러나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제조업이 쇠락해가는 미국 본토에서 120년 넘은 전통의 깁슨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내심 한국민으로서 뿌듯했다. 왜냐하면 한때 깁슨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한국에서 대거 납품한 적이 있어서다. 양대산맥 격인 펜더 기타도 한국 노동자들이 상당수 만들어줬다. 우리 손기술, 노하우가 세계 최고여서다.

깁슨에 OEM 납품을 한 한국 기업이 콜트다. 통기타를 만드는 콜텍도 있다. 그런 콜트·콜텍이 2007년 국내 생산을 줄이고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인천 부평공장의 콜트 노동자를 집단 정리해고했다. 대전의 콜텍 공장은 닫아버렸다.

노동자들의 13년 질긴 복직투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 23일 마침내 “그 모진 세월에 마침표를 찍었다”(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콜텍은 2009년 정리해고 무효소송 2심에서 이겼다가 2012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의 당시 ‘재판 거래’ 정황이 드러났다.

이번 노사합의 소식에 방종운 콜트지회장 얼굴이 떠올랐다. 2010년 ‘고용난민의 시대-일자리 없나요’ 기획시리즈를 취재할 때 그를 처음 만났다. 평범한 해고노동자 같던 그는 2015년 겨울, 국회 앞에서 45일간 단식 천막농성을 할 때 투사로 변해 있었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강경한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만 골몰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은 사례가 많다”며 콜트·콜텍을 지목하자 사과를 요구했다. 김 전 대표는 거부하다가 법원 명령을 받고서야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방 지회장에게 연락을 했다. 방 지회장은 300일 가까이 대법원 앞 길바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는 2012년 원직 복귀 판결을 받아냈으나 석 달 만에 재해고됐다. 대법원은 2017년 5월 “국내 공장이 없어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실익이 없다”며 사측 손을 들어줬다. 이는 ‘부당해고를 한 뒤 공장만 닫아버리면 그만’이라는 나쁜 신호로 비칠 수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은 이 판결을 ‘국정운영 뒷받침(노동개혁)을 위한 사법농단 판결 사례’로 지목했고, 콜트지회 측은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콜트·콜텍 문제는 겉보기엔 비용 절감, ‘강성노조’ 회피용 공장 이전이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바로 한국인의 감각을 살려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꿔나가지 못한 점이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한류 열풍이 그렇듯, 한국적 브랜드로 어필해야 승산이 있다. 생산비를 이유로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데만 전전하다 보면 지구 끝까지 내몰릴지도 모른다. 예컨대 레스폴 모델의 경우 콜트는 40만~60만원 선인 데 비해 깁슨은 최소 200만~400만원 선이다. 이러는 사이 국산 전기기타 수출액은 2005년 8301만달러에서 2009년 33.4% 급감하더니 지난해는 1987년보다도 못한 3577만달러까지 추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 깁슨을 포함한 자국산 제품을 전시했다. 국내로 공장 재이전을 촉구하는 차원에서다. 이번 콜텍 합의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도 ‘해외 공장의 국내 유턴을 통한 일자리 확충’을 모색하길 기대한다. 거꾸로 외국 브랜드라도 국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메이드 인 코리아’라면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가 곧 경제다. 콜트의 싸움은 아직 진행형이다.

전병역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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