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중국땅서 피흘린 선각자의 발자취 따라..

상하이=CBS노컷뉴스 김중호 특파원 2019. 4.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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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인 11일, 중국 상하이를 비롯한 곳곳에서 추모,기념 행사 잇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시 마당루(馬當路) 임시정부 유적지에는 아침부터 방문객과 취재진들이 몰리면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사진=김중호 CBS 베이징 특파원)
4월도 열흘이나 지났지만 10일 중국 상하이(上海)의 아침은 잔뜩 찌푸린 하늘에 기온마저 쌀쌀해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날씨였다. 하지만 상하이시 마당루(馬當路)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골목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북적였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이날 기념행사 취재를 위해 한국 기자들이 몰린데다 일반 관광객들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은 까닭이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상하이를 찾은 임정의 후예들은 이날 하루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첫 목적지는 마당루 임시정부 청사다.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마당루 건물은 폭이 1m쯤 되는 좁다란 골목을 걸어 들어가야 조그만 입구가 나오는 여염집에 불과하다.

현재도 임시정부 건물 주변에는 비슷한 가정집들이 즐비한데 이날 사람들이 조금 많아지자 길이 막히면서 입주민들의 통행이 불편해질 정도였다. 100년 전인 1919년에는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을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임시정부의 초라한 모습은 100년 전 선각자들 앞에 놓였던 수많은 난관을 상징하고 있다.

한완상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과 여야 5당 원내대표단이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하면서 기념식이 시작됐다.

이날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사용했던 회의탁자가 한국에서 찾아온 임시정부의 후예들을 위해 100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놓여졌다. 이날만큼은 정쟁을 멈추고 임시정부 인사들이 사용했던 회의탁자에 둘러앉은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의 표정도 남달랐다.

원내대표들은 회의탁자 앞에 자리잡은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 앞으로 나가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었던 임시헌장을 낭독했다.
11일 상하이(上海)시 마당루(馬當路)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유적지를 방문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김중호 CBS 베이징 특파원)
11일 상하이(上海)시 마당루(馬當路)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유적지를 방문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백범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중호 CBS 베이징 특파원)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로 시작하는 임시헌장은 임시정부가 25년 동안이나 찾아 헤메던 꿈과 희망이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담담하게 읽어내려가는 제2조(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한다)와 제3조(대한민국 국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를 비롯한 10개항의 임시헌장은 그 후로 10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으로 하나하나씩 실현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다.

임시헌장 낭독을 마친 행사 참가자들은 임시정부 건물 내부를 참관했다. 2층에 위치한 김구 선생의 집무실을 방문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가파르기가 이를데 없다. 김구 선생의 아내인 최준례 여사도 이와 같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다 발을 헛디뎌 떨어졌고 그 후유증으로 숨을 거뒀다.
11일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한완상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과 최영삼 상하이 총영사,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표가 2층의 백범 김구 선생 집무실을 방문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임시정부 건물은 상하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계단이 가파른 것이 특징이다. (사진=김중호 CBS 베이징 특파원)
국회 원내대표단은 이어 임시정부 관계자들의 회합으로 유명한 융안(永安)백화점 옥상을 방문했다. 번화가인 난징동루(南京東路)에 위치한 융안백화점은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회합이 자주 열렸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임시정부 인사들이 1921년 모여 신년회를 가졌던 용안(永安) 백화점 건물 모습. 임시정부 인사들은 용안 백화점 옥상에 모여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현재도 임시정부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용안백화점은 현재도 백화점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김중호 CBS 베이징 특파원)
1921년 1월 1일에는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신년 축하식이 열렸던 곳이다. 이 신년 축하식이 열리고 임시정부 관계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은 현재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소중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100년 뒤 용안백화점을 찾은 임정의 후예들은 그들과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희생을 되새겼다.
1921년 용안백화점에서 찍은 임정인사들 사진(위), 11일 용안(永安) 백화점 옥상에서 한완상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을 비롯해 여야 5당 원내대표, 애국지사 후손들이 1921년 임시정부 인사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순례자들의 다음 발걸음은 '훙커우(虹口) 의거'의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매헌기념관으로 향했다. 25세에 불과했던 청년 윤봉길은 87년 전인 1932년 4월 29일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결행했다.

11일 상하이(上海) 매헌 윤봉길 기념관을 방문한 한완상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과 여야 5당 원내대표 (사진=김중호 CBS 베이징 특파원)
일왕의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며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등 젊은 협객들의 연이은 의거로 임시정부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상이 높이기도 했다. 장제스 국민당 총통이 "8억 중국인이 못한 것을 윤 의사 혼자 했다"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국인 땅에서 20여년간이나 피의 투쟁을 벌여왔던 임시정부의 발자취는 중국 땅 곳곳에 남겨져 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11일, 충칭과 광저우 등 임정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앞서간 선각자들을 기리는 행사와 후손들의 순례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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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CBS노컷뉴스 김중호 특파원] gabob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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