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 주문해놓고 눈치 보는 며느리들, 정성이 문제? [이슈+]

현화영 2019. 2. 4.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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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가 되면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정성스레 음식을 만드는 훈훈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런 가운데 '명절=고된 노동'이라는 편견을 깨고 가족이 모여 오롯이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주문 차례상' 문화가 매해 확산되고 있다.

주문 차례상은 2인 가족부터 10인 가족용까지 가족 구성원 수와 음식양에 따라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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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직장인 P(55)씨는 설연휴를 앞두고 일찌감치 '차례상' 풀세트를 주문해놨다. 이 맘때만 되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아내를 위해 조금이라도 손을 덜게 해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차례상을 직접 차리지 않고 주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는 "주변에 제사 때 주문해봤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는 분이 계셔서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고 말했다.

# 서울 마포구에 사는 새내기 주부 K(31)씨는 차례상 차릴 생각에 며칠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손맛'이 없어 음식을 만들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다 발견한 차례상 주문 서비스. 후기가 꽤 좋아 주문했는데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혹시라도 시댁 식구들이 "정성이 없다"며 자신을 나무라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맞아 온라인 주문 등을 통해 레디메이드(ready-made) 차례상이나 명절용 가정간편식(HMR)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두 해 전부터 차례상을 통째로 주문받기 시작한 백화점·대형마트 등 관련 업체들이 올해 물량을 대폭 늘렸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 명절·제사음식 대행업체는 차례상 주문량이 매년 20~30% 증가해왔고 올해는 40%까지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명절 때가 되면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정성스레 음식을 만드는 훈훈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반면 하루종일 느끼한 식용유 냄새 맡아가며 좀처럼 끝날 기미 보이지 않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된 노동에 '명절 증후군'이란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요즘엔 긴 연휴에 굳이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약식으로 차례를 지낸 후 여행이나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부모들이 자식들이 사는 대도시로 차례를 지내러 오는 '역귀성'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명절=고된 노동'이라는 편견을 깨고 가족이 모여 오롯이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주문 차례상' 문화가 매해 확산되고 있다. 클릭 한 번에 차례상이 통째로 배달되니 편리하고, 실제 맛이나 퀄리티도 '직접 만든 음식' 못지 않다는 후기가 퍼지면서 레디메이드 차례상(제사상)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백화점은 지난해 차례상 주문을 처음 받은 데 이어 올해 2배 가까이 수량을 늘려 고객 유치에 나섰다. 백화점은 물론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개별 명절음식 판매량이 늘어남에 따라 물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문 차례상은 2인 가족부터 10인 가족용까지 가족 구성원 수와 음식양에 따라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가격 역시 10만원대에서 50만원대까지 예산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조사 결과 4인 가족 기준 올해 설 차례상 장보기 비용은 평균 26만8926원으로 조사됐다. 직접 차리는 비용과 비교해도 가격 면에서 꽤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일이 바빠 지난해 처음으로 제사상을 주문해봤다는 경기 과천의 J(42)씨는 "국, 전, 잡채, 산적, 생선, 과일 등은 물론 하얀 쌀밥까지 제기에 담겨 포장돼 배달된 것을 보고 가족 모두 놀랐다. 이 정도 맛과 퀄리티라면 굳이 힘들게 집에서 요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번 설에도 이 업체에서 주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행업체에서 주문한 제사상.사진=독자 제보.

"차례 음식을 직접 공들여 만들어야지 주문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성의 부재'를 염려하는 이들도 많다. 돈으로 주문한 상에다 절만 하는 게 명절의 참된 의미는 아니라는 거다. 이들은 "차례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정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상을 직접 차려내는 과정이 중요한 건데",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는 등의 이유로 주문 차례상을 반대한다. 본인은 좋지만 다른 가족들의 반대가 무서워 엄두도 못낸다는 '며느리'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온라인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직접 차린 차례상이건, 전화나 클릭 한 번에 주문한 차례상이건 조상을 기리는 마음까지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 꼭 오랜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해야지만 정성이 배가되는 건 아닐 것", "어디까지나 '개취'(개인의 취향)일 뿐, 남의 하는 일에 지나치게 참견하는 건 옳지 않다" 등 차례상 주문 문화가 문제될 것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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