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디지-소년의 몸을 빌려 환생한 연쇄살인마 [시네프리뷰]

2019. 4. 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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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기존 공포장르의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사이코패스 킬러와 여성희생자, 빙의 내지는 환생과 심령현상 등등.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너무나 뻔히 예상되는 방식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제목 프로디지

원제 The Prodigy

감독 니콜라스 맥카시

각본 제프 뷸러

출연 테일러 쉴링, 잭슨 로버트 스콧, 콜므 포어

상영시간 92분

국내개봉 2019년 4월 4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판씨네마(주)
극장에서 본 내 인생의 첫 영화는 하필이면 공포영화 〈오멘〉이었다. 1977년,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었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장면은 소년의 머리카락을 헤치니 나오는 ‘666’ 표시였다. 아이의 몸을 빌려 나온 악마였던 것이다. 영화와 다시 조우한 것은 1989년, 대학생이 된 다음이었다.

서구권 장르영화에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사지절단에 피 분수가 솟는 고어영화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예외다. 연쇄살인마가 악의를 가지고 아이를 해치려 접근하더라도 그저 극 전개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맥거핀(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일 뿐 아이가 희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멘〉(리처드 도너 감독·1976)이나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 감독·1973) 같은 영화가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이가 악에 희생되는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영화의 ‘스토리 실험’이 선을 넘어 갈 데까지 간 셈이다.

살인마의 사살 시각에 태어난 아이

영화 〈프로디지〉의 주인공도 소년이다. 영화는 한 연쇄살인마의 은신처에서 탈출하는 여인의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사이코 연쇄살인마는 사람 손을 수집하는 강박을 갖고 있는데, 여인은 손이 잘린 채 도로로 뛰쳐나온다. 웃통을 벗고 저항하던 이 살인마는 은신처를 둘러싼 경찰의 탄환에 맞고 죽는다.

같은 시간. 전혀 상관없는 부부에게 한 아이가 태어난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부터 아이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영재일까.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생각이다. 그러나 영재유치원에 맡겨진 아이의 이상행동이 시작된다. 밤에는 생판 들어본 적 없는 언어로 잠꼬대를 한다. 알고 보니 그 말은 헝가리어이고, 누군가를 저주하는 말이다. (나중에 부모는 자기들의 아이가 태어난 시각에 죽은 연쇄살인마가 그쪽 태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좋은’ vs ‘그렇고 그런’ 영화의 차이

총평하자면 평이하다. 예전 한 리뷰에서 잘된 장르영화와 ‘그렇고 그런’ 장르영화를 나누는 기준을 언급한 적이 있다.

거의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기존 장르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서구권 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반전이 영화 말미에 있는데, 영화를 보실 분들도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그 엔딩시퀀스만 두고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듯싶다. 영화의 보도자료에는 세계 각지 평론가들이 보내는 영화에 대한 찬사가 요란하게 실려 있지만….

영화에는 기존 공포장르의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사이코패스 킬러와 여성 희생자, 빙의 내지는 환생과 심령현상 등등.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너무나 뻔히 예상되는 방식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흔히 핍진성이라는 개념으로 소비되는 영화의 ‘그럴 듯함’은 추체험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과 이어져 있다.

연쇄살인마의 영혼이 빙의된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부모들의 과도한 기대가 아이에게 압박이 된 것은 아닐까. 전생퇴행 요법으로 아이에게 빙의된 영혼의 전생을 추적하는 의사 아서는 공인되지 않은 학설을 주장해 의사공동체에서 추방된, ‘알고 보니’ 미친 과학자는 아닐까. 이런 이설(異說)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너무 빤히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전반적으로 심드렁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번 이스케이프룸을 리뷰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 정도의 이야기로 장편영화를 찍기엔 10% 정도 살짝 모자란 느낌이다.

영화에서 연쇄살인마의 영혼에 빙의된 소년 마일스 역을 맡은 잭슨 로버트 스콧은 범죄수사물 〈크리미널 마인드〉, 좀비물 〈피어 더 워킹 데드〉에 출연한 뒤 스티븐 킹 원작의 〈그것〉에서 ‘빨간 풍선을 손에 쥔 노란 우비소년’ 조지 역으로 나왔었다. 올해 개봉하는 영화 2편에도 출연할 모양인데, 어째 출연 작품 장르가 한쪽으로 치우쳤다. 2008년생이니 올해 만 나이로 11살인데,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작품을 선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싶다. 부모들은 어떤 생각일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도 확실히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제목으로 사용된 ‘프로디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 건 영국의 일렉트릭 록그룹이겠지만, 여기에서는 말 그대로 ‘신동(神童)’이라는 뜻이다.

공포영화의 주인공 역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경향자료

장르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아역배우들은 항상 관심을 받는다. 〈엑소시스트〉의 악령 들린 소녀 리건 역을 맡았던 린다 블레어가 대표적이다. 〈엑소시스트〉가 1973년작이고 그가 1959년생이니, 실제 영화를 찍을 당시는 10대였지만 영화는 그에게 국제적인 악명을 안겼다. 어린 나이에 그런 험한 역할(그녀가 신부들에게 뿜어내던 푸른색 구토물은 악령 들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목이 280도 돌아가는 것은 또 어떤가)을 해냈으니, 배우로서 그의 경력 앞엔 무궁무진하고 화려한 길이 뻗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영화정보사이트 IMDB(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에 실린 간략한 바이오그래피에 따르면 블레어는 최연소 골든글로브를 받았고, 아카데미상까지 받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몇몇 장면에 대역을 썼고, 악마 목소리 연기는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메르세데스 매캠브릿지)이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상은 무산됐다. 청소년기 마약과 관련한 지저분한 뉴스에 그녀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경력은 망가졌다.

이후 출연한 영화들도 신통치 않았다. 그녀는 후딱 해치우는 싸구려 B급 영화 전문 감독들이 노리는 일종의 먹잇감이 되었다. ‘린다 블레어’라는 이름값만으로 꽤 팔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1980년대 제작된 B급 비디오용 영화들에는 ‘린다 블레어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들이 꽤 된다. 이후 그의 배우 경력을 일별해보면 상당수가 단편영화이거나 TV시리즈물에서 단역 출연이다. 그래도 또 아는가. 올해로 만 60세가 되었는데, 배우 인생도 60살부터 리셋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엑소시스트〉를 능가하는 대작 주연배우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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