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입맛 사로잡은 대전 칼국수 맛과 역사 [이곳&이야기]

2019. 3. 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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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전쟁 직후부터 성업… 가업 물려받은 집, 방송 소개 맛집도 여럿

지난 1월 대전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중구 대흥동의 한 칼국숫집에서 지역 경제인들과 오찬을 했다. 밴댕이를 넣어 끓인 육수로 국물맛을 내고 쑥갓과 들깻가루를 듬뿍 얹은 손칼국수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운 문 대통령은 “맛있다”며 여러 차례 칼국수 맛에 감탄했다고 한다. 식사를 끝낸 후에는 주방을 찾아가 직원들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건네며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이날 오찬 메뉴에는 김밥과 수육도 곁들여졌다. 당시 문 대통령이 식사를 했던 스마일칼국수 주인 한상현씨(38)는 “부담감 때문에 잠도 못 이루고 준비했는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보람이 컸다”며 “대통령이 다녀가신 후 주말이면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대전 중구 문화동 서대전 시민공원에서 열린 ‘대전칼국수축제’에 참여한 외국인들이 칼국수 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중구제공

대통령 방문 때 오찬 메뉴는 대전시가 청와대에 추천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오찬으로 뭘 준비할까 고민하다 대전을 대표할 수 있는 음식으로 칼국수를 생각했다”며 “유명한 칼국숫집 몇 곳을 추려 사전조사를 하고 가장 적절한 장소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오찬 당시 허태정 대전시장에게 “대전은 왜 칼국수가 유명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허 시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전쟁 직후 원조받은 밀을 전국으로 보낼 보관소가 대전역에 있었고, 주변에 제분공장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그나마 구하기 쉬운 게 밀가루여서 칼국수가 흔해졌다고 합니다.” 외지인은 물론 대전 사람도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얘기다.

칼국수는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하지만 대전은 유난히 칼국숫집이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비교 통계는 없지만 ‘대전칼국수축제’를 열고 있는 중구에서 2013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대전에 있는 칼국숫집은 570곳이 넘는다. 칼국숫집 간판을 내건 전문점만 그렇다. 칼국수를 주메뉴로 하거나 차림표에 칼국수 메뉴를 포함하고 있는 음식점을 다 합하면 1500곳은 족히 넘을 것이란 계산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전의 일반 음식점 수는 모두 1만8800여곳이다. 어림잡아 열 집 중에 한 집은 칼국수를 판다고 봐도 무방한 숫자다.

칼국수 전문점만 570곳

대전에 칼국숫집이 많아진 배경을 놓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거의 정설로 굳어진 것이 허 시장이 답한 내용다. 한식진흥원이 펴낸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이야기〉를 보면 밀가루를 반죽해 칼로 썰어 만드는 지금의 칼국수 조리법은 1934년에 나온 〈간편조선요리제법〉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는 국수를 찬물에 헹구고 맑은 장국을 끓여 붓는 식으로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이때까지 칼국수는 여름에 먹던 음식이다. 밀이 귀해 음력 6월 15일을 전후한 수확기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던 칼국수가 지금처럼 흔한 음식이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로 전해진다. 미국의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보급되면서 칼국수가 서민음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당시 철도교통의 중심지였던 대전에 칼국숫집이 많아진 배경도 여기서 출발한다. 구호물자였던 밀가루가 대전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1960∼1970년대에는 서해안 간척사업 등에 동원됐던 노동자들이 밀가루를 노임으로 받아 집산지였던 대전역 주변에서 돈을 받고 되팔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이 맞물리면서 칼국수는 빠르게 대중화됐다.

대전에는 단순히 칼국숫집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50∼60년 동안 대를 이어왔거나 방송을 통해 소개된 맛집도 많다. 1958년부터 3대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대선칼국수와 1961년 문을 연 대전역 앞 신도칼국수가 지금은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알려져 있다.

제법 전국에 소문난 맛집이 많다 보니 칼국수는 대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로도 등장한다. 대전세종연구원이 진행한 ‘대전의 관광 이미지 평가를 통한 포지셔닝 구축방안 연구’를 보면 2017년 한 해 동안 한 포털사이트 블로그에서 ‘대전여행’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돼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20개 안에 음식으로는 유일하게 칼국수가 포함됐다. 그만큼 ‘대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이 칼국수고, 실제 대전을 찾아 칼국수를 맛보는 여행객이 많다는 얘기다.

대전 칼국수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성에 있다. 보통 지역마다 나름의 특징적인 재료나 조리법이 쓰이게 마련이지만, 대전에는 웬만한 종류의 칼국수가 다 모여 있다.

칼국수 종류, 함께 먹는 음식도 다양

흔한 바지락이나 해물칼국수부터 닭칼국수, 팥칼국수, 콩칼국수, 얼큰이칼국수, 김치칼국수, 어죽칼국수, 오징어칼국수, 옹심이메밀칼국수, 비빔칼국수 등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그 종류가 20여 가지에 이른다. 같은 칼국수여도 집집마다 국물을 내는 비법이나 면의 종류가 다르니 입맛과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진다. 곁들여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수육이나 족발, 만두, 김밥은 기본이고 매콤한 쭈꾸미 요리나 두루치기에 칼국수 면을 비벼먹고 담백하고 개운한 국물로 매운 입맛을 달래는 것도 대전 사람들이 자주 칼국수를 즐기는 방식이다. 박경덕 대전중구문화원 사무국장은 “칼국수는 대전이라는 도시를 닮아 있는 음식이다. 대전은 철도와 함께 성장했고, 철도를 따라 사람이 모여들었다”며 “충청도뿐 아니라 영·호남 사람이 골고루 섞여 있는데, 칼국수라는 음식에 담긴 역사와 다양성이 그 용광로 같은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 본다면 대전에서는 칼국수가 그런 음식이다. 셰프 박찬일씨는 각지의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소개한 글에서 대전역 앞 칼국숫집 이야기를 다루며 “칼국수처럼 단 한 그릇의 음식에 우리 현대사가 녹아 있는 경우도 드물 것 같다”고 썼다. 그는 주인장의 말도 이렇게 옮겨 적었다.

“어머니가 원래 냉면집을 하셨는데 값이 좀 나갔대요. 역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짐꾼과 마차꾼 같은 이들이 배불리 먹을 건 뭐가 있을까 하다 칼국수로 업종을 바꾸신 겁니다.”

이 집에는 한 그릇에 30원 하던 시절 노란 양푼으로 시작해 지금껏 쓰고 있는 각양각색의 칼국수 그릇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듯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 안에는 50여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함께 녹아 있다.

대전·이종섭 전국사회부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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