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다, 실패했다, 돌아왔다.. 그것이 인생이다


- 김영하 신작 산문집 ‘여행의 이유’ 뜨거운 인기
오늘 발간인데 4만5000부 예약
초판 2만부 등 매진… 추가 인쇄
여행에 관한 태도·의미 종합판
실패없는 여행은 아무 재미없어
일상·관계로부터의 ‘도피 여행’
불현듯 상처에 ‘맞설힘’ 얻기도
김영하(사진)는 요즘 출판계에서 ‘흥행보증수표’ 같은 작가다. 흥미진진한 소설과 산문으로 이미 수많은 열성 독자를 확보했고, 최근엔 방송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나영석 PD가 만든 여행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서 그는 유시민·정재승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스타 작가’가 됐다.
그래서 그가 이번에 쓴 여행 산문 ‘여행의 이유’(문학동네)는 17일 발간에 앞서 벌써 4만5000부가 팔려나갔다. 입소문을 들은 독자들이 8일부터 시작된 예약 판매에 뛰어들어 초판 양장본 2만 부와 동네책방용 특별판 2000부를 매진시킨 것이다. 그래도 반응이 뜨거워 출판사는 최근 중쇄 2만 부와 동네책방용 특별판 3000부를 추가로 찍고 있다. 출판사 측조차 “우리도 놀랐다”고 말할 정도다.
김 작가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이나 이번 여행기는 섬세하고 흥미롭다. 예능 ‘알쓸신잡’에서 여행에 관한 태도와 의미를 ‘맛보기’처럼 일부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은 그것들을 한데 모은 ‘종합판’ 같다. 그가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의 설렘부터 ‘알쓸신잡’을 통해 깨달았던 비(非)여행, 탈(脫)여행의 경험까지 인생에서 여행의 의미를 곱씹고 있다.
아홉 편의 글 중 첫 번째인 ‘추방과 멀미’에는 김 작가가 2005년 소설 ‘빛의 제국’을 쓰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가 좌절했던 경험이 실려 있다. 그는 한껏 들떠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했다가 영문도 모른 채 공안에 의해 곧바로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미처 중국 입국 비자를 준비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추방’되는 실패를 맛봤으나 여기서 여행의 의외성을 발견했다. 그는 “대부분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돼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라며 여행의 예측 불가능성에 주목한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는 가족과 일상, 익숙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피로로부터 도망치듯 떠나는 여행을 다룬다. 집 안 벽지의 오래된 얼룩처럼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지만 여행은 불현듯 그에 맞설 힘을 부여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은 ‘알쓸신잡’에 출연하면서 새로 알게 된 여행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 작가는 그동안 그의 여행에서 늘 1인칭 시점이었다. 그러나 여행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되면서 ‘여행을 하는 나’를 3인칭으로 보게 됐다. 그는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면서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고 밝힌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공동체로부터 소외돼 떠도는 자들의 쓸쓸한 숙명과 이를 벗어날 해법에 대한 것이고,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은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인 타지에서 경험하는 환대에 대한 글이다. ‘노바디의 여행’은 성숙한 여행자의 태도와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비교해 보여주고, 마지막 글 ‘여행으로 돌아가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여행자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어디서나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으로 접속이 가능한 현대에도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관광)’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여행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우리는 왜 끊임없이 여행할까. 그건 아마도 일상을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 복잡해진 마음을 비우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 이를 두고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여행하는 인간)’로 정의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여행의 이유’를 캐다 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며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안내하는 것이야말로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라고 강조한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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