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 벽면의 비밀

조혜인 기자 2019. 1. 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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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호스텔 주인 희주와 투자회사 유진우 대표. 두 사람 뒤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걸로 보아 도시와 관련된 사연이 있어 보인다.  CJ ENM

영국의 SF 소설가이자 미래학자 아서 프랑크는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는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과학으로 실현되고 있다.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종종 진보한 과학 기술이 마치 마법을 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증강현실 기술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가상의 이미지를 추가해 보여주는 기술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무엇이 가짜고 진짜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최근 증강현실 게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최초 증강현실 게임 드라마

2018년 12월부터 tvN에서 방영을 시작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국내 최초로 ‘증강현실 게임’을 드라마 배경으로 설정해 화제가 됐다. 주인공인 유진우(현빈)가 스페인 그라나다로 출장을 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우는 우연히 정체를 모르는 사람의 스마트 렌즈를 갖게 된 이후 기묘한 사건에 휘말린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진우가 스마트 렌즈를 끼자 눈앞에 가상의 캐릭터가 나타났다. 사실적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진우! 사진 제공 CJ ENM

진우가 스마트 렌즈를 착용하고 게임에 접속한 순간, 2018년의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진우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가 동시에 펼쳐진다. 가상의 캐릭터가 현실에 위화감 없이 자연스레 등장하는 건 물론, 그가 주인공에게 타격을 가하자 주인공은 통증을 느낀다.

진우는 기다란 장검을 들고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스마트 렌즈를 착용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 눈에는 그저 허공에서 혼자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만 보일 뿐이다. 

이처럼 드라마는 증강현실 기술이 극단적으로 실현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대칭무늬’ | 드라마의 배경이 된 스페인 그라나다 남부 지역에 있는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다’라는 뜻을 지닌 궁전과 성곽이다. 특히 알함브라 궁전은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건축 양식이 혼재돼 있어 독특하다. 그래서인지 재밌는 무늬도 찾아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알함브라 궁전의 ‘대칭무늬’ 

드라마 배경인 알함브라 궁전은 1238년부터 만들어진 유서 깊은 건물이다. 겉모습과 다르게 내부는 화려한 무늬로 장식돼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궁전 벽면에는 사각형과 원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겹쳐지고 엇갈려 배치된 기하학적 무늬가 있다. 이런 무늬를 ‘아라베스크’라 하는데, 이것은 아랍인이 식물의 풀을 도안으로 만들어낸 기하학적 무늬다. 물론 아라베스크 말고 또 다른 무늬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화가이자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르허르는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했을 때 궁전 벽면을 장식한 모자이크 무늬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이후 에스허르는 기하학적 무늬에 수학적인 요소를 넣어 본인만의 독창적인 ‘쪽매 맞춤’ 작품을 만들었다.

5종류의 기리 타일(왼쪽)로 다양한 쪽매 맞춤 무늬(오른쪽)를 만들 수 있다. infoCan(w)

쪽매 맞춤이란 여러 도형을 이용해 평면을 겹치지 않게 빈틈없이 채우는 것으로 ‘테셀레이션’이라고도 한다. 정다각형을 평행이동, 대칭이동, 그리고 회전이동으로 다양하게 변형해 만든다. 단, 한 점에 모인 다각형 내각의 합이 360도가 돼야 한다.

예를 들어 정삼각형은 한 내각의 크기가 60도로 한 점에 6개가 모이게 가득 채우면 평면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정사각형은 한 내각의 크기가 90도로 4개가 한 점에 모일 때, 정육각형은 한 내각의 크기가 120도로 한 점에 3개가 모일 때 평면이 된다.

그러나 이외의 정다각형은 360도를 만들 수 없어 평면을 덮을 수 없다. 쪽매 맞춤이 가능한 정다각형은 3개뿐이다. 물론 두 개 이상이 다각형을 이어 붙여 360도를 만들면 쪽매 맞춤이 가능하다. 이때 한 점에 모이는 정다각형의 규칙이 같은 경우는 총 8가지 뿐이며, 다른 경우는 무수히 많다.

예술가와 수학자의 성지 알함브라 궁전

이처럼 독특한 무늬를 볼 수 있기에 알함브라 궁전은 에스허르뿐 아니라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에 영감을 줬다. 그러나 무늬에 흥미를 느낀 건 예술가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선과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규칙에 따라 주기적으로 반복돼 나타난다는 수학적 성질 때문에 수학자의 관심도 끌었다.

