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정치 리더' 만나야 경제위기 극복할 '집단의지' 부활" [김석동 前 금융위원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규화 2019. 1. 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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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역사 새로 조명.. 지금 어마어마한 반전 일어나
한국경제 난제 해법은 혁명적 생산방식과 국제적 협력
저출산대책 출발은 '살 공간'.. 임대주택 무한 공급해야
무역분쟁 속 살길은 전통 주력산업 지키고 살리 챙겨야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ㆍ前 금융위원장 박동욱기자 fufus@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ㆍ前 금융위원장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ㆍ前 금융위원장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김 전 위원장의 '강의'는 기마민족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민족의 첫 번째 국가인 고조선과 만난다. 한민족이 기마민족에서 분파돼 한반도로 들어온 이후에도 기마민족과 교류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기마민족의 습속과 기질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그 특질을 살려 지난 70년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세계사에 계속 족적을 남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과부채를 안고 있는 세계경제의 문제 극복과 남북 분단의 해결, 나아가 세계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북한·러시아·중국의 접경지역인 두만강 하구에 거대한 '국제 도시'를 건설하자는 제안을 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서방 해양세력과 러시아와 중국 등 대륙세력이 힘을 합쳐 새로운 생산기지와 물류 기지로 만들면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역사를 연구하는 데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수많은 사서가 있는데요, 그 중에는 위서 논란이 있는 것도 있고 또 아직 해석되지 않는 것도 많거든요. 특히 유라시아 대초원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한반도 역사를 보면 뭐 지금까지 나온 사서와 유적 유물로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사람이 어디서 왔느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삶의 흐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려면 굉장히 넓게 봐야 해요. 예를 들면요, 터키같은 경우는 단정적으로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흉노는 우리 조상이다. 흉노는 몽골고원에 있었고 터키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잖아요. 그 둘이 수천 Km 떨어져 있는데도 그렇게 가르쳐요. 그리고 돌궐은 우리가 투르크란 이름으로 국가를 건설한 최초의 국가라고 얘기해요. 자기 선조들이 서쪽으로 오면서 셀주크 투르크를 만들고 그게 다시 또 서쪽으로 가서 오스만 투르크를 만들고 그 오스만 투르크가 1923년에 아타 투르크 케말 파샤에 의해 오늘날의 터키공화국이 됐다고 가르칩니다. 몽골고원에서 출발한 역사를 가르치는데 그럼 몽골사냐? 그런데 터키 사람들은 그건 터키사람들의 역사라고 여겨요. 그게 우리와 다른 겁니다. 터키가 아나톨리아 반도에 국한해 역사를 배운다고 하면 그 전에 있는 로마사를 배우겠지요."

-터키 역사교육을 보니 우리 역사 교육이 매우 시야가 좁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한국은 한반도 역사만 가르쳐야 하냐면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거기에 반기를 듭니다. 한민족의 삶의 흐름이 우리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야 고조선의 역사가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되는 거에요. 고조선은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인데, 고조선은 적어도 어디에 있었냐면 만주와 발해만 일대, 그리고 한반도에 결처 있었어요. 주무대가 대륙이었습니다. 그럼 이 발해만 일대와 만주의 역사는 누구의 역사입니까. 고구려도 마찬가집니다. 고구려 부여 발해의 역사는 어느 나라의 역사냐 하는 질문에 부닥칩니다. 그 역사는 우리의 역사라는 거죠. 그것이 우리역사가 되려면 한민족 삶의 흐름의 역사라야 된다는 거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어떻게 현재 경제기적의 나라를 만들었는지 찾아가보는 것이 제 역사연구의 목적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보통 북방민족을 인식하는 것은 '오랑캐'입니다. 심지어 문화가 미개한 민족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게 아주 잘못된 겁니다. 제가 기마민족 역사와 강역을 연구하게 된 것도 그런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확고하게 말씀하셨어요. 흉노 선비 돌궐 몽골 여진이 우리와 동족이라고 아주 단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우리에게 어떤 시그널인가 알아보기 위해 문헌 유적 유물 언어 관습 이런 것을 통해서 밝혀나갔습니다. 북방민족은 크게 다섯 갈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흉노입니다. 두 번째가 선비, 세 번째가 돌궐, 네 번째가 몽골, 그리고 다섯 번째가 여진이에요. 이 다섯 북방 기마민족이 지난 2500년 동안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어마어마한 대제국을 세웠고 그게 바로 세계사의 중심 백본입니다."

-우리가 오해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기게 됐나요.

