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앉은 아이들..응곡중 3학년 6반 아이들이 '관계를 맺는' 방법 [노도현의 스쿨존]

노도현 기자 2018. 12. 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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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26일 경기 시흥 응곡중학교 3학년 6반 교실에서 ‘써클’이 진행되고 있다. 노도현 기자

학생 27명이 지내는 교실에 의자 28개가 둥그렇게 놓였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동등하게 참여하는 ‘서클’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이번 서클은 겨울방학이 끝나면 고등학교로 뿔뿔이 흩어질 친구들과 2학기를 마무리하는 자리다. 의자 한 개를 구석으로 빼놓고 ‘바람이 분다’ 게임으로 먼저 몸풀기를 했다. “안경 쓴 사람에게 바람이 붑니다.” 한 학생이 말하자 안경을 쓴 학생들끼리 일어나 후다닥 자리를 바꿨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학생이 외쳤다. “나보다 못생긴 사람한테 바람이 붑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교실 안에 웃음이 번졌다. 지난 26일 경기 시흥 응곡중학교 3학년 6반의 5교시 풍경이다.

서클을 통해 아이들이 접하는 것은 대화와 이해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잘못엔 처벌로 대응하는 것을 ‘응보적 생활교육’이라 한다면, 회복적 생활교육은 존중과 자발적 책임, 협력이 목표이자 수단이다. 서클을 할 땐 ‘토킹스틱’을 든 사람만 말하고 나머지는 귀를 기울인다는 규칙이 있다. 어떤 물건이든 토킹스틱이 될 수 있다. 이날의 토킹스틱은 모형 마이크.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2학기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을 말했다. “소화기가 터졌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내일 공연할 뮤지컬 연습한 거요.” “체험학습으로 스케이트장 갔을 때가 생각나요.”

두번째 질문은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일’이었다. 반장에 도전한 것, 이사 가서도 뒤척이지 않고 잘 잔 것, 지각을 한번 밖에 하지 않은 것, 사고 치지 않고 1년을 잘 보낸 것,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한 것 같은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마지막으로는 세 모둠으로 나눠 앉아 서로 칭찬을 주고받았다. “우리반 최단신이지만 빛나는 건 최장신” “야무진 손재주를 배우고 싶다”는 덕담이 오갔다.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머리 깎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장난기 섞인 말도 들렸다.

지난 26일 경기 시흥 응곡중학교 3학년 6반 교실에서 ‘써클’이 진행되고 있다. 노도현 기자

떠들썩한 중학생들이 규칙대로 조용히 듣기에 열중하긴 힘들다. 중요한 건 규칙을 지켰는지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이날 3학년 6반 교실에서는 목소리가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모두가 입과 귀를 열었다. 이지우양은 “시간이 갈수록 서클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서로 가까워졌다”며 “문제가 생겨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정인군은 “의자를 동그랗게 모으고 이야기하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는데 여러번 하다보니 정규수업만 받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며 “학교도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감정교류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클이 자리잡기에는 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한때는 이곳 선생님들도 학기 초만 되면 교실에 ‘다른반 출입금지’라고 써붙이며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힘을 쏟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수업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아이들 생활태도나 학교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교사들이 생활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응곡중 교사 모두가 학습공동체를 만들어 회복적 생활교육을 연구할 정도로 열의가 높다. 이 가운데 8명은 최근 구체적인 교육 시나리오와 사례를 담은 책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학급을 운영하다>까지 펴냈다.

이들의 목표는 채찍과 당근을 섞어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서서히 변할 수 있게 한다. 학생들끼리 다퉜다면 ‘화해하라’고 강요하기보다 소규모 서클을 열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일로 기분이 어떤지 말해주세요’ ‘상대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수업태도가 좋지 않을 때도, 학교 규칙을 어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3학년 6반 담임 전안나 교사는 “이전에는 아이들이 내가 재판관이 되주길 원했지만, 이제는 문제해결의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느끼도록 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예전처럼 화를 내지 않아도 괜찮더라”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중대한 학교폭력 사안은 교육당국이 요구하는 처리단계가 있고 섣불리 이 방식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강현경 생활인권부장은 “가해자가 피해를 입은 아이의 아픔을 같이 느끼다가도, 학폭위에 올라가면 생기부 기록이 달려있어 방어적으로 변한다”며 “우선 학교폭력에 접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득재 혁신부장은 “모두가 우리의 철학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교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학교도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옆학교로 전근을 간 교사 김준호씨는 “교사가 아이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아이들을 보는 시선도, 아이들도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써클을 하면 아이들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거든요. 학생자치를 확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아이들의 자존감과 소속감을 높이고, 서로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겁니다.”

응곡중에서 함께 회복적 생활교육을 연구한 인연으로 책까지 펴낸 교사들. 노도현 기자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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