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흥분한 말 위에서도 흔들림 없는..그런 완벽한 존재는 '불가능'하다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

이진숙 | 미술평론가 2018. 12. 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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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다비드의 ‘영웅이란 무엇인가?’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1800)은 군주기마상의 완결판이다. 말은 흥분해서 앞발을 들고 있지만, 말을 탄 나폴레옹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뒤에서 대포를 나르고 있는 부하들과 비교되면서 그의 초월적 영웅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 다시 영웅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다

다비드라는 화가는 몰라도 ‘완전 정복’이라는 참고서와 표지에 나온 그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일개 참고서에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1769-1821)까지 등장하는 것은 학벌이 신분 상승의 도구인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 그림의 원작자는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1748~1825)다. 프랑스혁명(1789)을 목전에 둔 시점에 등장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e)는 인간의 영웅적인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던 미술 사조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사랑의 꿈에 도취되어 흐느적거리던 로코코 미술을 비판하면서, 신고전주의 미술은 공적인 가치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이제 회화는 간지러운 꿈의 유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예술이 되고자 했다. 의미 있는 예술이란 세대를 넘어서 전해지는 교훈이 담긴 작품이기에, 당연히 그 주인공은 영웅이어야 한다.

다비드의 작품에 유독 죽음과 관련된 장면들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 철학자 소크라테스, 프랑스 혁명가 마라, 왕당파에 저항하다 죽은 소년 바라 등 모두 자신의 사적인 이익보다 공적인 의무를 중시하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 인물들이다. 비록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것이 공동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거나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문제를 제기할 때, 그 죽음은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혁명의 대소용돌이는 피바람을 몰고 왔다. 구체제의 무능함의 상징이었던 루이 16세뿐 아니라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피 냄새에 모두 지쳐갈 때쯤 나폴레옹이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한다. 그리고 자기 이념을 위해 순교한 비장한 영웅들을 그리던 다비드는 살아 있는 정치적 영웅을 그릴 기회를 얻게 된다. 당시의 다른 화가들도 나폴레옹을 그렸지만, 누구도 다비드처럼 그를 완벽한 영웅으로 그려내지는 못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이라는 한 인간의 여러 오점들을 덮고 진짜 나폴레옹보다 더 위대한 영웅상을 창조해냈다.

■ 진짜 나폴레옹보다 더 위대한 영웅상

영광이라는 양념으로 신처럼 묘사한 ‘군주기마상의 완결판’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은 미술사 최고의 영웅 이미지이자, 지금까지 그려졌던 모든 군주기마상의 완결판이다. 서구문화사에서 군주들의 최대 로망은 멋진 기마상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기마상들이 그림으로,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하늘을 나는 신에게 말은 필요하지 않으며, 농부들에게 말은 타고 다닐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세속의 신, 군주를 기리기에 가장 적합한 도상이 바로 기마상이었다. 무엇보다도 거친 말을 다스리는 것은 통치력의 표상이다.

다비드는 기마상의 여러 전례를 검토하고 그것들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영웅상을 만들어냈다. 말은 흥분해서 앞발을 들고 있지만, 말을 탄 영웅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어떤 역경에도 동요하지 않는 단호한 영웅은 혼란에 빠져 길을 잃은 대중들에게 손을 들어 갈 길을 제시하는 세속의 신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뒤에서 힘겹게 대포를 나르고 있는 부하들과 비교되면서 그의 초월적 영웅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야망에 가득 찬 영웅이 가는 운명적인 여정의 일부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말의 발아래 쪽 바위에 새겨진 보나파르트, 한니발(Hannibal), 샤를마뉴(Charlemagne·742~814)라는 세 이름이다.

이 중 샤를마뉴는 9세기 프랑코 제국의 왕으로 가장 큰 유럽의 왕국을 건설했던 대왕이었다. 샤를마뉴처럼 프랑스와 독일을 거의 포함했던 거대한 제국을 건설해서 프랑스의 영광을 되살리는 것이 나폴레옹의 비전이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처음 넘은 카르타고의 명장이었고, 실제로 지금 나폴레옹은 독일 지역의 가장 중요한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저지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고 있는 중이다. 이탈리아를 침범한 오스트리아와 치룬 멜랑고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혁혁한 승리를 거둔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알프스를 넘어서 빠르게 이탈리아로 도착하는 것은 명장 한니발에 버금가는 기발하고도 과감한 전략이었다.

