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습니다]"귀성길 뒷좌석에 가족 있었다면"..아찔한 음주운전 체험

신중섭 2019. 2. 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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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정지 수치인 0.05~0.1% 미만으로 체험
체험 5분 만에 트럭 들이받아..10분 동안 세차례 사고
설연휴 음주운전 사고 비율 및 안전벨트 미착용 사상자↑
"설 연휴 피로누적으로 알코올 해독 늦어 주의해야"
본지 신중섭 기자가 30일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에서 시뮬레이터를 통해 음주운전 가상체험을 하고 있다.


이데일리에서는 단순한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부 기자들이 다양한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을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는 ‘해봤습니다’ 코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마신 술은 소주 반병쯤이나 됐을까.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차를 타고 10분 정도. 아주 짧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통행량이 많지 않은 심야의 아파트 단지 주변 도로만 달리면 됐다. 정신만 집중한다면 무사히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어코 운전대를 잡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우려했던 것보다 갈 만했다. 느린 속도로 한 차선만 쭉 따라가니 사고가 나지 않았다. 자신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차선 변경도 하고 페달을 좀 더 꾹 밟고 있던 순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안전운전 하십시오.’ 눈앞에 깨진 차창과 안내멘트가 떴다. 분명 적정 거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앞차였다. 브레이크도 제때 밟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에 있던 트럭을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잘못된 판단 속에 시동을 걸고, 생겨선 안 될 자신감이 생겨나고, 트럭을 들이받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벌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다가올 설 연휴 과음 후 잡은 운전대였더라면, 음복(飮福)이랍시고 ‘술 한두 잔은 괜찮겠지’하고 운전대를 잡은 거라면, 가까운 거리라 괜찮다며 뒷좌석에 가족이라도 태웠었더라면 어땠을까.

최근 5년(2013~17년)설연휴 음주운전 교통사고 현황(사진=도로교통공단)


◇‘면허정지’ 수치로 체험…10분 안돼 트럭·오토바이 들이받아

“음주운전 교육을 받으신 분들께 ‘앞으로 소주 반병쯤 먹는다면 대리 부르실 거냐’고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많이 나올까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에서 기자가 시뮬레이터 음주운전 체험을 위한 운전석에 앉기 전 공단 관계자가 물었다. 시뮬레이터 음주운전 체험은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 정지’를 당한 사람들이 받는 교육 중 하나다.

‘당연하다’라는 대답이 많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직원은 ‘반병 마시고 대리 부를 거면 아예 안 마셨지’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교육대상자들의 인식이 이 정도인데 아직까지 국내에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개선은 갈 길이 멀다는 게 공단의 설명이다.

음주운전 가상체험은 0.05~0.1% 미만(면허정지), 0.1~0.15%(면허 취소), 0.15~0.2%(만취) 등 총 3단계 혈중알코올농도 단계별로 제공됐다. 혈중알코올 농도가 높아질 때마다 화면이 더욱 울렁거리며 브레이크나 운전대 조작 반응속도가 지연된다. 코스는 도심·지방부·고속도로 등 3종류다.

공단 관계자는 교육 대상자 대부분은 별것 아니라고 코웃음을 치며 운전대를 잡았다가 열에 아홉은 사고를 내고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이날 ‘면허 취소’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1~0.15% 로 체험을 한 기자도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차선 이탈은 물론 트럭·오토바이를 들이받기도 했다. 특히 느려진 핸들 반응속도 때문에 커브길에서의 차선이탈이 많았다. 브레이크 반응속도도 느려져 앞차와 간격 유지가 쉽지 않았고 도로를 건너려는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어진 안전벨트 미착용 VR체험장에서도 위험한 상황은 계속됐다. 뒷좌석에 아이를 태우고 주행하고 있는 ‘아버지’였던 나는, 한 차례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을 겪고도 나중에 아이 벨트를 매줘야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 결국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뒷좌석 아이의 눈높이에서 가상체험을 했을 때는 차량이 접근하는 것조차 보이지 않아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설 연휴 음주운전 사고↑…안전벨트 미착용 뒷좌석 사상자도↑

특히 설 연휴 앞두고 음주 운전 및 안전벨트 미착용 등으로 인한 교통사고 예방이 요구된다. 지난해 윤창호법과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가 시행됨에 따라 시민 동참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17년) 설 연휴 기간 교통사고는 하루 평균 445건으로 평소(607건)보다 줄었으나 100건당 사상자는 176명으로 평소(152.9명)보다 15% 늘었다.

설 연휴 동안 차량 동승 사상자 비율(50%)은 평상시(42.2%)보다 높았는데 그중 ‘뒷좌석’ 사상자 비율(27.2%)이 조수석(22.8%)보다 더 높았다. 도로교통공단은 뒷좌석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인한 사고 여파가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음주운전도 연휴 기간에 증가한다. 평소 전체 교통사고 중 음주운전 사고비율은 10.32%이었던 반면 설에는 12.94%로 늘었다. 사망자 역시 평상시(12.3%)보다 설(14.29%)에 더 많았다.

이영미 도로교통공단 서울특별시지부 교수는 “음복의 경우 고작 한두 잔이라는 생각 때문에 대개 음복 후 운전을 해도 음주운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술의 양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술을 마시면 음주운전이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교수는 “특히 설 연휴 기간 동안에는 운전 전날에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누적 때문에 알코올 해독이 느릴 수 있다”며 “다음날 운전을 해야 한다면 과음을 자제하거나 이동계획을 여유있게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중섭 (doto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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