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시대, 택시요금은 아날로그 계산

고영득 기자 2019. 2. 1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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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강북구 인수동에 사는 ㄱ씨는 17일 오전 집 앞에서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미아동으로, 평소 4000원가량 나오는 거리였다. ㄱ씨는 택시 기본요금이 3000원에서 3800원으로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갓 출발한 택시 미터기엔 3000원이 찍혀 있었다. 택시가 500m가량 나아갔고 ㄱ씨가 뒷자석에 붙은 A4 용지 크기의 ‘조견표(변환표)’를 만지작거리자, 그제서야 택시기사는 “아직 미터기가 바뀌지 않아 (100원 단위로 계산된) 그 표대로 요금을 정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택시 미터기는 4100원을 가리켰다. 기사는 손을 내뻗으며 “아직 카드를 대지 말라”고 하더니, 변환표를 보면서 카드 단말기에 ‘5000원’을 입력했다. 기사는 “시행 초기라 그런지 승객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한다. 우리도 번거롭기는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앞선 승객의 경우 표를 잘못 보는 바람에 요금을 덜 받았다”고도 했다.

요금 인상이 반영되지 않은 택시 미터기에는 4100원이 찍혀 있다. 조견표(변환표)에 따라 택시기사는 카드 단말기에 5000원을 입력해 요금을 정산했다.

전날 오전 4시부터 서울 택시의 기본요금이 800원 올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택시가 이전 기본요금이 반영된 미터기를 단 채 운행하고 있어 승객과 기사 모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2013년 택시 기본요금이 2400원에서 3000원으로 오를 때도 겪었던 ‘요금표를 보고 계산’하는 불편함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내를 달리는 개인·법인택시 7만2000여대 중 이날까지 새 요금이 미터기에 반영된 택시는 전날 서울시가 서초구 우면동 품질시험소에서 시범적으로 진행한 80대에 불과하다.

미터기 교체 작업은 평일인 18일부터 본격 시작하고, 이달 말이 되면 7만2000여대 차량의 미터기가 모두 교체될 것으로 서울시는 내다봤다. 시는 대규모 주차가 가능한 서울대공원과 월드컵공원 등 4곳에서 미터기 조정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말엔 일반 관람객이 많아 교체가 불가능하고 오는 28일까지 주말을 빼고 9일간 7만2000여대 차량에 대한 미터기 업데이트를 완료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택시 대수가 워낙 많다 보니 미터기를 일시에 업데이트하기 힘들다”면서 “이런 불편을 없애고자 요금 인상이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사전에 미터기를 바꿀 수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미터기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택시 안에 비치된 조견표.

택시요금 인상 때마다 변환표를 택시에 비치하는 관행은 1970년 7월 언론에 처음 등장했다. 요금을 놓고 승객과 기사가 시비를 벌인 사례도 적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예상 택시요금을 검색할 수 있는 지금도 50년 전 행정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지우선 서울시 택시물류과장은 “향후 ‘앱 미터기’를 도입해 현행 기계식 미터기를 전자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그러자면 미터기 검정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택시기사의 처우를 개선하면 고질적인 승차거부도 근절될 것이라며 요금 인상을 추진했다. 그러나 요금이 인상된 후에도 여전히 늦은밤 시내 번화가에서는 승차거부를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지 과장은 “기사들의 평균 수입이 올라가게 되면서 서비스 질은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최근에 서울시가 승차거부를 많이 한 택시회사 22곳에 운행정지 처분을 내렸듯, 승차거부에 대해선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번 요금 인상으로 법인택시 기사의 월 수입이 평균 217만원에서 275만원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법인 택시회사 254개가 가입된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이 서울시가 제안한 납입기준금(사납금) 동결안을 받아들이면서 택시회사는 요금이 인상되더라도 6개월간 사납금을 올리지 않는다. 또 사납금 인상이 가능해지는 6개월 후에는 요금 인상분의 80%를 택시기사 월급에 반영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택시요금이 오를 때마다 택시회사가 사납금을 올리는 바람에 요금 인상을 해도 기사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서비스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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