이런 장치들로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과거의 영웅들의 계보를 잇는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림 속의 나폴레옹은 그리스 신상처럼 나이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영원한 청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고전주의 조각가 카노바 역시 그를 군신(軍神) 마르스로 묘사하고 있다. 군사적 지략에서 보여준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부정할 수 없다. 조지 오웰이 소설 <동물농장>에서 독재자 수퇘지에게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그 이름은 영광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영광이라는 양념으로 과도하게 버무려진 ‘영웅의 이미지’일 뿐이다. 흥분한 말 위에 제복을 입은 늘씬한 꽃미남이 드라마틱하게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모습은 일종의 신고전주의적인 포토숍이다. 이렇게 완벽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두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분명 있다.

■ 영웅의 실제 모습

노새 위에서 가이드에 의존하는 실제 모습은 그의 사후에 등장한다 자기 능력으로 출세했지만 혁명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영웅…

나폴레옹이 죽은 뒤 29년이 지나자 영웅의 ‘진짜 모습’이 나온다. 폴 들라로슈가 그린 ‘알프스를 지나는 보나파르트’(1850)에서 나폴레옹은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고 있다. 또 부하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고 있다.

1850년, 그러니까 나폴레옹이 사망한 지 29년 뒤에 열광 없이 거리감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등장한다. 이때는 1848년 혁명 이후 사실주의적 관점이 문학과 미술에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1797~1856)는 좀 더 사실적으로 나폴레옹을 묘사해달라는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서 그림을 그렸다. 조금 사실주의적으로 접근하자, 초월적 영웅의 모습은 덧없이 사라졌다.

5월이었지만, 만년설이 쌓여 있는 알프스 정상 부근의 날씨는 혹독했다. 영웅도 추위를 피할 수 없었다. 다비드의 그림 속에서 나폴레옹이 입은 화려한 색의 제복은 영웅적인 면모를 내뿜는 데 일조하지만, 방한용 외투의 칙칙한 색깔은 찬란한 영광의 느낌을 지워버린다. 들라로슈는 딱히 나폴레옹을 조롱할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에 잠긴 듯한 나폴레옹의 표정은 다비드의 그림에서처럼 ‘불가능은 없다’라고 외치는 확신에 찬 전지전능한 영웅의 표정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영웅의 환상이 깨어진 이유는 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비드가 그린 그림의 압도적 조연은 잘생긴 말이었다. 이 그림은 네 개의 복제본이 더 그려졌다. 그만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구도는 같지만, 그림마다 말의 색깔이 달라졌고, 말의 색에 따라 나폴레옹이 입고 있는 옷 색깔의 뉘앙스가 달라졌다. 그러나 말은 그곳에는 없었다.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을 때 노새를 타고 넘었다. 말은 초원을 달리는 데 용이하지 험준한 산에는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노새를 탄 영웅은 정말 ‘깨는 이미지’가 되기 십상이니, 말로 바꿔치기 되어 엉뚱한 장소를 배경으로 최고의 기마상이 탄생된 것이 다비드의 그림이다.

조그만 노새에 앉은 나폴레옹은 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력자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다. 제 아무리 영웅이라도 모든 길을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옆에 있는 사람은 나폴레옹의 현지 가이드였던 피에르 니콜라스 도르사츠였다. 거기다 노새를 이끌고 가는 도르사츠는 지팡이에 의존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오랜 착각을 거두어 내고 역사를 들여다보면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대라는 것은 결국 민중들의 요구였다.

나폴레옹이 영웅 시 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신분이 아니라 자기 능력에 따라 출세해서 왕까지 되었던 당시의 보기 드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군인이 된 것은, 그것이 신분제 사회에서 가난한 집 자식이 출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대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고급장교직은 모두 귀족 출신들의 차지였는데, 26세의 나폴레옹이 총사령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혁명이 발발하자 귀족들이 모두 망명해 빈자리들이 생겨 고속 승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영웅 나폴레옹의 재능 발휘는 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회에서 주어진 평등의 기회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혼자만의 힘으로 영웅이 되지는 않은 것이다.

