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1/3 농지 소유..농지법 위반·공문서 위조 판친다

2019. 4. 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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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부동산 이해충돌 현장을 가다-도로
의원 1인당 토지 4518평 소유, 일반 국민의 15배
의원 소유 땅, 여의도 면적 1.5배
김세연 의원 최대 면적..농지는 박덕흠 1위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한겨레>가 지난해 3월 공개된 국회의원, 정무직 공무원 등 공직자 재산 등록 내용을 분석한 결과, 국회의원 1인당(배우자 소유 포함) 평균 1만4908.67㎡(4518평)의 토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 1인당 소유 토지(300.6평)의 15배, 행정·사법부 공직자(2093평)의 2.1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의원 298명이 소유한 토지 면적은 444만2784.6㎡로 여의도 면적의 1.5배다.

의원별로 보면,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26만3291평으로 최대 면적의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농지를 가장 많이 가진 의원은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4만568평이다. 시·군 단위로 분석했을 때 3곳 이상의 지역에 토지를 보유한 의원은 16명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철민·변재일·유동수·이학영·전해철 의원, 자유한국당 강석호·박덕흠·이완영·이채익·장석춘·정우택·조훈현·최교일 의원,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 무소속 이정현 의원 등이다.

국민 1인당 소유 토지는 통계청이 2017년 공표한 ‘토지소유현황 통계’를 이용해 국공유지와 법인 토지 등을 제외한 민유지 면적 5만1517㎢를 주민등록 인구로 나눈 수치다. 행정·사법부 공직자 1인당 평균 보유 토지는 지난해 재산 공개 대상자 가운데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을 제외한 854명의 토지를 분석한 결과다.

■ 농지법 위반, 공문서 위조 다수 확인

<한겨레>가 집계한 의원 1인당 보유 토지 4518평을 지목별로 구분해보면, 임야가 3608평으로 가장 많고 농지 658평, 목장용지 117평, 잡종지 59평, 대지 38평 순으로 분석됐다. 두번째 가장 많이 소유한 지목이 농지다. 농지를 보유한 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 가운데 53명이 매입을 통해 소유했고 46명이 상속 또는 증여 받았다.

주목할 점은 전체 의원의 17.7%인 53명이 농지를 매입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지목과 달리 농지는 경자유전 원칙과 식량 주권을 위해 헌법에서 보호하는 토지다. 헌법 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농업 생산성 제고와 합리적 이용을 위해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인정된다”고 규정한다. 스스로 농업을 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농지를 취득하기 위해선 농업경영계획서를 포함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야 하고, 농지를 매입하면 휴경을 할 수 없고 스스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무가 부과된다. 정부가 매년 농지 이용 실태 조사를 통해 휴경 여부를 단속하는 이유도 농업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겨레>는 수많은 의원들의 농지가 개발을 기다리며 휴경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농지법에 따라 공직 취임 이후에 소작농을 둘 수는 있지만, 의원 당선 이전부터 불법 소작농을 통해 관리한 농지도 있었다. “다른 목적 때문에 농지를 매입했는데 다들 나무를 심길래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나무 심으면 문제없지 않으냐”고 떳떳하게 말하는 의원도 있었다. 과실수 등을 심어 놓으면 휴경은 아니기 때문에 농지법 위반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의원들의 농지취득자격증명은 농사를 스스로 짓겠다는 허위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실수요가 아닌 농지 매입이 증가할수록 땅값은 오른다. <한겨레>가 만난 많은 농민들이 자녀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지를 팔고 소작농이 되거나 농지가 개발되면서 땅이 국가에 수용됐다. 개발 예정지 인근 농지는 시세 차익을 노리는 ‘가짜 농부들’이 땅을 사들이는 바람에 가격이 올라 사기 어려워졌다. 개발이 집중되는 경기도·인천시와, 농지가 골프장과 레저시설로 바뀌는 강원도에서 밀려난 진짜 농부들은 더 값싼 농지를 찾아 충청도, 경상도로 떠나거나 농업을 포기했다. 법안을 만들고 심사하는 의원들의 농지 소유 행태는 농지법 위반, 공문서 위조 등 불법으로 가득했다.

■ 부동산 관련 이해충돌 방지 제도 필요

국민 1인당 평균 소유 토지와 비교하면 국회의원의 경우 15배, 행정·사법부 공직자는 6.9배에 이를 만큼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공직자들의 이해충돌 방지 제도나 법안은 전혀 없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하는 ‘주식 백지신탁’ 제도가 운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주식을 중심으로 이해충돌 방지 제도가 발전해온 미국과 캐나다에서 영향을 받은 탓이다.

부동산이 재산 증식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한국 상황을 고려해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이해충돌 방지 제도가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5년 부동산 백지신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자윤리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고위 공직자가 재산등록 때 부동산 실수요 목적인지 설명하게 하고, 해명을 못하면 백지신탁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은 지나치게 사유재산권을 제한한다는 지적과 함께 폐기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워낙 땅이 좁고 수도권 집중이 심해 한국만의 부동산 관련 규정은 필요하지만, 전국적 단위로 개발과 부동산 정책이 집행되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업무에서 배제할지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무조건 백지신탁해서는 현실성 없는 정책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괄적 부동산 백지신탁보다는 특정 사업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투입되기 시작하면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가 연관 부동산을 신규 매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구체적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의원이 이해관계가 있는 예산안이나 법안을 심사할 때 제척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위원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제척 사유로는 △위원 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이 해당 예산안·법안에 관해 당사자이거나 공동 권리자, 공동 의무자인 경우 △위원이 해당 예산안·법안의 신청인과 친족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경우 등을 열거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자신의 토지와 관련한 각종 규제를 스스로 완화하거나 각종 개발 예산을 확보하는 행위는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 있거나 직무에서 배제된다.

재산 공개 제도가 이해충돌과 관련해 유기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국회의원,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정무직 공무원, 일반직 1급 이상 공무원 등은 매년 재산 변동 사항을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공직자 재산 형성 과정을 검증한다는 목적으로 신고한 내용이 관보에 공개되는 데 그치고 있어, 공직자의 재산과 업무 관련성을 유기적으로 분석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국회의원 재산이 현재 국회 홈페이지와 관보에 공개될 뿐이어서 이해충돌과 관련해 감시할 수 없다. 상임위원회 등에 상시로 재산 내용을 공개하면 추진 법안과 재산의 관련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재산 공개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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