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난 새끼 뻐꾸기.. 키워준 뱁새의 사랑을 알까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는 거의 필사적으로 벌레를 잡아 먹이며 키운다. 거의 한 달가량이나 제 몸보다 열 배나 더 큰 뻐꾸기 새끼를 품고서….
여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먹이를 잡아 나른다. 새끼를 다 키운 다음 힘에 부쳐 목숨을 잃기도 한다. 다 자라서 하늘을 날게 되면 뻐꾸기 새끼는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훌쩍 어미 새(뱁새) 곁을 떠난다.”
뱁새는 그런 뻐꾸기 새끼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곤 했다. 새나 사람이나 한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생각도 그럴 것이다. 작가 이순원은 말한다. “내가 본 것은 그 안에 깃들어져 있는 자연의 지극한 모성이다. 자연이 어머니고, 어머니가 자연이다. 이 작품을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어머니께 바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적 서정을 솜씨 있게 묘사하는 대표적 작가 이순원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사랑을 담은 장편소설을 냈다. ‘정본 소설 사임당’ 이후 2년 만이다. 뱁새의 눈물겨운 ‘모정’과 모험을 작가만의 감성적인 문장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가는 고향인 강릉 대관령 숲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우연히 들었다고 했다. 뻐꾸기는 아프리카에서 1만4000km를 비행해 뱁새 둥지에서 알을 낳곤 한다. 뱁새는 막 알을 까고 태어난 뻐꾸기 새끼를 마치 제 것인 양 열심히 키워낸다. 이를 알아차린 작가는 작품을 구상했다. 뻐꾸기의 특성과 생태, 지구를 반 바퀴 가로지르는 기나긴 여정에 착안한 것.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육분이.’ 평균 수명 4년에 뱁새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붉은머리오목눈이다. 빠르게 날거나 수명이 긴 다른 새들에 비해 작고 보잘것없다. 하지만 봄엔 오목눈이 새끼의 어미로, 여름엔 뻐꾸기의 어미로 새 생명 탄생에 일조한다. 제 몸집의 열 배에 달하는 새끼를 천신만고 키웠으나,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가 버린 새끼 ‘앵두’를 원망한다. 그리움에 못 이겨 하는 모성 자체이기도 하다. 육분이는 자신을 탓하면서도, 오히려 우주의 질서로 자리매김한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가냘프지만 힘차게 날갯짓하며 제 운명을 살아가는 뱁새의 한 생애는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뱁새는 늘 천적에 쫓기지만 함께 무리지어 종을 이어가며 생의 탄생에 일조한다. 이런 뱁새의 모습이 던지는 삶의 무게와 철학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작가는 최근 출간 간담회를 갖고 소설의 모티브에 대해 설명했다. “뻐꾸기 새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 뱁새가 죽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키우면서 우리는 모를 뻐꾸기와 어미새 간의 정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뻐꾸기가 아프리카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자신을 키워준 뱁새의 모습을 기억해서라고 합니다. 뻐꾸기가 오목눈이를 기억한다면, 키우는 오목눈이 역시 뻐꾸기에 대해 사랑스럽다는, 다 큰 아이가 장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이 작가는 육분이 외에도 생명과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살아 있는 벌레는 잡아먹지 않고 짝짓기도 하지 않는 ‘철학하는 오목눈이’ 등을 등장시켜 우리 삶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되묻는다. 그러면서 육분이의 날갯짓을 통해 삶을 지속해 나가는 속도와 방향을 제시한다. 소설 속 주인공 육분이의 말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 빠른 것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지는 않아. 어디로 갈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와 방향을 아는 게 중요하지. 어떤 목숨붙이도 자기가 태어날 자리를 자기가 결정할 수 없다네. 우리 스스로가 있을 자리를 결정해서 태어나는 게 아니니까.”
이순원 작가의 이번 작품이 던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의미 없는 비교 속에서 갈 길 잃은 사람들에게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전하는 내용이다. 작고 고독한 오목눈이를 통해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게임 전문 제작사인 드림리퍼블릭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 예정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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