■ “영광은 줄되 자유는 많아진다”

그가 몰락한 후에야 민주주의를 통한 ‘모두의 자유’가 온다

사실 다비드가 그린 다른 그림은 군신으로까지 표현하지 않더라도 나폴레옹이 충분히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812년에 그린 ‘튀일리궁 집무실에서의 나폴레옹’은 머리도 벗겨지고 배도 좀 나온 중년의 나폴레옹의 모습이다. 군신도, 혁명의 찬탈자도 아닌, 공동체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진정한 국가적 영웅을 우리는 보고 있다. 나폴레옹 뒤의 벽시계는 오전 4시13분을 가리킨다. 그는 밤새워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뒤쪽의 두루마리 종이에 적혀 있는 ‘COD’라는 글자가 그가 몰두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CODE, 즉 나폴레옹 법전을 정비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을 근대적인 헌법체계로 구체화시키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나폴레옹 스스로도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더 값진 일이 바로 프랑스 혁명 기간 발의되었던 인간의 권리에 관한 내용을 법전으로 집대성한 일이라 평한다.

그러나 이 그림이 그려졌던 1812년은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되던 때이기도 했다. 그해에 감행한 러시아 원정이 참패로 끝났고 결국 엘바섬으로 유배를 갔던 나폴레옹이 탈출해서 부활을 꿈꾸며 영국과 전쟁을 벌이지만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만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100쪽 가까운 분량으로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하는 과정을 장대하게 묘사했다. 여기서 위고는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의 몰락이 “위대한 시대의 도래”에 반드시 필요했다고 말한다. 프랑스혁명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싹텄던 민주주의를 이어가는 것으로, 과거에 소수만 누리던 자유가 이제 모두의 자유가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위고는 이해한다.

이제 모든 인간 능력의 집약체로서의 한 사람의 영웅은 가능하지도 않고, 모든 인간의 권력의 집중체로서의 정치적 영웅도 필요하지 않다. 이 상황을 위고는 이렇게 표현한다. “영광은 줄되 자유는 많아진다.” 현실에서는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권력과 영광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갖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위고가 보기에는 새로운 시대에는 나폴레옹 같은 영웅의 자리는 없었다. 만약 여전히 이런 영웅이 득세한다면 “그것은 문명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위고는 경고한다. 영웅의 시대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끝났다. 실제로 그 이후에 영웅을 자처하며 등장한 사람들은 대부분 독재자들이었다. 그리고 다비드 이후에 한 개인을 영웅적으로 숭배하며 그린 그림은 미술사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아류 작품으로 간주됐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았듯이 영웅은 결코 스스로 혼자 등장하지 못한다. “풍차는 없어졌지만 바람은 아직 남아 있다”고 위고는 말한다. 영웅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이 존재하는 한, 풍차(정치적 영웅)는 얼굴을 바꾸어가며 등장할 것이다. 바람이란 혼란스러운 국면에서 강력한 누군가가 나서서 돌파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일컫는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 인간을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지전능한 인신으로 여기는 것은 영웅숭배다. 영웅숭배는 참으로 기이하고 어리석은 현상이다. 나의 나약함을 덮는 방법으로 타인의 완전함을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근본에는 여전히 나보다 높은 누군가를 상정하는 서열화된 의식이 깔려 있다.

에티엔 드 라 보에티는 16세기에 이미 한 사람에게 권력과 영광을 몰아주는 독재자 지지는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복종’에서 가능함을 통찰했다. 프랑스혁명을 종합하면서 위고가 제시한 진짜 역사의 주인공은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처럼 인간의 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 자기 삶에서 인간적 가치를 철저히 실현하는 인간이었다. 완벽한 이론이,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이, 완벽한 영웅도 없다. 영웅이 필요 없는 시대가 좋은 시대이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자기 삶에서 용기 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이면 된다. 물론 이 경우 스토리는 좀 평범해진다. 그래도 그것이 옳다고 위고는 말한다.

■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랑스 뤼에유말메종의 박물관: 프랑스 파리 서쪽의 교외에 위치한, 나폴레옹이 즐겨 머물렀다고 알려진 성이었다. 현재는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한 다비드의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이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

■ 필자 이진숙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을 하며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롤리타는 없다 1, 2> <시대를 훔친 미술> <위대한 미술책> 등 저서가 있다.』

이진숙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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