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넘이 명소] 美 땅끝마을 키웨스트서 마주한 헤밍웨이

고서령 2018. 12. 3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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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으로 붉게 물든 키웨스트의 해변. 이 바다 건너편에 쿠바가 있다. [사진 제공 = 미국관광청]
미국 동남부 끝자락의 플로리다주는 한반도처럼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다. 미국 50개주 중 하나일 뿐이지만 면적(17만305㎢)이 대한민국 면적(10만210㎢)보다 넓다. 그 플로리다주의 최남단에 키웨스트라는 섬이 있다. 이른바 미국의 땅끝마을이다. 한 해의 끝을 보내기 좋은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어떤 여행은 목적지보다 가는 길이 더 의미 있다. 미국의 땅끝마을 키웨스트로 가는 길 위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16시간(환승시간 제외)을 날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도착했고, 마이애미에서 자동차로 꼬박 4시간을 달려서야 키웨스트에 닿을 수 있었다.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키웨스트에 무엇이 있기에 그 먼 길을 가는 건지.

나 역시 궁금했다. 키웨스트가 얼마나 특별하기에 수많은 미국인이 동경하고, 다들 그렇게 '꼭 가 보라' 등 떠미는 걸까. 다녀와 보니 알겠다. 키웨스트라는 목적지보다 키웨스트까지 가는 여정이 더 특별하다.

'땅끝'이라는 신비로운 단어를 가슴에 품고, 푸른 카리브해와 하늘 사이에 하얀 실선처럼 놓인 다리를 따라 달리는 경험은 다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다.

키웨스트는 마이애미의 보너스 여행지처럼 여겨진다. 마이애미 여행자들은 적어도 하루쯤 시간을 내어 키웨스트를 찾는다. 두꺼운 겨울 니트를 입고 도착한 12월의 마이애미는 한여름처럼 더웠다. 낮 기온이 30도 근처까지 올랐고 햇볕은 피부를 빨갛게 익힐 만큼 뜨거웠지만, 마이애미 사람들에겐 이 날씨가 나름의 '겨울'이라고 했다. '진짜 여름'인 7~8월엔 습도가 높아 상상 이상으로 덥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마이애미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4시간을 더 가야 하는 키웨스트는 당연히 마이애미보다 더 덥겠지. 사실 얼마나 더운가는 중요치 않았다. 한국이 추운 겨울일 때 여행지에서 만나는 여름은 언제나 반가우니까.

키웨스트에는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식당과 바가 많다.
아침 8시, 여행 가방에서 가장 얇은 옷을 꺼내 입고 키웨스트로 출발했다. 플로리다 반도에서 키웨스트 섬까지는 약 200㎞ 거리. 미국은 1938년, 그사이의 수십 개 섬을 40여 개 다리로 모두 연결했다. 오버시스 하이웨이(Overseas Highway), 바다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다.

그중 하이라이트 구간은 '세븐 마일 브리지'다. 길 양옆으로 에메랄드빛 망망대해가 펼쳐진, 하늘과 바다 사이를 가르는 기분이 드는 약 7마일(약 11㎞) 구간. 키웨스트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 길 위에 있다. 그 길을 달려 '땅끝'에 닿는 낭만적인 여정을 위해 다들 키웨스트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키웨스트에 도착한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몇 곳 있다. 우선 '이곳이 미국의 최남단이오'라고 증명하는 표지석이 세워진 서던모스트 포인트. 말 그대로 '줄을 서서' 인증사진을 찍는 곳이다. 냉정하게 보면 그냥 색칠한 돌덩이 같기도 하지만, 그 멀리까지 가서 인증사진을 남기지 않으면 아쉬운 게 사람 마음이라 줄에 합류했다.

줄에 서 있다 보면 자기 앞 또는 뒤에 줄을 선 사람에게 눈치껏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글로벌 정'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한 외국인 커플의 사진을 기꺼이 찍어 주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처음 만난 어떤 이의 추억에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명소는 '슬로피조 바(Sloppy Joe's Bar)'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이었던 곳이다. 헤밍웨이는 1928년부터 1940년까지 키웨스트에 살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국외 종군기자 활동과 여행 등의 이유로 해외를 자주 오갔기 때문에 실제로 키웨스트에 머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고. 사실이 어찌 됐든 오늘날의 키웨스트는 헤밍웨이를 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이었던 슬로피조 바에서 마신 모히토와 프로즌 피냐콜라다.
슬로피조 바의 한쪽 벽면은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 사진과 그림으로 장식돼 있고, 메뉴판엔 헤밍웨이의 이름을 내건 모히토 칵테일도 있다. 바 옆의 작은 상점에선 헤밍웨이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와 마그넷까지 판매한다. 이 술집에선 매년 헤밍웨이 닮은꼴 찾기 대회가 개최되는데, 헤밍웨이와 똑같이 수염을 기른 사람들 수십 명이 참가한다고.

키웨스트 여행자들의 성지와 다름없는 그 바에 들어가 모히토 한 잔과 프로즌 피냐콜라다 한 잔을 주문했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차가운 피냐콜라다를 한 모금 마시고 무대를 보니 신나는 전자기타 공연이 한창이었다. 무대 아래에선 한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이런 게 여행 온 기분이고 연말의 느낌이지. 미국의 땅끝마을에서 맞이한 2018년 12월의 어느 날이 그렇게 추억되고 있었다.

[키웨스트(미국 플로리다주) = 고서령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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