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than Words'로 빌보드 1위했지만, 알고 보면 과격한 밴드 '익스트림'

홍장원 2019. 3. 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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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그룹 익스트림. /사진=옐로우나인
[스쿨오브락-97] 예나 지금이나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거머쥐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쿨오브락' 시리즈를 통해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지만 전 세계를 말춤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조차 끝내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데도 전 세계 투어를 다니며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지금도 음악만 나오면 싸이의 말춤을 따라할 수 있는 지구촌 인구들을 합치면 꽤나 많을 것이다. 싱글 차트 1위는 앨범 차트 1위와는 또 다르다. 뭐가 더 쉽고, 뭐가 더 어렵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당연히 매우 따내기 힘든 타이틀이다. 다만 빌보드 앨범 차트는 앨범을 낸 뮤지션이 거물이거나, 앨범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면 출시 이후 소위 '개업발'에 의지해 반짝 1위를 찍고 내려오는 케이스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싱글 차트는 앨범의 인기와 무관하게(무관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겠으나) 곡 하나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를 평가해 그에 의해 선정되는 차트다. 메탈리카가 앨범을 내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를 수 있겠지만 싱글 차트 1위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어떤 곡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 곡이 음악을 활발히 소비하는 남녀노소 계층을 통틀어 고르게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댄스음악이나 이지리스닝 계열의 발라드에 비해 음악을 즐기는 폭이 좁은 록 뮤지션이 빌보드 싱글 1위곡을 배출해내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뮤지션은 이 어려운 걸 해낸 뮤지션이다. 게리 셰론(Gary Cherone·보컬)과 누노 베텐코트(Nuno Bettencourt·기타) '투톱'을 앞세워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밴드 '익스트림(Extreme)'이다.

이 밴드는 199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수놓은 명밴드라 할 수 있다. 결성은 1985년이었다. 이들은 미국 동부 보스턴을 근거지로 음악활동을 했다. 각자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셰론과 베텐코트, 드러머 폴 기어리, 팻 배저가 하나로 뭉친 게 1985년이었다. 이 당시 록의 조류를 보자면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를 위주로 금발의 사자머리, 단추를 세네 개쯤 풀어헤친 셔츠, 가죽 바지 패션을 착용한 채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팝 메탈'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밴 헤일런, 데프 레파드 같은 밴드를 꼽을 수 있겠다(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으로 위상이 엄청나게 상승한 '퀸' 역시 광의의 분류로 보자면 이들 밴드와 궤를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 역시 이런 밴드를 동경하며 음악을 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행보를 '펑키(Funky)'함으로 끌고가게 되는 밴드 내 변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기타리스트인 베텐코트다.

포르투갈 출신의 베텐코트의 기타는 '팝 메탈'의 범주로 국한하기에는 아까운 재능이었다. 다채로운 기타 테크닉으로 음악을 탄력 있게 이끌어 나가는 재능은 점차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이들은 점차 펑키한 리듬을 탑재하면 그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몇 마디 더 보태자면 베텐코트는 남성팬 못지않게 구름 같은 여성 팬을 몰고다니던 당대 '아이돌 기타리스트'였다. 베텐코트를 떠올리면 두툼한 입술에 남유럽 사람 특유의 건강한 균형미, 그리고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던 머리카락이 떠오른다. 남성미가 풀풀 풍기는 그의 외모는 많은 여성들의 팬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베텐코트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 못 않게 본인이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도 강했다. 기타 테크닉은 당대 손꼽히는 수준에 오를 정도로 전문가의 인정을 받았다. 한마디로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탁월한 기타리스트였던 셈이다. 여기에 자의식까지 강한 캐릭터이니 '밴드'에 국한해서 본인의 재능을 펼쳐보이기에는 몸이 근지러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그래서 그는 그 자신만의 앨범을 따로 만들어 내기도 하는 등 '솔로 활동'에도 많은 욕심을 부렸다. 보통 밴드에서는 프런트맨인 보컬의 인기가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기타리스트가 돋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베텐코트는 이런 록밴드의 문법에서 한 걸음 비켜 서 있는 캐릭터였다.

다시 원래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익스트림이 펑키한 리듬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중적인 멜로디를 뽑아내는 데 재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라 그들을 대스타로 만든 '모어 댄 워즈(More than Words)'는 전형적인 멜로딕 발라드의 범주에 넣을 만하다. 특유의 펑키한 리듬이 실린 과격한 곡을 앨범 전반에 깔아놓고, 대중성이 높은 곡을 중간에 배치해 이 곡이 앨범 전반 홍보를 '하드캐리'하는 최적의 조건이 완성된 셈이었다(그래서 이들이 한창 인기가 있던 시절, More than Words의 나긋나긋함에 반해 앨범을 샀다가 온통 시끄러운 노래만 도배되어 있는 탓에 깜짝 놀랐다는 앨범 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의 데뷔앨범 '익스트림(Extreme)'은 1989년에 나왔다. 이 앨범까지는 무난한 성적을 거뒀다. 바로 다음 앨범인 '익스트림Ⅱ:포르노그라피티(Extreme Ⅱ : Pornograffitti)'에 앞서 언급한 'More than Words'가 실려 있다. 이 곡이 초대박을 쳤다.

