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창의 아는 만큼 맛있다>팥, 변비 팍!..피로 팍!.. 흰띠 선명해야 효과

기자 2018. 12. 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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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변했지만 예전에는 동지에 액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해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 먹었다. 비록 그 같은 유래를 모른다고 해도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단맛의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은 겨울철 별미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올해 동지는 22일이다. 신창섭 기자 bluesky@

22일 冬至 중에도 中冬至

액막이 음식인 팥죽 전통

콩科 식물로 분류되지만

콩과 달리 지방 거의 없어

8℃ 이하로 저온보관하면

바구미 피해 막을 수 있어

가열해야 영양저해제 파괴

삶을 땐 물·불조절이 관건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따뜻한 팥죽을 쑤어 주었다. 새알심 뜬 팥죽에는 자녀들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팥은 통과의례 음식에도 빠지지 않았다. 백일 상에는 새하얀 백설기와 함께 붉은 수수팥경단이 올랐다. 넉넉하게 만들어 이웃과 나누었다. 고슬고슬한 붉은색 팥고물에는 액(厄)을 면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묻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팥은 곱디고운 마음을 담은 미풍양속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팥죽을 쑤어 날랐다. 특별한 날에는 팥시루떡을 해서 함께 나누었다. 이 풍습은 오랜 세월을 거쳐 전통생활문화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 팥은 콩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수천 년 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데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로도 전해져 생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생산국은 중국이다.

오랜 역사와 함께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어 팥과 얽힌 이야기도 많다. ‘팥죽할멈과 호랑이’ ‘콩쥐팥쥐’ 같은 전래동화뿐만 아니라 속담도 많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의미를 콩과 팥 차이를 대비해 잘 설명하고 있다.

서로 다를 것 같은 콩과 팥은 똑같은 콩과(科)식물로 분류된다. 뿌리혹세균이 살기 좋은 작은 집을 뿌리에 만들어 주고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게 해 식물체로 공급하는 점도 같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점이 더 많다. 꼬투리 모양이 다르다. 콩보다 가늘고 긴 꼬투리에 콩의 3배 가까운 씨앗을 나란히 품는다. 꽃 색깔도 다르다. 팥은 노란색, 콩은 자주색 꽃이 핀다. 팥에는 지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콩기름은 있어도 팥기름은 없다. 단백질 함량은 팥이 20%에 가깝고, 콩은 팥보다 높은 36%다. 우리나라 전체 두류 생산량 중 첫 번째는 콩이다. 콩이 85%를 차지하고 있고 팥이 그다음으로 5% 정도이다. 팥은 전국에서 골고루 생산되는데 전남과 강원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2017년도 전체 생산량의 36%는 전남지역에서, 18%는 강원도에서 수확했다. 두 지역에서 전체의 50%가 넘게 나온다.

1982년에 4만t이나 되었던 팥 생산량은 계속 감소해 지금은 5000t에 지나지 않는다. 모자라는 양은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일본은 홋카이도(北海道) 지역에서 대부분의 팥이 생산되는데 수요가 많아 수입한다. 우리와 똑같이 중국에서 수입한다.

팥 재배가 늘지 않고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는 이유는 팥 농사로 많은 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덩굴성 팥은 기계로 수확하기도 어려워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연작피해도 있다. 보통 다른 농산물을 거둔 다음에 씨를 심는데 파종시기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치기 쉽다. 서리에 아주 약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불안정하면 수확량 변동이 매우 큰 작물이다. 그래서 팥은 시장가격 변동 폭도 크다.

팥의 크기는 100알 기준으로 15g 이상으로 큰 것도 있고, 10g 이하로 아주 작은 것도 있다. 붉은 팥을 가장 많이 심는다. 껍질이 황색과 녹색인 팥도 있다. 검정팥인 검구슬 품종이 있고, 흰색 팥인 흰구슬, 흰나래 품종이 있다. 흰색 팥은 흰앙금에 쓰인다. 충주팥은 전통적으로 많이 재배하는 품종인데 품질이 우수하고 수량이 많다. 덩굴성이다. 지역적응시험을 마치고 2011년 개발된 아라리 품종은 통팥이나 앙금으로 가공하기에 적합하다.