"중국 사람과 중국 역사학자들이 폄하하고 왜곡했어요. 오랑캐 역사로 치부해버렸어요. 또 서양학자들은 이런 유라시아 기마민족의 역사를 몰랐어요. 이제야 이 지역 이 민족의 역사가 어마어마한 역사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겁니다. 재미있는 게, 흉노 선비 돌궐 몽골 여진 이 민족들이 적어도 700년 내지 1400년, 1000년 안팎으로 세계사를 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잠깐 왔다갔다 한 것 같잖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흉노가 약 700년 정도, 선비가 1000년, 돌궐이 1400년, 몽골이 700년, 여진이 800년이나 돼요. 이 다섯 개 민족이 세계사를 썼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에요. 일부 서양사, 로마라든가 이런 것을 빼면요."

-그럼 궁금해지는 게, 그들 위대한 제국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 북방민족과 한민족이 굉장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게 저의 연구결과입니다. 흉노 같은 경우를 보면 책에서 소개를 하고 있지만, 흉노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서 고조선의 일파라고 했어요. 중국 사서 사기에도 조선은 흉노의 왼팔이라고 해요. 팔은 같은 몸이라는 거잖아요. 흉노와 고조선은 같은 거라는 거죠. 또 역사적으로 굉장한 친연관계가 나타납니다. 우선, 유물 생활관습 언어 이런 것들이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재 흉노가 세운 나라라고 볼 수 있는 국가가 있나요?

"흉노는 BC 3세기에 몽골고원을 통일했어요. 이 사람들의 오리진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많아요. 중국 사람들은 순유(筍攸)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흉노가 몽골고원에 사는 사람들을 그냥 통칭히는 이름이라는 사람도 있고 흉노라는 나라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통일 국가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 후 동서 흉노와 남북 흉노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지금 남아 있는 데가 있어요. 일부는 중국에 동화됐거나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북흉노였고 이들이 나중에 훈족으로 세계사에 나타납니다. 그 훈 세력들 중 일부가 헝가리, 발틱 3국과 핀란드에 남아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훈족의 오리진에 대해 1994년 독일의 제2공영방송인 ZDF TV가 '역사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타리에서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 최동단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방송을 해요. 그 증거로 두 가지를 듭니다. 가야지방에서 발굴된 동복(청동 솥)이 훈족의 서쪽 이동로에서 다수 발굴되고 있고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기마인물상에 동복이 실려있는 것을 증거로 제시해요."

-헝가리와 경주의 거리가 1만 km가 넘을 텐데요. 두 지역간 친연성이 있다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

"당시 신라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선을 한번 떠올려보면 동해안과 만주 몽골 등 유라시아로 연결되는 루트가 있었어요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보면 신라 30대 문무왕의 비석이 있는데, 18세기 발견됐다 없어졌어요. 그후 다시 발견됐습니다. 처음 발견됐을 때의 탁본이 중국에 지금 남아있어요. 거기에 뭐라고 씌어 있냐면 신라 김씨는 투후의 후손이라고 해요. 투후는 흉노의 태자였어요. 한의 이간책으로 흉노가 기울면서 흉노의 휴도왕이 암살되고 그 태자가 노예 신분으로 한 무제의 포로로 되었는데, 역모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해서 투후라는 관작을 받아요. 또 무제가 투후에게 흉노인들이 금으로 사람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습을 보고 김(金)씨 성을 하사해 김일제가 됐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후 투후 김일제는 수만 명의 흉노인들을 이끌고 산동성 하해현 지역에 땅을 받아 '투국'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는 겁니다. 신라 문무왕비는 신라 김씨 왕족이 바로 바로 흉노인 김일제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일제가 신라왕가 김씨의 시조 김알지와 동일인물이라고 추정하는 근거입니다. 이밖에 흉노와 신라와의 친연성은 유물 생활관습 언어 등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니 독일 방송 다큐멘타리가 정확히 말한 거죠."

-흉노가 전성기였던 BC 3세기에는 우리 고조선 시대와 겹치는데요.

"두 나라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죠. 당시 고조선은 만주 대륙과 발해만 일대를 강역으로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고조선에 대해서는 곧 다른 스토리와도 연결돼요."

-흉노 다음의 기마유목민족은 선비족이라고 하셨는데, 선비족은 학교 역사 시간에 들어보긴 했지만 좀 낯섭니다.

