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홍콩 지휘자 윌슨 응, 3·1절 베토벤 영웅교향곡 이끈다

이재훈 2019. 2. 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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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윌슨 응(Wilson Ng)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윌슨 응 서울시향 부지휘자는 데뷔 무대로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음악회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잘 부탁드립니다." 한국어 공부에 열심인 홍콩의 지휘자 윌슨 응(30)이 웃으며 우리말로 인사했다. 지난해 서울시향 부지휘자 공개채용에 지원한 113명 중에서 뽑힌 응은 약 한달 전부터 서울시향 단원들과 호흡하는 중이다. '잘 부탁드립니다'는 오디션 당시 그가 가장 먼저 한 한국말이기도 하다.

아직 한글 자음·모음만 읽을 줄만 아는 정도여서 영어로 단원들과 소통한다. 하지만 친화력을 과시하며 벌써 '서울시향 사람'이 다 됐다. 외국 국적자임에도 서울에 거주하며 상근 지휘자로 활동한다. 서울시향이 있는 광화문 인근 오피스텔에 산다. 서울시향이 주로 공연하는 서초동 예술의전당을 오갈 때면 지하철을 탄다. "홍콩 지하철처럼 깨끗한데 더 쾌적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항상 악보를 들고 다니며 펼쳐 보는 그에게 한국 지하철은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젊은 지휘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웹사이트 '뮤지컬 체어스(Musical Chairs)'를 통해 서울시향 부지휘자 모집 공고를 알게 됐다. 정명훈(66) 전 예술감독 재직 당시부터 서울시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며, 10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유튜브를 통해 서울시향이 연주한 차이콥스키, 말러를 들으며 감탄도 했다. "이렇게 큰 오케스트라가 부지휘자를 공개 채용하는 것이 놀라웠어요. 서울시향의 빅팬이라 '이건 좋은 기회야'라고 생각했죠. 하하."

서울시향은 재단법인 설립 첫해인 2005년부터 부지휘자 체제를 운영 중이다. 특히 성시연(2009~2013·전 경기필 상임지휘자), 최수열(2014~2017·현 부산시향 상임지휘자) 등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 활약한 다음 국내 내로라하는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안착했다.

부지휘자는 크게 수석 부지휘자급과 일반 부지휘자급(Assistant Conductor)으로 구분한다. 서울시향은 부지휘자 체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직제상 구분 없이 '부지휘자'라는 명칭으로 통합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보조 역에 국한되지 않고 넓은 예술적 반경을 보여줄 수 있는 지휘자에게는 수석 부지휘자급 직무를 부여한다.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윌슨 응(Wilson Ng)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윌슨 응 서울시향 부지휘자의 데뷔 무대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음악회'다.


수석부지휘자급으로 임용된 응 부지휘자는 "리허설 참관, 사무국과 소통, 행정적인 문제 조언 등 해야 할 일이 많아요. 매우 '도전적인' 일이죠"라고 했다.

독일 출신 마르쿠스 슈텐츠(54), 스위스 출신 티에리 피셔(62) 등 두 명의 수석 객원지휘자가 서울시향에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으나 2015년 말 정 전 감독이 사임한 이후 음악감독 자리가 공석이라 응 부지휘자의 책임이 막중하다. "예술적인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4월 교향악축제를 비롯해 다양한 콘서트 준비를 부지런히 하고 있죠."

슈텐츠는 그가 사사한 지휘자 중 한명이라 존재 자체 만으로 도움이 된다. "제 생각에 아이디어를 주고 그것이 조합이 돼 큰 힘이 됩니다.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슈텐츠 선생님의 리허설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영광이지요."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윌슨 응(Wilson Ng)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윌슨 응 서울시향 부지휘자는 데뷔 무대로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음악회 우리들의 독립 영웅’에서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을 연주한다. 2019.02.28. bluesoda@newsis.com

응 부지휘자는 재작년 자신이 이끄는 구스타프 말러 오케스트라와 부산마루국제음악제에서 공연, 한국 클래식음악계를 경험했다. 뜨거웠던 청중의 반응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그는 서울시향 단원들도 매우 좋다며 흡족해했다. "탄탄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어요. 조언을 하면 바로 수용을 하고 반응을 하죠. 같이 연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악단이에요. 세계의 어느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훌륭하죠."

응 부지휘자는 플루티스트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열한살 때 쯤 영화 '타이타닉'(1997·감독 제임스 캐머런)을 보고 감동 받았는데, 집에 색소포니스트 케니 G(63)가 연주한 '타이타닉' OST가 있었다. 응 부지휘자의 부친은 OST에서 들려오는 악기가 플루트라고 했고, 그는 플루트를 선물 받았다. 색소폰 소리와 달랐지만 플루트 소리에 매료돼 플루트 연주자의 길을 가게 됐다.

하지만 한 악기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독주자 또는 협연자로서 보람도 컸지만 좀 더 음악을 전체적인 것으로 보고 크게 해석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스코틀랜드 왕립음악원과 베를린 예술대학교 등에서 지휘를 전공하며 오케스트라의 '유니버설'함에 매혹됐고,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올해 상반기 중 홍콩 필하모닉, 중국 NCPA 오케스트라 등도 지휘한다. 서울시향 부지휘자의 명함을 달고 나가는 만큼 홍보대사 역이 기대된다. 응 부지휘자는 그러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서울시향은 유명해요. 제가 명성에 누를 끼치면 안 되죠."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윌슨 응(Wilson Ng)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윌슨 응 서울시향 부지휘자는 데뷔 무대로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음악회 우리들의 독립 영웅’에서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을 연주한다. 2019.02.28. bluesoda@newsis.com

응 부지휘자는 서울시향이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함께 3월1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세종S시어터에서 펼치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음악회-우리들의 독립 영웅'으로 국내 데뷔한다. 응 부지휘자와 서울시향은 이날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을 연주한다. '영웅 교향곡'으로 불리는 베토벤의 이 역작은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극적 구성이 특징이다.

응 부지휘자는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한국의 역사를 단숨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은 알게 됐다. 두 역사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 지휘봉을 그에게 맡겼다는 것은 이미 그를 서울시향 구성원으로 확실하게 인정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의 소중한 역사를 알리는 콘서트의 지휘로 데뷔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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