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요절한 배호, 그의 노래는 평생을 산다

홍장원 2018. 12. 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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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저음, 감미로운 고음으로
1960년대 최고 인기가수 등극
신장염 악화돼 20대 세상떴지만
천상의 목소리 담긴 그의 노래는
수십년 지난 오늘도 여전한 감동
[스쿨오브락-87] 하늘을 찢어버릴 정도로 화려하게 장렬하는 고음은 듣는 사람에게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노래에서의 고음은 야구로 치면 '강력한 패스트볼'에 비유할 수 있다. 일단 어느 정도 타고나야 구사할 수 있고,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불쾌하지 않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고음이라고 해서 다 통하는 것도 아니다. 정제되고 잘 다음어진 '아름다운 고음'으로 노래를 불러야 청자가 만족한다. 야구에서 강력한 직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제구가 잡히지 않는다면 그 선수는 절대 1군 무대에서 롱런할 수 없다. 요컨대 고음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그렇기에 더 갖고 싶고 애절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곡이 클라이막스로 진행하면서 예열했던 성대가 한번에 폭발하며 전율의 고음을 선보인다면, 십중팔구는 가창자에게 매료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노래에서 고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면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된다. 혹은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등 쟁쟁한 가수끼리 경쟁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높은 점수를 가져가는 쪽은 화려하게 수놓은 고음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일단 화끈하고 멋있게 지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경쟁자 대비 몇 걸음 앞에서 달리기 경쟁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음이 전부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옹이 디바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무렵 토니 브랙스톤이 최고의 디바 한 자리를 놓고 잠시 경쟁 구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천상의 저음' 때문이었다. 웬만한 남자 키로 부르는 그의 대표곡 '언브레이크 마이 하트(Unbreak My Heart)는 가슴이 저릿저릿하게 녹아내릴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한국에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역대 최고의 저음 가수라고 무방할 정도의 가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쉽게 20대로 요절한 그는 짧은 생애 동안 많은 노래를 남기진 못했지만 수십 년 전 조악한 음질로 녹음된 그의 목소리는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멸종 단계까지 가버린 2018년 현재에 들어도 너무나 매력적이고 감미롭다. 한국이 낳은 전설의 가수 '배호'가 이번주 주인공이다.

배호는 1942년 4월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배만금, 배신웅이었다. 중학교 1학년때 배신웅이란 이름으로 개명했다. 아버지 배국민은 광복군이었다. 1945년 그가 아주 어린 시절 한국에 들어와 서울 창신동에 살았다. 가난에 시달려 중학교를 중퇴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그는 원래 드럼을 치던 연주자였다. 후술하겠지만 그가 노래를 부를 때 보이는 탁월한 리듬감은 아마도 드럼을 치면서 자연스레 익혔을 가능성이 높다.

배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배호가 중년에 요절한 것으로 알기 쉽다. 그가 남긴 목소리, 그가 선보인 중절모에 양복차림, 선글라스로 무장한 패션은 중후한 40대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배호는 놀랍게도 만으로 20대에 요절한 청년가수였다. 1942년 4월 24일에 태어나 1971년 11월 7일 숨을 거뒀다. 그는 1963년, 만 21세의 나이에 예명 '배호'로 데뷔해 명곡 '굿바이'를 불렀다. 너무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목소리가 성숙해서 일부러 나이들어 보이게 패션을 연출했다(1988년 태어난 G드래곤이 거짓말을 히트시킨 때가 2008년이었다. 비숫한 나이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두 가수가 이미지만큼은 수십 년 차이가 날 만큼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데뷔곡 '굿바이'를 포함한 배호의 초기곡은 당시 최고 유행하던 미국의 스탠더드팝 느낌이 물씬 났다. 배호는 본인의 악단을 끌고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배호를 당대 최고의 '록스타'로 만든 것은 1967년 발표한 '돌아가는 삼각지'일 것이다. 이 곡은 다분히 트로트의 문법을 차용해 만들어진 곡이었지만, 배호가 불렀기에 그저그런 트로트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을 발산했다. 배호 목소리의 최고 장점은 앞서 말했듯이 심장을 파고드는 저음이었다. 탄탄한 울림통을 기반으로 한 '꿀성대'가 여심을 톡톡히 자극할 만한 감미로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배호의 고음을 저음보다 훨씬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팬들도 많다. 배호의 고음은 당연히 3옥타브를 오르내리는 샤우팅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스킬로 무장한 최상의 퀄리티였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 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 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 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 하며