"선비는 나중에 여러 파로 나눠져요. 모용씨는 연나라, 탁발씨는 북위를 만들어 남북조 시대의 일원이 되고 우문씨는 거란을 건설합니다. 이 사람들도 우리과 연결관계가 깊어요. 선비의 조상이 누구냐 따져 올라가면 중국 사서들에 보면 선비는 동호의 후예라고 돼 있어요. 호는 흉노라는 말인데, 그럼 동호는 누구냐면 고조선의 후예예요. 고조선이 나중에 동호와 예맥과 숙신으로 분파되거든요. 그럼 선비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밝혀지잖아요 거란은 나중에 요나라가 되는데, 요사에 보면 요는 발해만 일대에 동경이라는 곳을 자기들 수도라고 했어요. 거기가 옛날에 자기들 조상인 조선이 있던 데라고 해요. 거기서 자기들 조상이 40대의 임금에 걸쳐 번성했다고 해요."

-거란의 요나라는 국사책에 서희의 담판으로도 유명한 바로 그 북방민족인가요.

"예, 맞습니다. 요의 동경유수 소손녕이 고려로 쳐들어오자 고려 조정은 대적할 것이냐 땅을 떼어주고 화평할 것이냐 나뉘어져요. 그 때 중군사 서희가 소손녕과 홀로 담판해 강동6주를 얻고 요는 퇴각하는 성과를 냈어요. 이때 소손녕은 우리는 고구려 사람이라고 그래요. 이 말을 듣고 서희도 우리도 원래 고구려 사람이라며 나라 이름도 고려 아니야 그러면서 우리는 원래 친척이라는 취지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죠. 이 말은 무엇을 뜻 하냐면 거란의 요가 선비의 후손이라는 점이고 선비 또한 우리 민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선비 조상이 동호고 동호는 고조선에서 분파됐다고 하니까요."

-선비도 우리 민족과 친연성이 깊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거고, 그러면 돌궐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돌궐은 AD 552년에 건국을 해요. 부민(Bumin) 카간(Kagan, 유목민 집단의 수장이라는 뜻)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 나라를 건설하는데, 한 가지 재밌는 게, 부민 칸이 돌궐을 건국한 552년을 터키도 건국년이라고 해요. 터키의 1대 왕이 부민 칸이라고 하는 셈이지요. 부민 칸도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은데, 돌궐은 원래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돌궐은 원래 무시무시한 기마유목민족입니다. 당시 당나라가 기를 못 폈어요. 바로 직전 수나라는 고구려와 대결했다 나라가 거덜나 망했고요, 당나라 당태종도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안시성 전투에서 부상당해 퇴각했다 죽었습니다. 이걸 보면 돌궐과 고구려가 얼마나 강성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왜 군기 빠진 군대를 보고 '당나라 군대'라는 하잖아요. 당시 당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였는데, 그 나라 군대를 보고 오합지졸이라고 놀렸으니 돌궐과 고구려가 얼마나 강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 고구려의 동맹국인 돌궐은 그 후 어떻게 됐나요.

"당나라의 이간책으로 돌궐도 멸망해요. 그런데 멸망한 지 30년 만에 쿠틀룩이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 후돌궐을 건설합니다. 동시에 고구려 지역에서도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고요. 돌궐은 이름을 그대로 썼고 발해는 고구려라는 이름을 안 쓰고 발해라고 국명을 바꿨어요. 이후 돌궐이 동서로 나뉘어지면서 서쪽으로 이동을 해요. 이동한 돌궐 왕가가 셀주크왕국을 건국하면서 왕가가 오구즈왕가로 바뀝니다. 이 오구즈 왕가의 정체를 밝히는 데는 북방사학자 전원철 박사의 연구가 크게 기여했어요. 전원철 박사는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이라는 책과 여러 논문에서 고구려의 후예들이 몽골제국과 금, 청은 물론 중앙아시아의 서쪽 지역에 수많은 왕조를 건설했다고 밝히고 그 연원을 왕가 가계도를 통해 보여줬어요. 그 오구즈 왕가가 바로 고구려 왕가라는 겁니다. 저기 있는 것(김 전 위원장은 여러 장의 가계도와 지도 등 판넬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가르켰다)이 바로 그 오구즈왕가의 연원을 밝힌 가계도입니다."

-현재 터키의 전신이 오스만투르크인데요, 오스만투르크도 우리와 친연관계가 있는 겁니까.

