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의심 환자 "1시간 대기"에 선별 진료도 안 한 병원

2019. 1. 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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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 선별진료소' 인천시 지정의료기관
"점심시간이라 진료 받으려면 기다려야"
홍역 대비 매뉴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질병관리본부, 전국 홍역 확진자 40명
"홍역 유행국가 여행 전 예방접종 해야"
인천 ㄱ병원 모습.

지난해 말 대구 경북지역에서 발생한 홍역이 서울과 경기, 인천 등지까지 확산하면서 확진자가 모두 40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인천의 한 병원과 인천시당국이 홍역 의심 환자를 두고 오락가락 대처를 한 사실이 드러나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인천에 사는 ㄴ씨는 홍역이 의심돼 지난 23일 인천시 재난안전상황실에 신고했다. 인천시 재난안전상황실은 인천시 보건정책과에 자문을 구한 뒤 ㄴ씨에게 “홍역 검진 장비가 있는 인천의 ㄱ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ㄴ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ㄴ씨는 이날 낮 12시30분께 ㄱ병원에 도착해 접수창구에서 “전날 저녁부터 발진이 있었고, 현재 발열이 있다. 입이 마르고 입안에 궤양도 있다. 진료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병원 창구 직원은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진료를 보려면 응급실밖에 없다”고 말했다. ㄴ씨가 “일반 진료는 볼 수 없느냐”고 묻자 창구 직원은 “오후 1시 반까지 한 시간 동안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답했다.

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병원에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내가 홍역으로 확진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지 황당했다. 접수창구에 있는 직원이 전염성 질병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병원 접수창구 근처에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혹시 모를 전염이 걱정됐던 ㄴ씨는 그곳에서 대기하지 않고 홀로 응급실로 이동했다.

ㄱ병원이 <한겨레>에 밝힌 홍역 대비 매뉴얼대로라면, ㄴ씨는 마스크를 지급받고 마스크를 낀 직원에 의해 ‘선별진료소’로 안내받았어야 했다. ‘선별진료소’란, 응급실 내부나 병원 외부 등에 별도의 공간을 둬 감염병 의심환자가 다른 환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곳이다. 선별진료소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홍역이 의심되는지 아닌지, 해당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을 판단하게 된다. ㄱ병원은 인천시가 지정한 ‘홍역 선별진료소 지정의료기관’ 12곳 가운데 하나다. 홍역 의심환자로 분류되었는데 해당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우면 격리입원치료가 가능한 인근 병원으로 안내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ㄴ씨는 스스로 찾아간 응급실에서도 적절한 대처를 받지 못했다. ㄱ병원 쪽은 <한겨레>에 “응급실 앞에 있는 선별진료소에서 의사가 홍역이 의심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ㄴ씨는 선별진료소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응급실 문 앞에서 의사가 나와 증상이 어떤지를 물어서 설명하자 ‘여긴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홍역 1차 접종도 못 한 9개월 아기의 아빠라 걱정되니 검사를 해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체열과 혈압 측정조차 받지 못했다”며 “진료 장비는 구경도 못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ㄱ병원을 안내한 곳이 인천시 재난안전상황실이라는 점에서 병원 쪽의 이런 조처가 더욱 황당했다고 털어놨다. ㄴ씨는 인천시 재난안전상황실과 보건정책과를 통해 “ㄱ병원은 홍역을 검진할 수 있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해서 간 것”이라고 말했다.

ㄱ병원에서는 이에 대해 “(병원 창구에서 일어난 일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막내가 착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응급실 대처에 대해서는 “당시 의사가 환자를 보고 언제부터 발진이 났고,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증상에 대해 상세히 물어봤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ㄴ씨는 출입문 안에서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ㄴ씨는 “ㄱ병원을 방문한 뒤 다시 찾아간 ㄷ병원에서는 마스크를 껴도 문밖에 나가 있어야 한다고 일러줘서 그렇게 했다”며 “하지만 ㄱ병원에서는 그런 기본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ㄱ병원의 미흡한 대처에 대해 “내가 죽을병에 걸려도 이 병원엔 가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천시 보건정책과는 2015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안심병원 운영 지침’을 기준으로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침을 보면, “선별진료소를 거치지 않은 호흡기 증상 환자가 외래 또는 응급실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나와 있다. ㄴ씨의 경우, 이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인천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처가 매끄럽지 못했고 문제가 있었던 건 맞다”며 “지금은 체계를 다시 갖춰 개선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는 29일 이번 홍역 확진자를 집단 발생 30명(대구·경북 17명, 경기 13명)과 개별사례 10건(서울 4명, 전남 1명, 경기 4명, 인천 1명)으로 분류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와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등 유럽 국가에서 2017년 이후 홍역 환자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이어서 △홍역을 앓은 적이 있거나 △홍역 예방접종 2회 접종기록이 있거나 △홍역 항체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경우가 아닌 1968년 이후 출생 성인이 홍역 유행국가를 여행할 때는 “출국 전에 최소 한 차례 홍역 예방접종을 권고하고, 6~11개월 영아도 출국 전에 1회 예방접종을 권고한다”며 “여행 중에는 30초 이상 비누로 손 씻기, 기침 예절 지키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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