Saying 'I love you' is not the words(사랑한다는 말을 말이야)

I want to hear from you(꼭 너에게서 듣고 싶은 건 아니야)

It's not that I want you not to say(그 말을 하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니야)

But if you only knew how easy(하지만 네가 느끼는 감정이)

It would be to show me how you feel(내게 보여주는 게 얼마나 쉬운지 안다면)

More than words(그건 단순히 말 이상이라는 거야)

is all you have to do to make it real(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네가 해야 될 것이)

Then you wouldn't have to say(그러면 넌 내게 그 말을 할 필요도 없지)

That you love me(날 사랑한다는 말)

Cause I'd already know(왜냐면 넌 이미 알고 있으니까)

What would you do(만약에 말이야)

If my heart was torn in two(내 마음이 둘로 나뉜다면 어떻게 하겠니)

More than words to show you feel(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야)

That your love for me is real(너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What would you say(만약에 말이야)

If I took those words away(내가 그 말을 없애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니)

Then you couldn't make things new(그렇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Just by saying I love you(네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More than words(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Now that I've tried to talk to you(난 이제 너와 대화하고)

And make you understand(널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해)

All you have to do is close your eyes(네가 해야하는 건 그냥 눈을 감고)

And just reach out your hands(그리고 손을 뻗어)

And touch me(날 만지려고 해봐)

Hold me close(날 꼭 안아줘)

Don't ever let me go(날 안고 보내지 말아줘)

(후략)

이곡은 베텐코트가 기타를 가지고 현관에서 곡을 구성하던 중,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보컬 셰론에게 가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베텐코트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희소성이 없어진 것을 비판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하라는 의미에서 이 곡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흑백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를 보면 보컬 셰론과 베텐코트가 꽃미남 외모를 휘날리며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 꽃미남 밴드였던 스키드 로(Skid Row)가 큰 인기를 끈 것 처럼 익스트림 역시 꽃미남 투톱을 내세운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완전히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앨범의 타이틀은 포르노그라피티였다. 말랑말랑한 노래 가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단어다. 이 앨범은 이 곡 하나 빼고는 완전히 성격이 딴판인 곡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물론 When I First Kissed you를 비롯한 부드러운 곡도 있었으나). 예를 들면 겟더 펑크 아웃(Get The Funk Out)이나 디케이던스 댄스(Decadence Dance) 등을 꼽을 수 있겠다(디케이던스 댄스는 한국 아마추어 밴드 사이에서 '데카당스 댄스'로 불리며 카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따라하기는 어려웠지만). 당연히 후자가 익스트림의 본래 모습에 훨씬 가까운 곡들이다. 곡을 들으면 셰론의 탁월한 보컬과 베텐코트의 리듬감 넘치는 기타를 만끽할 수 있다. 왜 기타 키즈들이 베텐코트를 우상으로 두고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 들으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익스트림의 정점은 사실 이 앨범이 끝이었다. 1992년 내놓은 '3사이즈 투 에브리 스토리(3 sides to Every Story)'는 앨범을 'Yours' 'Mine' 'The Truth'의 세 파트로 나눈 스토리 있는 앨범이었다. 싱글인 '레스트 인 피스(Rest in Peace)'가 메인스트림 록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나름 선전했지만 발매 이후 앨범이 70만장 팔리는 데 그쳐 200만장 넘게 나갔던 전작에 비해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다음 앨범이 잘됐으면 괜찮았을 텐데, 아쉽게 이후 앨범은 더 큰 흥행 참패를 맛보게 된다.1995년 나온 네 번째 앨범 '웨이팅 포 더 펀치라인(Waiting for the Punchline)'은 흥행 측면에서는 매우매우 실패한 작품이었다. 결국 익스트림은 고비를 넘지 못하고 해체의 길을 밟는다. 베텐코트는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셰론은 이후 '벤 헤일런'의 보컬로 영입된다. 드러머 기어리가 탈퇴한 자리는 훗날 드림 시어터 드러머가 되는 마이크 맨지니가 들어온다.

이후 익스트림은 록마니아 사이에서만 기억되는 밴드였다가 2008년에 재결성해 지금도 활동 중이다. 보컬 셰론, 기타 베텐코트, 베이스 팻 배저(Pat Badger), 드럼 케빈 피게이레두(Kevin Figueiredo)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인기는 전성기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투어를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셰론의 보컬 파트는 상당히 고음역인데 나이가 든 지금도 여전히 '짱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네 번째 앨범에 실린 '힙 투데이(Hip Today)'를 추천 곡 중 하나로 꼭 꼽고 싶다. 셰론의 변화무쌍한 보컬과 베텐코트의 기타 기교가 잘 어우러져 흥행에 참패한 앨범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묻어버리기엔 아까운 곡이다. 듣다보면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리는걸 느낄 수 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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