"셀주크투르크의 후예들이 오스만투르크를 건설했으니 당연히 우리와 친연관계가 있죠.돌궐과 터키 역사를 담은 사서가 사국사, 집사 등입니다. 중앙아시아 역사서인데, 그 중에서도 집사와 사국사가 중요해요. 사국사를 보여드리지요(김 전 위원장은 서가에서 양장이 잘 된 두꺼운 책을 하나 들고와 보여줬다). 사국사 기록어는 페르시아어인데, 이걸 다 읽고 전원철 박사가 지금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원을 하고 있고요. 이번에 번역을 하면 세계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겁니다. 영어로도 번역할 계획입니다."

-돌궐은 오늘날 터키로 국가형태로 남아있고 그 다음 활동한 기마유목민이 몽골인데요.

"12세기 말 징키스칸이 등장하기 전까지 몽골족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정체성이 없었어요. 몽골고원에는 돌궐이 떠난 후에 여러 종족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몽골족이 나타난 겁니다. 갑자기 몽골족이 나타나 몽골고원을 통일하고 대몽골제국을 건설해요. 이 징기스칸을 알고 보면 매우 흥미로워요. 몽골비사도 있고 여러 사서를 종합해 만든 게 징기스칸의 가계도예요. 몽골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면서 대적할 나라가 없었어요. 호라즘제국도 하룻밤에 초토화시켰죠. 당시 인류 문명권의 80%를 지배한 강대한 지역을 지배했어요. 그것도 모두 전광석화처럼 건설한 겁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몽골이 고려를 쳐들어왔는데,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39년(삼별초까지 합치면 42년)이나 걸려요. 고려 조정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강화도로 피해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정말 미스터리에요. 세계사에 이런 예는 없어요. 몽골하고 대적해서 항복하거나 패배하지 않은 나라가 없거든요.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어요. 해답의 일단을 몽골이 항복을 받은 후 일어난 일을 보면 찾을 수 있어요. 고려가 항복한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요. 두 나라가 형제지국의 조약을 맺는 겁니다. 신하가 아니고요. 다른 나라는 모두 군신관계였거든요. 또 공주를 고려 왕에 시집을 보내요. 공주를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 고려로 보내요. 흉노가 한나라 유방을 굴복시킨 후 한이 흉노에 공주를 갖다 바치는 것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이긴 나라가 진 나라에 공주를 갖다 바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 같은데, 몽골이 왜 이렇게 고려에 '자비'를 베풀었나요.

"그 열쇠가 징기스칸의 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전원철 박사가 저서에서 증명을 했는데, 전 박사는 구당서, 신당서, 오구즈역사, 사국사, 금사, 고려사, 셀주크 역사, 투르크멘의 계보, 칭기즈나메 등을 연구해 밝혔어요. 이 가계도(가계도를 펼쳐보이면서)에서 보면, 오구즈칸의 4대손이 대조영과 대야발입니다. 대조영의 4대손이 금행입니다. 금행은 역사책에 나와요. 금행의 아들이 셋이 있는데 막내아들이 보활리입니다. 보활리의 4대손이 알람구하이고요 알람구하는 여자예요. 이 사람이 바로 모든 몽골인들이 어머니로 추앙하는 바로 그 사람이예요. 징기스칸이 바로 이 알람구하이의 10대손입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징기스칸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대야발의 19대손이 된다는 게 전원철 박사의 설명입니다. 몽골하고 우리하고는 문화나 언어, 역사, 풍습이 너무나 흡사해요. 지금도 몽골 가서 옷만 바꿔입으면 누가 한국사람이고 몽골사람인지 몰라요. 아마도 당시에도 몽골이 고려에 어떤 친연관계를 느끼고 고려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대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징기스칸은 그럼 고구려의 후예고 우리와 같은 뿌리로 봐도 무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징기스칸이 1162년 생이에요. 사실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도 1960년대까지는 몰랐었어요. 세계 사람들이 징키스칸을 몰랐어요. 왜 그러냐면 청나라와 러시아에서 징기스칸을 얘기하는 것은 바로 즉결처분 대상이 됐기 때문이예요. 그런 후진 동네에 영웅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 되니까 역사를 처참하게 난도질 했던 거지요. 1961년에 징기스칸이 장장 800년 만에 알려지게 됐지요. 몽골공산당이 몽골은 소국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역사를 돌이켜 끄집어낸 것이죠. 그리고 징기스칸 탄생지라는 헨티주에 비석을 세워요. 저도 가봤는데, 울란바토르에서 600km 버스로 15시간 걸려요. 붉은 깃발과 돌멩이밖에 없더군요."

