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서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삿포로(일본) | 글·사진 김형규 기자 2018. 12. 1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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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일본 홋카이도 ‘눈의 도시’

화려한 간판들과 쌓인 눈을 외투처럼 두르고 선 가로수, 눈 덮인 도로 위를 조심스럽게 달리는 자동차와 트램이 어우러진 삿포로의 겨울 풍경은 낭만적이다.

시내 남북 가르는 ‘오도리 공원’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 40만여개 전구 1.5km 불 밝혀 유럽식 ‘크리스마스 마켓’ 개장 자매 도시 뮌헨과 항상 함께 독일식 소시지·따뜻한 와인도 설산과 눈 덮인 거리 야경 등 어디서든 크리스마스 분위기

성탄절을 전날과 당일에만 즐기면 바보다. 예쁘게 장식한 트리가 빛나고 캐럴이 울려퍼지는 거리를 걸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는 건 12월의 특권이다. 기왕 분위기를 내는 건데 온통 눈으로 덮인 도시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겨보면 어떨까. 겨우내 눈이 녹지 않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는 비행기로 2시간30분 만에 닿는 ‘겨울왕국’이다. 홋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는 눈 오는 날이 1년에 130일이 넘는다. 연간 강설량은 6m에 이른다. 설국(雪國)을 배경으로 화려한 축제도 겨울 내내 열린다. 눈의 도시 삿포로만큼 ‘미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에 적당한 장소도 없다.

■ 눈밭에 펼쳐지는 빛의 향연

삿포로의 관문인 신치토세공항에 착륙하는 순간부터 하얀 대지가 반긴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창밖은 사방 눈이다. 가도 가도 설원이다. 펄펄 내리는 눈은 온통 무채색으로 세상의 윤곽을 지워버리는 것 같지만, 눈이 그치고 나면 산과 들판은 평소와 다른 속을 내보인다. 구불구불 뻗은 산의 능선은 물론 산비탈의 숲도 흑백의 대비가 선명해지며 나무 한 그루까지 손금처럼 들여다보인다.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활엽수들은 보호색을 잃고 나목을 드러낸 모습이다. 짙푸른 잎이 여전히 무성한 침엽수들은 쌓인 눈을 하얀 외투처럼 두르고 더 당당한 풍채를 자랑한다. 늘 보던 나무조차 특별한 풍경으로 만드는 눈은 여행객의 설레는 마음을 재촉한다.

40만개의 전구가 도시의 밤을 색색으로 물들이는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

여정은 삿포로 시내를 남북으로 가르는 오도리(大通)공원에서 시작된다.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건설하며 화재방지선으로 비워놨던 공간이 지금은 연중 축제가 열리는 시민의 휴식처로 변했다. 매년 겨울이 오면 오도리공원은 울긋불긋 조명옷을 새로 입는다. 1981년 시작돼 올해로 38번째를 맞는 ‘삿포로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다. 길이가 1.5㎞에 이르는 거대한 공원에 40만개가 넘는 전구가 일제히 불을 밝히는 장관이 밤마다 펼쳐진다. 올해는 지난달 22일 점등식을 해 내년 3월14일까지 행사가 이어진다.

눈밭 위에는 크리스마스트리부터 꽃마차, 궁전 등 다양한 조형물이 색색으로 빛났다. 축제장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꺼내들고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기 바빴다. 공원 한가운데에선 행사 관계자들이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저녁 날씨가 꽤 쌀쌀했지만 줄이 길게 늘어섰다. 추울 법도 한데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았다.

오도리공원 동쪽 끝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 ‘삿포로 TV 타워’에 올랐다. 높이 147m로 에펠탑을 닮은 타워는 어디서나 눈에 잘 띄는 도시의 랜드마크다. 입장료를 내고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 오도리공원은 물론 도시 전경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종일 내린 눈으로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한 땅 위에 축제 조명과 고층빌딩의 간판들,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이 한데 어우러져 빛나는 모습은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삿포로의 겨울은 원래 매년 2월에 열리는 눈 축제로 유명하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 독일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5t 트럭 7000대 분량의 눈을 동원해 눈과 얼음 조각으로 도시를 장식하는데 세계 각지에서 매년 2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린다. 화이트 일루미네이션을 보고 나니 굳이 2월까지 기다려 삿포로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달하고 따뜻한 와인 한잔에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는 오도리공원의 크리스마스 마켓

■ 몸과 마음 따뜻하게 녹여주는 장터

겨울 삿포로에서 또 하나 놓쳐선 안될 게 오도리공원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에서 시작돼 지금은 유럽 주요 도시들이 대부분 치르는 연중행사다. 겨울철에 가장 풍성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장터다. 보통 11월 말부터 성탄절 무렵까지 열리는데 구도심을 무지갯빛 조명으로 장식하고 다양한 음식과 수공예품, 크리스마스 장식품 등을 사고팔며 축제 분위기를 낸다. 특산물 등 지역 특성도 반영된다. 삿포로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지난달 22일 개장했다.

