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배달 전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김태훈 기자 2019. 3. 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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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선식품 새벽배송 등 배달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하지만, 이면의 부작용도 무시 못한다. 배달공화국의 명과 암을 조명했다.

경기도 오산시의 한 유통업체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배송 상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배달’과 ‘배송’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안내된 바로는 “‘배송’의 ‘송(送)’은 ‘보내다’의 의미로 ‘출발점’에 좀 더 가까운 의미를 나타내는 데에 비해 ‘배달’의 ‘달(達)’은 ‘이르다’의 의미로 ‘도착점’에 좀 더 가까운 의미를 나타내는 듯”하지만 “구분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실제 쓰임에서는 혼용이 가능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보다 경험에 가깝게 구분해 보자. 짜장면은 ‘배달’이 어울리고, 의류는 ‘배송’이 어울린다. 운반하는 대상의 크기나 부피와는 상관없이 금방 도착하면 ‘배달’, 비교적 더 시간이 걸리면 ‘배송’이 쓰였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무엇이든 집까지 가져다준다. 그것도 다음날 아침, 이르면 당일에도 ‘배송’한다. ‘배달’과 ‘배송’을 가르던 시간적인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주문받은 상품을 다른 업체보다 더 빨리 고객 손에 쥐어주는 것이 유통·물류·운송·외식업계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경쟁의 핵심주제가 되었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유통·물류체계의 발전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문량을 오차없이 예측하고, 곳곳에 분산된 물류센터에서는 주문받은 상품을 실시간으로 출고한다. 마지막 남은 관건은 하나, 소비자의 집앞까지 도달하는 물리적·시간적 거리를 어떻게 줄이느냐다.

한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된 배달원 김모씨(38)가 이 거리를 단축시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이륜차(오토바이)를 타고 보행자들이 걸어다니는 보도(步道)를 내달리는 오래된 방식이다. 차도에서는 보통의 사륜차들 사이를 헤집고 앞서나가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보도에 올라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위법이고 간혹 단속 ‘딱지’를 끊을 때도 있지만 당장의 배달이 급한 상황에서는 신경쓸 겨를이 없다. 이륜차로 보도를 지나가며 얼마나 배달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지를 묻자 김씨는 “교통법규 다 지키며 배달해본 적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지만 보통 자가용(승용차)으로 배달하는 속도보다는 절반가량 시간이 줄어드는 셈”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배달과 배송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더 이상 배달의 대상이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 같은 배달앱 시장이 성장하고 배달대행업계 전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전까지는 ‘퀵서비스’나 ‘철가방’으로 대표되던 이륜차 배달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스마트폰 앱이나 소셜미디어(SNS)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이 거래되는 ‘플랫폼 노동’과 결합된 대표적 서비스가 이륜차 배달이다. 화장품 즉시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올리브영이나 슈퍼마켓 체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이 이륜차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당일배송을 실시할 정도로 이륜차는 유통의 최전선에 자리잡고 있다.

급증하는 이륜차 사고 이륜차를 통한 ‘빠른 배송’의 증가가 부른 대표적인 부작용이 교통사고 증가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의 이륜차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2008년 발생건수가 1만629건이었던 이륜차 교통사고는 2017년 1만3730건으로 10년간 29.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 건수가 21만5822건에서 21만6335건으로 0.2% 증가한 데 비하면 두드러진 증가세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배달앱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점이 이륜차 교통사고가 급증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2013년 발생한 이륜차 사고는 1만433건으로 큰 변동 없이 평년 수준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배달앱 이용자가 늘기 시작한 2014년부터 1만1758건으로 급증하기 시작해 2015년 1만2654건, 2016년 1만3076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게다가 이륜차 사고 가해운전자 가운데 10대 청소년의 비율은 22.7%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일반적인 노동시장과 달리 고용은 물론 안전 문제에서도 보호받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의 특성에 더해 빠른 배달이 요구되는 이륜차 배달의 성격까지 맞물려 청소년들에게 더 큰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배달 건수만큼 수수료를 받아가는 배달대행업체 구조상 빨리 배달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속도전에 내몰린 배달원들은 보도를 질주하고 위험과 피해는 보행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사고 가해자 역시 안전 문제 외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보험료가 높아 종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책임보험만 가입한 배달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이륜차 약 216만6000대 중 종합보험 대인배상 항목에 가입한 이륜차는 약 12만3000대로 5.7%에 불과했다.