-징기스칸 후예가 원을 세워 중국을 다스렸고 서쪽에서는 4한국이 있었잖아요. 그 후손들이 지금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티무르 제국과 무굴제국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즈베키스탄이 티무르의 후손이라고 자청하고 있고 무굴제국은 1857년 영국에 의해 망하기 전까지 인도지역을 지배한 왕가인데 무굴이란 말이 몽골이란 뜻을 갖고 있어요."

-강성했던 기마유목민족의 마지막 주자는 여진족입니다.

"발해가 926년에 거란에 의해 멸망한 후 그 땅을 우리는 여진이라고 했어요. 여진족이 만든 나라가 금이고 그 금은 아골타가 건국을 했습니다. 금은 자기들 건국시조를 함보라고 하는데, 함보는 고구려 사람이라고 합니다. 함보의 7대손이 아골타고 대야발로부터 12대손입니다. 그리고 아골타의 20대손이 청을 건국한 누루하치지요."

-그럼 아까 고조선을 말씀하시다 나중에 얘기한다고 하셨는데, 이들 5개 북방 기마유목민족의 뿌리는 어딘가요.

"유물과 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고조선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럼 고조선 곧 우리민족은 어디서 왔냐로 이어지는데, 인류의 이동경로를 볼 때 한민족의 이동경로는 두 가지로 봐요. 약 7만~5만 년 전에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흩어질 때 만주와 발해만 일대로 들어온 경로가 있고 다른 하나는 남쪽 해안을 따라 한반도로 들어온 경로가 있습니다. 이후 주류를 형성한 민족이동이 있었는데, 중앙아시아로 이동한 후 신장위구르를 거쳐 몽골고원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바이칼호수 남쪽을 들러 발해만 해안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보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이홍규 서울대 교수가 DNA 분석 전문가인데, 유전자를 분석하면 북방 DNA는 70% 남방 DNA는 30% 정도 된다고 해요."

-고조선을 건국한 민족은 그럼 북방민족으로 봐야 하나요.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환국(桓國)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환국의 존재에 대해서는 역사적 고증이 없고 다만 우리나라 역사서에 있었다는 기록만 있는 상태입니다. 존재했었다는 기록만 있는 거죠. 그 땅에 살던 사람들 중에 서쪽으로 간 일파를 수메르라고 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동쪽으로 간 민족을 배달민족이라 한다는 거예요. 배(培)자가 밝다는 뜻이거든요. 즉 밝은 땅, 동쪽으로 간 민족이란 뜻입니다. 고조선에 대해서는 여러 고증이 있고 역사서도 충분해 국가로서 분명히 우리 고대국가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고조선사는 불과 몇 줄에 불과해요.

"그동안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것은 BC 4~5세기에 생겼던 국가고 평양에서 건국됐으며 연나라에서 위만이 와 위만조선이 되었고 한무제가 쳐들어와 망해서 한4군을 설치했다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왜곡된 역사입니다. 원래 고조선은 발해만 일대 북중국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BC 24세기 전에 건국된 국가라는 것이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유적으로 거의 확실해지고 있어요. 아까 얘기한 요서에서 자기들 조상인 동호 즉 고조선이 40대 이상 왕이 이어졌다고 하는 기록도 있고요.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31년에 '조선상고사'에서 만주 한반도 발해만을 아우르는 대제국이라고 했고 북한 리지린이라는 학자는 고조선 연구에서 고조선은 BC 24세기에 분명히 존재했고 발해만 일대와 만주를 모두 포괄했다고 사서를 기초로 연구해 밝혔어요. 러시아 학자 유 엠 부찐도 중국의 역사서만 보고서도 고조선은 발해만과 만주에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밖에도 물론 위서 논쟁이 있긴 하지만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단군세기' 등도 고조선의 존재를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책들을 역사서로서 보기에는 어렵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지 않나요.

"위서라고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1972년에 규원사화라는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숙종 때 발간된 거라고 진본 판정을 내렸습니다. 거기 보면 단군이 47명이라고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강조하진 않습니다. 그러면 자 고조선 사람들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느나는 문제가 제기돼요. 고조선 사람들이 부여, 고구려가 되거든요. 또 이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대거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이 같은 이치로 흉노의 흔적이 한반도 남쪽 경주에 남아있는 겁니다. 이런 사실이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잘 설명돼 있고 단재 선생은 이들 다섯 개 북방 유목민족이 아(我)의 동족이라고 했어요."

