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석면해체공사 업체들 "가이드라인이 뭐예요?"

고경석 2019. 2. 15.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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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전북 군산시의 한 고등학교.

수도권의 한 석면 해체ㆍ제거 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건축사가 부업처럼 감리를 맡다 보니 석면 해체 공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공기 내로 공사를 마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꼼꼼하게 가이드라인을 점검하는 감리도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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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압 준수ㆍ위생시설 구비 등 지침 숙지 못해, 당국은 수수방관

지난달 경기 성남의 한 고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현장에서 음압측정기가 음압기 위에 놓여져 있다. 환경단체들은 밀폐된 작업 공간의 음압이 적정하게 유지되는지 확인하려면 음압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측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 제공

지난달 14일 전북 군산시의 한 고등학교. 석면해체 과정을 참관하던 조성옥(56) 전북안전사회환경모임 대표는 깜짝 놀라 공사 관리자에게‘작업 중지’를 요청했다. 교육부의 ‘학교시설 석면해체제거 가이드라인’의 주요 사항을 대부분 지키지 않고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은 작업장 내부 공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차단재로 밀폐하고 내부 압력을 -0.508㎜H2O(수주밀리미터) 이하로 유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내부 압력이 음압(陰壓 ㆍ대기압보다 낮은 상태)이 아니라 0에 가까워지거나 양압이 되면 비산먼지가 외부로 빠져나갈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체는 아예 음압기를 가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석면 분진이 날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습윤제도 뿌리지 않은 채 작업하고 있었다. 작업자는 보호구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 조 대표의 항의로 공사는 하루 동안 중지됐다가 재개됐지만 공사 관리자는 “가이드라인을 다 맞춰 공사를 하면 공기(工期)를 지킬 수 없다”고 도리어 불만을 표시했다고 조 대표는 전했다. 그는 “전북 지역 다섯 학교의 석면 해체 공사 현장을 방문했는데 적정 음압을 지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며 “사실상 전국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방학 기간 중 전국 각급학교에서 석면 해체ㆍ제거공사가 활발히 이뤄졌는데, 전국의 상황은 전북과 대동소이했다.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가 지난달 말 둘러본 경기 성남 지역 학교 석면 해체 공사 현장에서도 대부분 음압 준수나 위생시설 구비 등 주요 가이드라인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윤예성 전국학부모석면학부모네트워크 운영위원은 “감리 단체는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가이드라인 기준을 시민단체 모니터단에게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고 당혹스러웠던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가 지난달 17일 발표힌 ‘2018년 여름방학 전국 시ㆍ도교육청 학교석면공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사를 실시한 전국 614개 학교 중 교육부 가이드라인을 어긴 곳은 193곳(31.4%)에 달했다. 62.2%인 382개 학교에선 고용부 안전성 평가 최하위인 D등급이거나 미평가 업체가 공사를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2018년 지역별 석면 철거 공사. 박구원 기자

상황이 이렇지만 공사의 발주ㆍ관리ㆍ감독 책임이 있는 당국이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한다. 교육부 교육시설과 관계자는 “점검 결과 일부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만 업체들이 대체로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관계자도 “감리 업체들이 현장에 상주하며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모니터단이나 감리업체가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숙지하지 못하는 등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 학교를 석면공포에 빠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석면 해체ㆍ제거 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건축사가 부업처럼 감리를 맡다 보니 석면 해체 공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공기 내로 공사를 마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꼼꼼하게 가이드라인을 점검하는 감리도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사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학부모와 교직원, 지역 주민 등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학부모모니터단이나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의 지적이 현장에서 반영이 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일정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군 발암물질로 초미세먼지보다 작아 코나 기관지 방어막에 걸리지 않고 폐로 들어간다. 일단 폐로 들어간 석면 가루는 제거할 방법이 없는 데다 10~40년까지 잠복기를 걸쳐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조용한 살인자’로 불린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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