수학자들은 2차원 평면을 채우는 반복적인 무늬를 대칭성을 기준으로 하는 ‘군’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미끄러뜨리고, 돌리고, 거울상으로 뒤집었을 때 반복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총 17개였는데, 마커스 드 사토이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에 따르면 알함브라 궁전 무늬에서 이 17가지를 모두 찾아볼 수 있다. 드 사토이 교수는 이런 특징 덕분에 알함브라 궁전이 군론 연구자들의 성지로 통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알함브라 궁전의 무늬에는 이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늬도 있다. 별모양 여러 개로 이뤄진 무늬인데, 학자들의 관심에도 무늬의 비밀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미궁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2007년 피터 루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원이 무늬의 정체를 밝혀냈다.

루 박사는 이슬람인이 규칙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무늬를 만들 때 ‘기리 타일’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리 타일은 서로 다른 도형 5개로 구성되는데, 이슬람인은 이 다섯 개의 타일 무늬를 적절히 조합해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벽면을 빼곡하게 채울 수 있는 무늬를 만든 것이다.

● 두 시공간의 만남 

증강현실은 현실에 3차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로, 현실과 가상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물체를 인식하고, 가상의 물체를 구현하는 데까지 수학이 필요하다. 공간을 다루는 기술 분야는 모두 ‘좌표’를 찾고 ‘행렬’과 ‘벡터’를 이용해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어떤 물체가 위치를 여러번 움직였을 때, 위치 좌표를 행렬로 나타내면 벡터로 위치 변환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강현실을 구현하는 수학

가상현실은 좌표 하나를 기준으로 모든 가상의 물체를 움직이면 되지만 증강현실은 좌표가 2개 필요하다. 또 증강현실은 실제 세계를 나타내는 좌표계와 가상의 그림을 그리는 좌표계 2개를 정확히 맞춰 사용자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정확하게 일치시키는 게 현재 기술로 쉽지 않다.

두 시공간의 만남 | 드라마 배경이 된 알함브라 궁전에 대해 알았다면, 이번에는 주인공 진우처럼 게임에 접속해 보자. 드라마에서는 진우가 그라나다에서 스마트 렌즈를 착용하고 게임에 입장하자, 그곳에 중세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게임 캐릭터들이 출몰한다. 드라마나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사진 제공 CJ ENM

사용자의 위치를 명확히 잡는 것도 중요한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변 건물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 없이 보는 사람의 위치정보만으로 가상의 캐릭터를 화면에 띄우면 캐릭터가 허공에 붕 떠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깊이 카메라를 이용해야 주변 건물이나 물체의 깊이를 파악해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의 ‘아웃포커싱’ 기능이 사물의 깊이를 이용한 효과다. 앞에 있는 물체와 뒤에 있는 물체를 파악한 뒤, 앞에 있는 물체는 선명하게, 뒤에 있는 물체는 흐릿하게 만든다. 증강현실 게임에도 이 기술을 적용하면 가상의 캐릭터들이 적어도 허공에 떠 있지 않고 물건 위에 앉아 있게 된다.

드라마 속 상황 실현 아직은 먼 이야기

그렇다면 드라마는 현재 기술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사실적일까? 드라마 속에서 화제가 된 물건 중 하나는 스마트 렌즈다. 보통 증강현실은 스마트 글래스나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스마트 렌즈를 착용했다.

사실 현실에서는 아직 이런 스마트 렌즈는 없다. 이종원 세종대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는 “스마트 글래스도 점점 얇아지고 가벼워지는 추세기에 스마트 렌즈도 충분히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CJ ENM

주인공 진우가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는 사이에, 게임 중인 장소에 현실의 자동차 한 대가 와서 주차된다. 그러자 가상의 캐릭터가 새로 생긴 차 위로 뛰어 오른다. 주변 지형을 이용한 것이다.

보통 증강현실은 어떤 공간을 스캔한 뒤 그 안에 가상의 물체를 구현한다. 그런데 건물이 아닌 자동차처럼 한 자리에 없고 움직이는 물체는 위치를 계속 추적하고 실시간으로 모델링해 공간에 만들어 넣어 줘야 한다. 이 교수는 “움직이는 물체를 표현하는 건 지금도 가능하지만 매우 어려운 기술”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허공에서 생긴 칼을 잡고 주인공이 감촉이 좋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각 중에 구현하기 가장 어려운 게 촉각이다. 그나마 옷이나 장갑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촉각을 느끼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현재 기술로 맨손으로 감각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물체를 잡았다는 건 그에 반발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인데, 도구 없이 이 힘을 구현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드라마 속 증강현실 게임은 완벽하게 이상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현재 기술과는 격차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모두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구현 가능하니 언젠가는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수학동아 2019년 1월호 [매스미디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조혜인 기자 heyn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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