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공시가 논란] 공무원 1명이 2만 개별지 조사 .. 현장 조사는 엄두도 못내

진동영 기자 2019. 3.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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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정부가 토지·주택 공시가격을 시세와 가깝게 맞추겠다며 올해 대폭 올리면서 부동산 시장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공시가격이 급등한 일부 지역 주민들은 집단으로 공시가 하향 조정을 건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큰 폭으로 뛴 공시가 외에 들쭉날쭉 한 산정 기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개별주택 및 공동주택 공시가 이의신청은 오는 4월 4일까지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 되면서 올해 표준 및 개별 공시가격 이의신청 건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도 추락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기회에 공시가격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공시가격제도가 주택시장 안정과 조세 형평성을 이룬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현 시스템 하에서는 신뢰도 저하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력만 놓고 봐도 개별 공시가 조사는 공무원 1명이 2만여 필지를, 공동주택은 한국감정원 직원 1명이 하루에 180가구를 조사하는 상황이다.

◇공시가격이 뭐길래... 보유세 등 60여 행정목적 사용 =정부는 매년 1월 1일을 시세를 기준으로 공시가격을 산정한다. 공시가격은 과세(5종), 복지(10종), 부담금(12종), 감정평가(19종), 기타 행정목적(22종) 등 모두 60여 개의 행정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1989년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제도가 최초 도입됐고 이어 2005년부터 주택시장 안정과 조세 형평성 목적을 위해 주택공시제도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공시가격은 종류별로 산정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토지와 단독주택의 경우 ‘표준-개별’ 방식을 활용한다. 전체 개별 부동산 중 인근 지역 내 특성과 가격 수준을 대표할 만하다고 판단되는 ‘표준지’ 또는 ‘표준주택’을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별 부동산의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공동주택은 공시대상 전체 공동주택을 전수 조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표준지 공시가격은 감정평가사가, 표준주택과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한국감정원이 각각 평가해 산정한다. 개별 단독주택 및 개별 공시지가는 지자체 공무원이 표준지를 근거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1명이 2만 필지 조사···‘인력부족’ 심각=문제는 좋은 취지와 달리 현실적 제약이 너무 큰 탓에 부작용이 더 커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한 예로 많은 토지를 조사해야 하는데 이를 수행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오류가 생겨도 쉽게 수정되지 않고, 이런 과정이 누적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여기에 조사자마다 개별적인 주관적 판단까지 더해지다 보니 ‘정확한 평가’와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시가격 산정 기관인 한국감정원 내부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박과영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한국감정평가학회지에 투고한 논문을 통해 “표준-개별 방식으로 산정되는 토지와 개별주택은 조사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며, 개별지 및 개별주택 가격산정은 지자체 공무원이 선정하는 비교표준지 및 비교표준주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어 해당 절차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정된 인력과 기간 대비 공시대상 부동산 수가 많아 정확한 검증과 균형 확보에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오류가 지속 되면서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논문을 보면 공시지가 산정의 경우 3,300여만 필지에 대한 특성조사를 매년 수행해야 하는데 담당 공무원과 시간제 근로자 1,500여 명의 소규모 인력만 투입되고 있다. 2017년에는 공무원 1명당 2만 600여 개별지를 특성 조사하는 현실적 제약이 나타났다고 적고 있다. 이밖에 공동주택의 경우 한국감정원 직원 550명이 넉 달 반 만에 1,339만 가구를 조사한다. 한 명이 하루에 180가구의 가격을 매기는 셈이다. 표준지 공시가격을 정하는 감정평가사는 그보다 더 열악하다는 것이 논문의 핵심이다.

인력은 적은데 조사해야 할 땅은 많다 보니 개별지가 산정을 위한 현장조사는 필지 변동이나 인허가 등 변경사항이 발생한 토지에 한해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밖의 토지들은 전년도 조사결과를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 한 번 발생한 오류는 해를 거듭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이는 전반적인 공시가격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공시가격이 대폭 상승하는 서울 삼성동의 한 단독주택./서울경제DB
◇산정·평가 방식 공개 않는 정부, 시장은 ‘혼란’=하지만 정부는 “다양한 가격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엄정한 시세 분석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행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식가격 적정성 논란에 대해 한국감정원은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한국감정원 조사자들이 현장조사 등을 통해 공동주택 특성과 함께 실거래가, 감정평가선례, 시세정보, 매물정보, 주택매매가격동향 등 데이터를 수집하고 종합적인 분석을 거쳐 가격을 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도 공시가격의 산정, 평가 방식에 대해서는 근거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올해의 경우 공시가격과 시세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현실화율 제고’에 방점을 뒀는데 지역별로 상승률 편차가 커 이의시청이 빗발치고 있다. 단시가 내 급격한 공시가격 급등으로 인한 시장 혼란도 상당하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예정가격 변동률은 5.32%로 지난해보다 0.3%포인트 올랐다. 특히 서울은 14.17%나 급등했다. 표준단독주택은 전국 변동률이 9.13%, 서울은 17.75%나 크게 상승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시가격의 급등으로 당장 2019년에 건강보험료, 보유세나 종부세 등 관련 조세 등의 부담이 늘고, 2020년 상반기부터는 각종 복지제도 수급 기준 판단에 적용되면서 파장이 커질 것”이라며 “보유세 상승이 임대료에 전가될 경우 상가 임차인의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이탈 현상)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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