-고조선의 역사는 이제 새롭게 조명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근래 들어 발해만 일대에서 엄청난 유물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요. BC 7000년 전부터 여기에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어마어마한 증거들이 땅속에서 나오고 있어요. 특히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것들이 쏟아져나옵니다. 지금 가봐도 마을 근처에서 BC 3000년 전의 항아리들이 막 출토돼요. 이게 바로 홍산문화(紅山文化 )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중국 한족 문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중국은 이쪽에 대해서 역사 기록이 없어요. 자기들 문명이라면 기록을 했을 텐데 없는 거 보면, 기마민족 역사가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중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게 BC 24세기에 하가점 하층문화가 발견이 돼요. 이건 국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겁니다. 거기에 국가가 있었다는 데는 아무도 부인 못합니다. 그럼 바로 그 국가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는데, 많은 역사 학자들이 바로 고조선이라 보고 있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중국 사서에는 이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으니까요. 우리 역사에서는 BC 2333년 건국했다는 고조선이라는 역사가 나오거든요. 어마어마한 반전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물론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이 아닐 거라고 얘기하고 있지요. 역사에서 한족은 북방으로 올라온 적이 없거든요."

-이제 현대로 돌아와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저성장으로 인한 고용절벽과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요.

"아까 얘기했던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혁명적 생산방식을 만들어야 하고 국제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문제를 세계를 이용해 푸는 지혜가 필요해요. 두만강 하구에 가보면 중국이 동해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어요. 중국은 이곳을 통해 동해로 가려는 욕망이 아주 강합니다. 중국 땅에 동해를 바라보이는 곳에 '망해각'이라는 정자를 지어놓을 정도니까요. 러시아도 앞으로 성장동력을 극동에서 찾으려고 혈안입니다. 러·중 양국과 북한이 두만강 하구에 만나는 곳에 거대한 생산기지와 물류기지로서 국제도시를 건설하는 겁니다. 북·중·러가 땅을 내놓고 한·미·일을 비롯한 서방이 참여해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이곳은 부산에서 출발한 시베리아행 열차가 지나는 길목이고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도 합니다. 또한 북극항로가 2030년 쯤에는 1년 내내 열리게 되는데, 북극항로와 유라시아 철도가 만나면 물류의 대혁신이 일어날 겁니다. 신도시 건설에 노하우와 경쟁력이 있는 우리가 나서서 건설하면 돼요. 이 신도시를 구체화시켜 북핵 해결에 대한 레버리지로 이용할 수도 있어요. 1930년대 대공항 이후 세계 경제는 거대한 부채로 성장을 지속해왔어요. 이런 문제를 풀고 아울러 우리가 저성장에서 벗어나는 좋은 해법이 두만강 국제도시 건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한국경제는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기업이 뛰게 해야 합니다. 기업을 묶어 놓으면 안 돼요. 기업을 풀어놓으면 우리 DNA에 있는 북방기마민족의 특질인 생존본능, 승부사 기질, 집단의지, 개척자 정신이 발휘될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어요. 집단의지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발휘된다는 겁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해요.(이 부분에서 김 전 위원장은 현 정부의 리더십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사양했다)"

-한민족은 지금 인구학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입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그동안 백조 넘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방향이 잘못됐어요. 인간은 의식주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이게 해결돼야 합니다. 그 중 의식은 그런대로 우리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어요. 하지만 주(住), 살 집이 문제예요. 살 공간이 없는데 누가 자녀를 낳겠습니까. 저는 저출산 대책의 출발이 우선 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부와 지자체가 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처럼 찔끔찔끔 해서는 안 됩니다. 혁명적으로 물량을 늘려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가진 땅 가운데 교통이 좋은 곳에 품질 좋은 임대주택을 무한정 공급해 주거 문제가 해소되면 저출산 문제는 어느 정도 풀리리라 봅니다. 프랑스가 성공했잖아요."

-2019년 한국경제 역시 희망 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계속되는 등 세계경제 환경이 악화되고 있고 국내적으로도 소득주도성장책으로 급격한 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될 텐데요.

"미중 무역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급상승할 때 미국이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화를 무자비하게 절상했어요. 8년에 걸쳐 엔화 가치를 250엔에서 80엔으로 3분의 2나 절상해놨어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입니다. 미중 무역분쟁은 오바마 정부 때 계획되고 트럼프가 실행하는 것인데, 세계 패권질서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미국이 쉽사리 중국을 놔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살 길은 역시 우리가 강한 전통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내부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외부로 진출하는 기마민족 특유의 기질을 발휘해야 한다고 봐요. 한민족은 위기에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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