배송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업계의 노력은 전방위적이다. 이륜차를 이용한 배달이 보도를 내달리는 위법행위까지 감수하며 ‘틈새’를 만들어낸다면, ‘새벽배송’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온라인 쇼핑업계는 야간노동에서 새로운 틈을 찾는다. 특히 ‘쿠팡 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의 ‘투잡 알바’를 활용하는 쿠팡의 방식은 전형적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일 또는 단시간만 배송에 참여할 수 있게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에 모인 일반인들은 그날의 배송 할당량을 받아 처리한 뒤 정해진 수수료를 받는다. 극도로 유연해진 노동의 형태다.

한 배달대행업체 소속 배달원이 이륜차를 타고 보도를 주행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투잡으로 인해 ‘새벽이 없는 삶’

쿠팡 플렉스 배송에 참여하는 자영업자 박모씨(41)는 운영하는 식당 마감을 아내에게 맡긴 뒤 자정 무렵 쿠팡의 물류창고 앞에 도착했다. 박씨와 같은 지원자들은 본사 담당자의 선별을 거쳐 창고로 집결해 그날 배송할 물건을 할당받는다. 오전 1시를 조금 넘겨 박씨는 타고 온 승용차에 30개 남짓한 배송 상자를 싣고 배송지로 출발했다. 이날은 함께 탑승한 기자가 배송지 목록을 보며 도착지점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했지만 평상시에는 박씨 혼자서도 능숙하게 배송지점을 찾아간다. 낮과는 달리 대로나 골목 모두 혼잡하지 않기 때문에 동선만 잘 지키면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은 편이다.

난관은 현관 입구 비밀번호를 모르는 다세대주택에 도착했을 때 발생했다. 대부분의 아파트단지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배달원 단톡방에서 공유되지만, 몇 가구가 살지 않고 경비원도 없는 빌라는 들어가 고객 집 앞에 두고올 방법이 없다. 쿠팡의 ‘로켓 프레시’ 서비스는 전날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신선식품을 책임배송하겠다고 강조한다. 심야에서 새벽시간까지 배송이 이뤄지기 때문에 고객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다. 박씨는 “본부 직원한테 연락하면 배송지역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쿠팡맨’을 통해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나는) 일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고 생각하는데도 간혹 이렇게 배송지에서 예상못한 일을 겪으면 마감시간이 빠듯하게 배송을 마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낮부터 저녁시간까지 자신의 식당을 운영하는 박씨는 새벽배송을 마치면 오전 동안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처음 새벽배송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업무강도가 세지 않고 부업 개념으로 가볍게 시작했기 때문에 생활에 크게 무리가 간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심야시간 노동이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다보니 점차 피로가 쌓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웬만하면 배송 일이 있을 때마다 나가려는 것은 갈수록 식당 영업이 신통찮아지기 때문이다. 박씨는 “자영업을 하니까 ‘저녁이 없는 삶’은 당연했는데 이 일(배송업무)을 하고 나서부터 ‘새벽도 없는 삶’이 되어버렸다”며 “그나마 업무강도에 비해 받는 돈이 짭짤해 버텼는데 갈수록 (배송)단가도 낮아지기만 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업계가 ‘새벽이 없는 삶’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입을 위해 자발적으로 새벽배송에 뛰어드는 이들이 가장 많이 희생하는 부분은 수면과 휴식일 수밖에 없다. ‘샛별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마켓컬리’ 쇼핑몰의 배송업무는 소수의 직고용 배송 직원과 대부분의 협력업체 관계 직원이 담당한다. 특히 ‘지입차주’로 불리는 개인사업자들이 협력업체와 계약을 맺고 배송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낮 시간대에는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오프라인 대형마트나 홈쇼핑 업체와도 유사한 방식으로 계약을 맺고 배송업무를 처리한다. 그러면서 심야·새벽시간대를 배송시간으로 활용하는 업계의 움직임에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지난해까지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업무를 담당했던 지입차주 이모씨(45)는 한 홈쇼핑 업체가 당일배송 계약단가를 더 높게 부르자 업체를 바꿨다. 홈쇼핑의 당일배송도 주간배송에 비해 업무시간이 늘어나는 건 마찬가지지만 주간과 심야배송을 함께 맡는 ‘투잡’은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물론 내가 직접 배송하면서 ‘몸빵(몸으로 때우기)’하는 것보다는 수입이 줄지만 잠은 충분히 자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면서 “최근 업체마다 새벽배송이나 당일배송 서비스를 다들 하고 있기 때문에 운송사업자 번호판 인기도 높아져서 운송차량을 빌려주는 대가로 수입이 떨어진 걸 보충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마켓컬리나 쿠팡 등 스타트업 기반의 쇼핑몰이 파이를 키운 새벽배송 시장에 백화점이나 홈쇼핑 등 전통적인 유통기업이 전면적으로 뛰어들면서 배송을 담당하는 일선 차주들의 몸값은 다소 오른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장 규모가 급성장한 덕분이다.

