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시장 '성남·중앙시장'엔 먹거리가 흘러넘친다 [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2019. 2. 2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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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중앙시장을 알리는 입간판. 엄민용 기자

강원도는 한반도 내륙의 섬이다. 험준한 지형에 갇혀 있고, 남북의 대립으로 많은 제약도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면에서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강원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통일의 훈풍’ 속에 강원도가 남북교류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그동안 낙후돼 있던 강원도가 남북 경제교류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시점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준비해야 할 것 역시 적지 않다. 이에 <스포츠경향>은 연중기획 <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을 마련했다. 강원도의 수많은 시장을 소개하고, 그곳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여섯 번째 순서는 강릉의 ‘성남·중앙시장’이다.

성남·중앙시장의 맛집들은 늘 인파로 북적거린다. 수제어묵고로케 집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엄민용 기자

상황 1. 눈을 뜬다. 서둘러 아침을 준비한다. 하지만 어제도 식탁에 올랐던 뻔한 반찬에 아이와 남편은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휭하니 현관문을 나선다. 대충 설거지를 하고 잠시 쉬다가 오후 들어 마트에 가 보지만, 마트에 진열된 찬거리 역시 어제의 그것들이다. 입맛이 없다는 아이와 남편의 투정이 귓가에 왱왱거린다.

성남·중앙시장은 평일에도 관광객들이 시장을 가득 메운다. 엄민용 기자

상황 2. 눈을 뜬다. 서둘러 아침을 준비한다. 아이와 남편은 벌써 식탁에 앉아 있다. 막 끓여 낸 삼숙이탕과 갓 볶은 산채들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대충 설거지를 하고 오전 10시쯤 서울역에 나가 KTX를 타고 가며 잠시 눈을 붙이거나 미뤄 놓았던 책을 읽는다. 기차에서 내려 기분 좋은 볕을 받으며 15분쯤 걷는다. 시장이다. 별의별 것이 다 있다, 어제 못 보던 것들로 그득하다. 이것저것들을 조금씩 산다. 그 사이사이 닭강정, 호떡, 어묵 등 주전부리들로 점심을 대신한다. 지난번에는 바닷바람을 쐤으니 오늘은 커피의 거리에서 그냥 느긋이 커피나 한잔 마신다. 하지만 눈을 돌리는 곳 모두가 장관이다. 한껏 개운해진 기분으로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 저녁의 주요리는 살이 잔뜩 오른 코다리찜이다.

성남·중앙시장의 맛집 중 하나인 ‘명성닭강정’ 앞 풍경. 엄민용 기자
맛있는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서 ‘기다림’은 기본. 엄민용 기자

상황 1이 평범한 주부의 현실이라면, 상황 2는 자신을 위하고 가족도 챙기는 ‘똑똑한’ 주부의 모습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수도권에 사는 주부라면 누구나 가끔씩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강릉에 ‘성남·중앙시장’이 있는 덕이다.

강원도의 ‘강’이 강릉을 뜻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강릉은 예부터 영동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였다. 연곡천과 남대천 등을 비롯한 여러 강들이 논밭을 살찌게 하고, 기온이 온난한 데다 바다를 끼고 있는 강릉은 농산물과 수산물은 물론 백두대간의 임산물도 사시사철 풍성하다. 이들을 태백산맥 너머의 영서 지역과 교역하면서 자연스레 시장도 발달했다. 그 중심이 지금의 중앙시장이다.

2층 건물로 구성된 중앙시장은 생필품에서부터 온갖 먹을거리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다. 1층 도로변에 자리한 건어물가게들이 먼저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코다리와 반건조 오징어, 말린 열기와 양미리 등을 취급하는 곳이다. 도로 안쪽 건어물 상점에도 온갖 해산물을 말린 것이 그득 쌓여 있다. 1층에는 제수용품과 포목 등을 파는 가게들도 많다.