팥은 예로부터 필요한 때 집에서 쓸 요량으로 다른 작물 사이나 논과 밭두렁 위에 심었다. 다른 작물 사이에 심어도 서로 크게 경쟁을 하지 않는다. 6월 말에 가장 많이 심으며 서리 내리기 전인 10월까지 수확해 4∼6일 충분히 말렸다가 탈곡한다. 수확해 놓은 팥은 몇 년을 두었다 심어도 되었다.

팥을 구입할 때는 흰색 띠가 선명하고 표면에 윤기가 나는 것을 고른다. 팥을 오래 보관할 때는 팥 바구미 피해에 주의해야 한다. 꼬투리나 낱알 표면에 낳아둔 알은 애벌레로 깨어나 팥알 껍질을 파먹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팥알 속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어른벌레로 깨어난다. 8도 이하 저온에 두면 팥 바구미가 자라지 못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팥죽을 쑤거나 떡을 할 때 팥은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다. 단단하고 쉽게 불지 않기 때문에 잘 삶아 부드럽게 해야 한다. 집에서 삶으려면 기다림과 정성이 필요하다. 처음 삶은 물은 버려 팥의 아린 맛을 없앤다. 고슬고슬하게 삶아내려면 팥 상태에 따라 물조절과 불조절도 잘해야 한다. 팥을 눌렀을 때 팥알이 부드럽게 으깨어지도록 삶는다. 단순해 보이지만 경험이 필요하다. 압력밥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콩 종류를 날로 먹지 않고 삶아 먹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열을 통해 트립신 저해제 같은 영양저해인자들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

팥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 예방에 좋다. 팥의 비타민 B1은 탄수화물 대사를 도와 신체에 활력을 주고 피로해소를 돕는다. 각기병 예방에도 쓰였다. 쌀과 팥은 잘 어울리는 조합인데, 팥죽, 찹쌀떡, 시루떡, 두텁떡처럼 쌀과 팥을 함께 이용한 것은 영양소를 보완하는 슬기로운 방법이었다.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단맛이 좋아 누구나 팥과 함께한 추억이 많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고 달콤한 팥빙수로,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고 맛있는 팥죽으로 수십 년 단골은 예삿일이다. 전국에서 찾아와 줄을 서서 사 먹어야 하는 집도 수두룩하다. 내년이면 80주년이 되는 경주의 황남빵은 3대를 이어가는 한결같은 맛으로 유명하다. 빗살무늬 도장을 찍은 둥글납작한 모양과 말랑말랑한 촉감이 좋다. 터질 듯 얇은 껍질 속에 담백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숨어있다.

84년 전통을 가진 천안 ‘학화호도과자’, 73년 전통을 가진 군산 ‘이성당’의 단팥빵, 50년 전통의 횡성 ‘안흥찐빵’을 비롯해 헤아릴 수 없는 지역 명물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지금까지 꾸준히 받고 있다.

해태 연양갱은 1945년생으로 73살이다. 지금도 팔리고 있는 빙과 ‘아맛나’는 1974년생으로 44살, 빙그레 ‘비비빅’은 1975년생으로 43살이다. 팥 앙금 생산의 1번지는 ㈜대두식품으로 1983년 설립되어 국산 팥 앙금의 대부분을 만들고 있다.

동지가 있는 동짓달과 음력 마지막 달 섣달을 합한 동지섣달은 한겨울을 대표한다. 긴긴 겨울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날밤을 새웠다.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했다. 동지팥죽도 어김없이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섭섭하기로는 애동지’란 말이 있다.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먹으며 팥죽을 먹지 못하는 섭섭함을 달랬다.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아이를 의미하는 애동지, 하순에 들면 노인동지라는 의미인 노동지(老冬至)가 된다. 올해 동지는 22일이다. 음력으로 11월 16일로 동짓달 중순에 들었으니 중동지(中冬至)다.

신구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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