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맛깊은세상] 인생은 '카페 쓰어다' 같은 것

황온중 2019. 3. 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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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한다.

세계 최초로 커피를 발견한 에티오피아 카파에서 마신 커피, 시칠리아의 시골 바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터키 이스탄불에서 마신 터키 스타일 커피, 호주의 플랫 화이트, 오스트리아 빈의 멜란지, 연유를 잔뜩 넣은 베트남의 카페 쓰어다, 두바이에서 마신 향신료를 넣은 아랍식 커피의 맛이 혀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까지 마신 이 많은 커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피를 꼽으라면 베트남 하노이에서 맛보았던 카페 쓰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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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한다. 하루에 여섯∼일곱잔은 마신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새벽 4시, 노트북 앞에서 초콜릿 한 조각과 함께 마시는 에스프레소다. 모카 포트에서 뽑아낸 진한 에스프레소와 함께 노트북 앞에 앉아 원고를 재촉하듯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도 뭐라도 써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나는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마시고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이후 잠자리에 들 때까지 틈틈이 커피를 마신다. 에스프레소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종류는 가리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라떼, 플랫 화이트, 자판기 커피, 편의점 커피, 커피믹스 뭐든 좋다.

그동안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커피를 마셨다. 세계 최초로 커피를 발견한 에티오피아 카파에서 마신 커피, 시칠리아의 시골 바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터키 이스탄불에서 마신 터키 스타일 커피, 호주의 플랫 화이트, 오스트리아 빈의 멜란지, 연유를 잔뜩 넣은 베트남의 카페 쓰어다, 두바이에서 마신 향신료를 넣은 아랍식 커피의 맛이 혀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까지 마신 이 많은 커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피를 꼽으라면 베트남 하노이에서 맛보았던 카페 쓰어다이다. 2006년 여름 어느 오후,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노이 B역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서 있었다. 여행기자 생활을 접고 여행작가로서 처음으로 떠난 배낭여행. 나는 사막에 불시착한 남극의 펭귄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리를 떠도는 자극적인 음식냄새와 매캐한 매연이 코를 찔렀고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는 정신을 쏙 빼놓았다. 날씨는 또 왜 그렇게 더운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디로 가야 하고 뭐부터 해야 하지?’ 어디 시원한데 앉아 정신부터 차리자는 생각에 눈에 띄는 노천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종업원이 갖다준 커피가 담긴 유리컵 바닥에는 하얀 연유가 두껍게 깔려 있었다. 나는 빨대로 컵을 한 바퀴 휘저은 다음 한 모금 마셨다. 강한 쓴맛, 뒤이어 달콤한 맛이 따라왔다. 입 속은 쓴맛과 달콤한 맛이 어울려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때의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가 지금 내겐 없다. 다만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8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길 잘했고 여행을 직업으로 갖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하노이 B역 노천카페의 달콤한 카페 쓰어다 한 잔은 나의 새로운 생활의 시작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았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여행작가 일 역시 쉽지만은 않다. 자주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하노이에서 마셨던 커피를 떠올리며 묵묵히 짐을 꾸린다. 인생이 맨날 쓰기만 하겠어? 그렇다고 인생이 달콤하기만 하겠어? 인생은 마치 카페 쓰어다처럼 때론 쓰고 때론 달다.

최갑수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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