온갖 튀김들이 입에 군침을 돌게 한다. 엄민용 기자
명성닭강정의 닭강정을 주문해 먹어 봤다.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맛있다. 엄민용 기자
성남·중앙시장은 전통시장답게 도심의 마트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도 많이 판매되고 있다. 엄민용 기자
강릉막걸리는 순하면서도 깊은 맛을 자랑한다. 기존에 알려진 유명 막걸리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 맛이다. 엄민용 기자
‘중앙시장 왕족발’은 성남·중앙시장 상인들도 인정하는 유명 맛집이다. 엄민용 기자

길 복판에 좌판을 깐 할머니들은 사시사철 바뀌는 산채 등 여러 푸성귀를 판다. 할머니들 덕에 봄에는 두릅·곰취·곤드레 등 각종 산나물이, 여름에는 옥수수·감자가, 가을에는 송이를 비롯한 버섯과 산열매들이, 겨울에는 말린 고사리와 겨우살이 등이 장터에 넘친다.

중앙시장 지하에는 수산시장도 있다. 영동지역에서 잡히는 각종 수산물이 모여들어 신선한 회와 생선·젓갈 등이 거래된다. 이곳에서 싱싱한 수산물을 사가기도 하지만 노량진수산시장처럼 즉석에서 배를 채울 수도 있다.

2층에는 삼숙이탕을 비롯해 생선찌개와 알탕 등을 주로 하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이중 시장을 대표하는 것은 단연 ‘삼숙이탕’이다. 머리는 크고 몸통이 작아 마치 아귀를 닮은 듯한 ‘삼숙이’는 경기도에서는 ‘삼식이’, 충청도에서는 ‘물텀벙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탕으로 끓이면 그 맛이 시원해 해장국으로 인기가 높다.

성남·중앙시장의 김성근 성남시장 상인회 회장은 “상인회 전체가 ‘즐겁고 재미난 시장’ 만들기에 애쓰고 있다”고 전한다. 김 회장은 성남·중앙시장의 최고 명물인 ‘명성닭강정’ 대표이기도 하다. 엄민용 기자

과거 중앙시장 건물을 노점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들이 비가림 시설을 하면서 세워진 것이 ‘성남시장’이다. ‘성남·중앙시장’을 유명하게 만든 소머리국밥 골목과 닭강정 골목 등이 있는 시장이다. KBS2TV <1박2일>에 나와 더욱 유명해진 닭강정 골목은 원래 생닭을 팔던 점포들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닭튀김과 닭강정 가게로 바뀌었다. 생닭만을 사용해 맛이 좋기로 소문나 골목 전체가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먹자골목에서는 감자옹심이와 메밀 만두 등도 놓치면 아쉬운 먹거리다.

결국 ‘성남·중앙시장’은 그 뿌리를 일제강점기에 두고 있는 중앙시장과 중앙시장이 품어 안은 수산시장 그리고 최근 들어 중앙시장과 한 몸이 된 성남시장까지 ‘한 지붕 세 시장’으로 이뤄진 곳이다. 그런 만큼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으며 사고 싶은 것은 더 많은 시장이다.

성남·중앙시장 지하에는 수산시장도 있다. 엄민용 기자
수산시장 상인회 회장이 “이곳에서는 싱싱한 횟감들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고 자랑한다. 엄민용 기자

이곳이 이렇게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것은 5~6년 전부터다. 점점 쇠퇴해 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강릉시와 시장 상인들이 무던히 애를 쓴 결과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힘이 달리는 업종을 먹거리 업종으로 전환했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관광자원화하는 일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먹거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판단한 것.

전략은 적중했다. 맛집들이 하나둘 늘고 이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시장에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KTX가 개통되면서 호황은 거의 폭발 수준에 이르렀다. 강릉역에서 도보로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여서 강릉으로 여행을 온 이들은 누구나 이곳부터 들른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통행이 불편할 정도다.

성남·중앙시장에는 도심의 마트에서 보기 드문 것들도 많다. 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엄민용 기자
성남·중앙시장은 노점이 함께 공존하는 상생이 공간이다. 그래서 어느시장보다 정겹다. 엄민용 기자
시골 장에 어울리는 물품들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엄민용 기자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강릉시와 상인들은 마음을 더욱 다그치는 분위기다. 혹여 몇몇 상인의 불친절이나 뜻하지 않은 악재로 손님들이 발길을 돌릴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강릉시와 상인들은 위생적인 점포 관리, 친절할 서비스, 편리한 주차 등을 위해 늘 머리를 맞댄다. 야시장과 맥주축제 등 관광객의 발길을 이끄는 이벤트도 꾸준히 벌인다.

‘성남·중앙시장’이 대한민국 1등 전통시장의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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