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곤충의 겨울나기..숨을 죽이다

이강운 곤충학자 2019. 2. 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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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과 곤충은 발생, 성장 등 생리적으로 많이 다르지만 가장 확실한 차이점은 산소를 세포 안으로 들이고 이산화탄소를 세포 밖으로 내보내는, 호흡 방법일 것이다. 숨 쉬는 일을 통해 살아있는 세포에게 산소를 공급하여 영양소를 만들고 대사 물질인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배출되어야 생명이 유지된다. 풍부한 산소를 몸의 각 조직에 보내면 조직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 호흡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대사 작용 중에 발생 된 이산화탄소와 찌꺼기가 남는데 이들을 잘 내 보내야 한다. 잘 먹고 잘 싸면 건강하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대왕박각시 애벌레와 제8배마디 숨구멍

기원 전 35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기를 일정하게 들여 마셔 몸속에 산소를 공급하는 인간과 달리 벌레는 공기를 흡입할 필요가 없는 육상동물로 분류하였다. 생물이 어떻게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의아하지만 당시 자연발생설이 팽배하던 시대이므로 이해는 간다. 그 이후로 약 2000년 세월이 흐른 후 1669년 이탈리아의 해부학자이며 생물학자인 말피기((Marcello Malpighi)가 누에를 해부하고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곤충 속 복잡한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산소를 직접 조직으로 전달하는 기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애벌레 숨구멍(x1,000)

사람은 코와 입으로 공기를 들여 마셔 여과하고 체온과 같은 수준으로 덥히고 습기를 주면서 산소를 허파에 보내 저장한다. 허파로부터 받은 산소를 금속단백질인 헤모글로빈 도움을 받아 빠르게 몸 구석구석으로 보내고, 그렇게 산소를 퍼뜨림으로써 각 기관들이 세포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받아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과 달리 곤충은 별도의 산소 저장기인 ‘허파’나 ‘헤모글로빈’이라는 호흡색소 없이 밖으로 노출된 숨구멍을 통해 직접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기관계(Tracheal system)라는 특별한 호흡 기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기나 깔따구처럼 산소가 부족한 오염 된 물에서 사는 애벌레들은 부족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혈림프 내에 헤모글로빈이 있고, 풀무치같이 크거나 활동성이 있는 곤충은 산소 확산을 보충하기 위한 허파꽈리 같은 공기 주머니를 배에 만들어 펌프 작용을 한다.

풀무치
풀무치 배의 공기 주머니

3억 년 전 날개 길이가 70cm나 되는 잠자리의 화석 기록을 보면 산소 양과 곤충의 크기는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석탄기 시대 당시 산소 농도가 35%로 현재 21%에 비해 높았고 많은 양의 산소를 몸 조직에 분배하는 게 훨씬 쉬웠으므로 크기가 문제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 중 산소가 지금처럼 줄어들면서 허파나 헤모글로빈 없이 기관계만으로 단순히 산소를 공급하는 곤충으로서는 산소 양에 맞춰 크기를 줄여가며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대왕박각시 번데기 제 3배마디 숨구멍 바깥 면
대왕박각시 제 3배마디 숨구멍 안쪽 면

한 겨울에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곤충의 호흡은 더욱 특별하다. 월동 중이거나 휴면 중인 곤충은 숨죽인 채 버티고 있으므로 산소 요구량이 매우 낮다. 에너지를 만들어 대사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이따금씩 숨구멍을 열어 한 번에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보내고 산소를 조금씩 흡수하는 가스 교환 방식을 이용한다. 대표적인 종류가 휴면 중인 대형 나비목 번데기다.
 

월동 중인 대왕박각시 번데기 내부 숨구멍

뜨겁고 습한 여름부터 춥고 건조한 겨울까지 약 9개 월 간을 휴면하는 대왕박각시는 무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건조한 겨울을 극복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온도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외부 영향을 받는 탈수는 막을 방법이 없다.

낙엽에 싸여 월동하는 대왕박각시 번데기

대왕박각시 번데기는 습도가 충분하면 숨구멍 여는 횟수를 줄이고, 습도가 부족하면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숨구멍을 자주 열 수 밖에 없다. 에너지 소모를 하면서 숨구멍을 열지 않기 위해 온도가 일정하고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북향에, 낙엽 수북한 곳이 대왕박각시 번데기가 선택한 최적의 월동지다. 애벌레 시절 가장 많은 산소를 들여 마시던 가슴숨구멍은 안으로는 열려 있지만 외부는 아예 없앴고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뱉던 제8배마디숨구멍은 흔적은 놔두었지만 안으로 닫아버렸다.

대왕박각시 번데기 앞가슴 숨구멍 안쪽 면
대왕박각시 제 8배마디 숨구멍 안쪽 면

휴면하는 곤충이 습도 조절에 실패하면 더 이상 발달은 없다. 유난히 가물었던 올 겨울, 습도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곤충이 많아질 것이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곤충 숫자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산소 없인 생명이 없다. 초파리 애벌레가 낮은 산소 농도에서는 크기가 작아지고 발육 기간이 길어지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산소 양에 따라서 크기와 발육 기간이 달라지는 것은 적응을 하였지만 산소의 질은 따져볼 일이다. 먼지로 뒤범벅된 질 나쁜 공기로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적응하기가 어렵다. 까닭 없이 군집이 붕괴되는 꿀벌도,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 75%나 지구상에서 사라진 수많은 애꿎은 곤충들의 대량 폐사도 어쩌면 일 년 내내 뿌려지는 살충제로 오염 된 공기와 미세먼지 가득한 칼칼한 공기 때문인지 모른다.

곤충도 인간도 생존 범위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참고 문헌

-Bradford C. Lister and Andres Garcia, Climate-driven declines in arthropod abundance restructure a rainforest food web, PNAS, http://www.pnas.org/cgi/doi/10.1073/pnas.1722477115

-Frazier, M. R., Woods H. A, Harrison J. F. 2001. Interactive effects of rearing temperature and oxygen on the development of Drosophila melanogaster. Physiol Biochem Zool. 74(5):641-50.

-Kang-Woon Lee. 2017.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n PeninsulaⅡ.Holoce Publication.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장이며 국립인천대 매개곤충 융복합센터 학술연구 교수를 맡고 있다. 과학동아에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를 지었다.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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