출혈경쟁으로 유통업계는 ‘레드오션’ 2015년까지만 해도 100억원대에 그쳤던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18년 4000억원대로 급성장했다. 게다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기혼가구에서도 맞벌이가 늘고 자녀 수는 줄면서 그날그날 필요한 물품만 소량 구입해 소비하는 트렌드가 형성된 것도 배송서비스 환경의 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배송시간을 앞당기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데는 업계 1위를 먼저 차지해야 한다는 신경전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매장이 전통시장처럼 점차 위축되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당일배송 등 온라인과 연계된 배송서비스로 최소한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막대한 투자를 이끌어내며 배송 트렌드를 선도하는 동안 뒤에서 멍하니 보고만 있던 기성 대기업들이 ‘마켓셰어(시장 지배율)’를 빼앗기고 말았다”면서 “수도권 밖에서는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대기업들이 기존 유통망을 활용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업계 선두와 후발주자 사이에 아직까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유통업계 배송 출혈경쟁에 따른 부작용도 적잖다. 빠른 배송을 내건 경쟁이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게 확산된 탓에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IBK경제연구소는 ‘유통업 치킨게임 재점화, 새벽배송의 명암’ 보고서에서 “전통시장 상인과 자영업자는 신속배송과 저가격을 동시에 제공하기 어려우므로 새벽배송을 둘러싼 대기업들의 치킨게임은 전통시장과 영세자영업 위축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며 “실제 미국에서도 2017년 식품배송 스타트업으로 투자를 이끌어냈던 ‘블루에이프런’이 아마존 등 경쟁사의 진입 이후 기업가치가 90% 하락하는 등 결국 기존 유통망과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편 배송업무 특유의 성격상 ‘만인의, 만인을 향한 배송’이 업계에 자리잡게 되면 개인정보 관리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정보·인권 분야 시민사회단체의 조심스러운 우려도 나온다. 일반 시민이 당일 알바로 배송업무를 맡으면서 배송지의 고객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제어할 묘안은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는 물론 쿠팡 플렉스 배달원들도 각 공동주택의 현관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정도를 넘어 구체적인 주소와 개인 휴대전화번호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한 배달앱 이용 소비자가 음식 주문 후 불만을 표하는 후기를 남긴 뒤 주문을 받은 업주가 후기 내용에 불만을 품고 댓글에 고객 개인정보인 주소와 전화번호를 의도적으로 올려 논란이 됐다. 게다가 고객응대 및 불만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정보 이용정책에 ‘업주가 배달서비스 제공 완료 이후 이용자 정보를 6개월 동안 보관할 수 있다’고 명시한 조항은 현재도 유효하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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