삿포로에서 유럽식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작된 계기가 재미있다. 뮌헨과 삿포로는 위도와 인구수 등 비슷한 점이 많아 기왕에도 교류가 활발했다. 1972년 두 도시는 각각 하계·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걸 기념해 자매도시를 맺었다. 2002년 자매도시 체결 30주년을 기념해 뮌헨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삿포로에서도 열기로 하면서 역사가 올해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마트료시카로 변신한 산타클로스와 동물들.

장터를 가장 활기차게 만드는 건 역시 먹거리다. 독일어로 건배를 뜻하는 ‘PROST’를 간판으로 내건 집에선 독일식 소시지와 으깬 감자, 맥주와 글뤼바인(따뜻하게 데운 와인)을 팔고 있었다. 가게 앞은 술 한 잔에 몸을 녹이고 출출한 배도 채우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캐러멜이 들어간 뜨거운 사과와인을 파는 옆집에도 손님이 몰렸다. 길쭉한 빵에 소시지를 끼운 핫도그 대신 프레츨(Pretzel)에 소시지를 넣은 프레츨도그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마켓에는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 마트료시카를 파는 가게도 여럿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예부터 러시아와 교류가 활발했던 홋카이도의 역사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개와 고양이 모양의 마트료시카, 산타와 눈사람, 크리스마스트리를 속에 품은 마트료시카 등이 눈길을 끌었다.

삿포로 과자 ‘시로이 고이비토’ 테마파크는 동화 속 나라처럼 꾸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다.

오도리공원을 벗어나도 삿포로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만한 곳이 천지다. 삿포로를 대표하는 선물용 과자 ‘시로이 고이비토’의 테마파크 겸 공장이 대표적이다. 기다란 탑이 멋진 고풍스러운 건물로 들어가면 안뜰이 알록달록 조명으로 장식돼 있다. 움직이며 빛나는 루돌프가 끄는 마차 앞엔 항상 줄이 길게 서 있다. 건물 처마와 창턱마다 매달린 눈사람도 귀엽다.

삿포로 시내를 굽어보는 모이와산(531m)은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설산의 매력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정상에선 탁 트인 도시의 야경이 펼쳐진다. 최근 조사에서 일본 3대 야경으로 뽑혔을 정도로 전망이 좋다.

삿포로 최대 번화가 스스키노 거리도 가로수마다 하얀 눈을 얹은 가지 위에 반짝이는 조명이 얽힌 모습이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쇼핑몰 ‘노르베사’ 건물 7층의 관람차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빙글빙글 돌면서 타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

눈사람 모자 위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삿포로엔 겨울마다 6m씩 눈이 내린다.

삿포로는 사실 눈과 조명이 어우러진 도시의 낭만적 풍경을 즐기기 위해 어딘가를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냥 휘적휘적 시내를 걷기만 해도 족하다. 눈 쌓인 도로 위를 자동차와 트램이 나란히 달리는 모습만 봐도 세밑을 지나는 마음이 훈훈해진다.

◆홋카이도 지사 “지진피해 복구작업 완료…관광객 맞이할 준비 끝”

한국여행업협회 환영회 열어

“지진이 발생한 지 정확히 100일이 지났습니다. 이제 모든 복구작업이 완료됐습니다. 관광객을 맞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 많이들 방문해주세요.”

지난 14일 일본 삿포로 시내 파크호텔의 행사장에서 다카하시 하루미 홋카이도 지사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에서도 지진이나 태풍 피해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홋카이도는 지난 9월 최대 진도 7의 강진으로 사상자와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컸다. 관광객도 급감하며 후유증을 겪었다.

이날 파크호텔에선 지진 피해를 입은 홋카이도 주민과 관광업계 관계자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한국여행업협회(KATA) 양무승 회장과 200여명의 여행업계 관계자들로 구성된 ‘일본 홋카이도 응원단’의 환영회가 열렸다. 응원단은 일본정부관광국(JNTO)과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의 후원을 받아 2박3일 일정으로 홋카이도를 방문했다.

지난해 홋카이도를 방문한 한국인은 64만명이다. 전체 외국인 방문객 중 약 25%의 비중으로 국가별로 보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세키하치 요시히로 홋카이도 관광진흥기구 회장은 “지난달 말 저비용항공사 에어서울이 새로 취항하면서 총 8개 항공사가 노선을 운영하며 이동이 더욱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양무승 여행업협회 회장은 “한·일 관광 인적 교류 1500만명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삿포로(일본) | 글·사진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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