눈물 젖어 불러 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 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배호는 고음으로 음을 올릴 때 성대에 힘을 크게 주지 않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최고의 효율적인 발성이라 할 만했다. 단단한 발성을 기반으로 몸통 깊숙이 출발한 목소리가 얇게 뜨인 성대를 통과함과 동시에 머리통 안에 있는 각종 공간을 터치하며 돌아나와 감미로움이 배가되는 그런 목소리였다. 다시 말해 저음에서 풍겨나오는 나직하고 감미롭고 중후한 느낌은 살아있으되 절대 억지로 짜낸 것 같지 않은 부드러운 느낌이 추가된 최상의 발성이었다. 이것은 테너가 짱짱하고 단단한 방식으로 고음을 표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소위 트로트 느낌의 꺾기가 난무하는, 소위 목소리를 까뒤집는 식의 발성도 아니다. 저음 가수에게 흔히 보이는 흉성을 기반으로 한계음을 끝까지 밀어 올려붙여 표현하는 거친 발성도 아니다. 또 반가성을 기반으로 성대를 얇게 붙여 표현하는 느낌도 아니다. 그냥 배호만이 낼 수 있는 '배호 발성'이다. 굳이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속을 알 수 없게 깊은 호수에서 분수처럼 물줄기가 뿜어져나와 거친 바위 틈을 유연하지만 강력하게 파고들며 내는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음의 파워는 저음부와 연결되며 일관되게 살아있지만 음 자체는 높게 쭉쭉 올라가는데 음 사이를 표현하는 발성이 물처럼 부드럽고 자유로운 식이다. 웅장한 뿌리와 달리 먼 곳을 유영하는 물줄기는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을 만큼 가냘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듣는 사람을 미치게 할 만큼 애처로운 느낌을 들게 했다. 바로 이 점이 배호를 지금까지 대중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수많은 모창자가 배호의 저음과 고음을 카피했지만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돌아가는 삼각지' 이후 배호의 음악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가 울어' 등이 히트 랠리를 펼치며 1960년대 최고 인기가수 대열에 배호를 밀어올렸다. 그런데 탄탄대로였던 음악 인생과 달리 배호는 속으로 점점 쇠락해가고 있었다. 1966년 시작된 신장염이 문제였다. 아마 지금이라면 배호가 만 20대의 나이에 요절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현 의학으로 배호의 병은 완치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천수를 누리기 전에 요절할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한미한 의학 수준으로 그가 앓던 신장염은 목숨을 위협할 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신장이란 장기는 피곤하면 없던 병도 생기는 곳이다. 가뜩이나 염증이 있는 그나 바쁜 스케줄로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무리를 했으니 병이 악화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태워 노래와 목숨을 맞바꾼 셈이었다. 시나브로 병이 악화되던 그는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사회자 등에 업혀 노래를 부르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전히 대중은 배호의 목소리에 열광했다. 병색이 완연해진 배호는 노래를 부를 때 숨이 차서 호흡이 짧아지기도 했는데, 음 사이 사이마다 배호가 힘겹게 내뱉고 들이마시는 숨소리마저 음악이 되어 노래를 더 짜릿하고 신비롭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배호의 목소리를 설명하는 표현 중에 '배호는 음의 사이를 연결하며 불렀다'는 분석이 있다. 예를 들어 '시'와 '도' 사이는 정확히 반음 떨어져 있다. 음표상으로 모든 음은 반음씩 떨어져 표기하게 된다. 그사이에 있는 음은 악보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음높이는 결국 주파수 진동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악보에서 표시하는대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시와 도 사이도 쪼개자면 반의 반음, 반의 반의 반음으로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신시사이저에는 음을 하나 찍은 뒤 이 음을 반음보다 살짝 높게, 반음보다 살짝 낮게 표현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수의 음악팬들은 배호의 노래에는 반음과 반음 사이를 타고다니며 표현한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악보로 설명되지 않는 기묘한 음들을 배호의 노래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감미로운 고음 부분이 호흡을 타고 연결되며 이같은 묘한 소리가 종종 쏟아져나왔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배호만의 독특한 가창이었다.

신장염으로 고생하던 배호는 언제 쓰러져도 모를 삶을 살고 있었다. 결정타가 된 건 1971년 어느 날이었다. 라디오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비를 맞게 된다. 여기서 감기몸살을 얻어 쓰러지게 된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신장은 여기서 결정타를 맞게 된다. 그해 11월 7일 그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끝내 숨을 거둔다. 그의 장례식장에 소복을 입은 여인이 구름처럼 몰려들며 흐느꼈다고 하니 당시 그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하게 된다. 얼마 전 '불후의 명곡'에서 배호를 기리는 방송이 기획되었을만큼 배호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20대로 생을 마감한 가수가, 활발하게 무대를 뛴 활동 기간이 10년 남짓에 그친 가수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배호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를 가진 가수다. 만 20대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평생 그의 노래를 들어온 60·70대 팬들이 '배호 형님'의 노래가 그립다며 추억을 삼킨다. 20대의 배호는 세대를 아우를 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건 단순히 그의 외모가 노숙했거나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패션을 연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배호의 추천곡을 꼽는 건 무의미하다. 그는 짧은 활동 기간 활발히 활동했지만 많은 곡을 남기진 못했다. '돌아가는 삼각지' '굿바이' '누가 울어'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 전곡이 추천곡이다. 그의 목소리로 불린 라이브 무대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안타까울 정도다.

개인적인 추억을 덧붙이자면, 배호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필자의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당시 가족끼리 노래방에 가면 '영시의 이별'이란 노래를 참 자주 부르셨다. 이 곡이 배호의 유작과 같은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네온불이 쓸쓸하게 꺼져가는 삼거리

이별 앞에 너와 나는 한없이 울었다

추억만 남겨놓은 젊은 날에 불장난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밤안개가 자욱한 길 깊어가는 이 한밤

너와 나의 주고받은 인사는 슬펐다

울기도 안타까운 잊어야 할 아쉬움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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