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택시오라(aura)] 택시에선 기적을 만나기도 한다

2018. 12. 2. 18: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몇년 전 어느 토요일 밀린 업무를 처리하러 당시 살던 일산에서 회사가 있던 파주까지 가려는데 아무리 불러도 택시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무사고 운전으로 여든여덟이 되셨다는 할아버지 택시 기사님을 만나 살아오신 얘기를 들은 것도 기적, 계명대에서 동대구역까지 가는 길에 올라탔던 택시 안에 놓고 내린 휴대폰을 기사님이 뽁뽁이에 꼭꼭 싸서 우체국 택배로 파주까지 부쳐주신 일도 기적, 술에 취해 오른 택시 안에서 구토가 계속되는 가운데 편의점에 들러 검은 비닐봉지 일곱개와 물티슈를 사서 뒤에 앉은 내게 넘겨주던 기사님의 손이야말로 진짜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민정의

택시오라 aura

몇년 전 어느 토요일 밀린 업무를 처리하러 당시 살던 일산에서 회사가 있던 파주까지 가려는데 아무리 불러도 택시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폭설의 잔설이 여전하던 12월의 어느 하루였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아파트 정문에 나가 한참을 서 있었다. 30분쯤 곱아드는 손과 오그라드는 발로 전전긍긍 서 있다가 이내 마음을 접고 회사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내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15분쯤 걸었을까. 단골 카페에 들어서니 잘 알고 지내던 소설가 선생이 젊은 남녀 둘과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일행들이 자리를 뜨자 이내 선생이 나를 부르셨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게 택시다. 오면 고마워하고 안 와도 원망을 마라.” “아이 참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남도 아니고 택시가 무슨 애인이나 되려나요.” 난 평소 좋아하던 가수 조미미의 노래 ‘단골손님’에 빗대 말했다. “딱 그거네. 잘 아는구나, 너. 어쨌거나 운전면허증 없는 너를 네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바퀴야말로 기적이 아니냐. 난 평생 그 기적에 감사하며 택시를 타왔다. 삶에 있어 그 기적을 자주 발견하면 생이 풍요로워진다. 나 먼저 간다.” “네?” “안산 단골 중국집 자장면이 먹고 싶어 택시 불렀다.”

순간 일산에서 안산까지의 거리 사이에 바로 놓이는 자장면 한 그릇. 그날 이후 나는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단어보다 그 맛을 찾아가는 일의 ‘기적’이라는 단어에 더 쏠려왔던 듯싶다. ‘당연함’이라는 단어에 안대를 씌우고 둘러보니 글쎄, 세상사 기적 아닌 일이 없었다. 무사고 운전으로 여든여덟이 되셨다는 할아버지 택시 기사님을 만나 살아오신 얘기를 들은 것도 기적, 계명대에서 동대구역까지 가는 길에 올라탔던 택시 안에 놓고 내린 휴대폰을 기사님이 뽁뽁이에 꼭꼭 싸서 우체국 택배로 파주까지 부쳐주신 일도 기적, 술에 취해 오른 택시 안에서 구토가 계속되는 가운데 편의점에 들러 검은 비닐봉지 일곱개와 물티슈를 사서 뒤에 앉은 내게 넘겨주던 기사님의 손이야말로 진짜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

꽃이 피었다 지는 일처럼, 연두이던 나뭇잎이 갈색이 되는 일처럼, 아침에 밤이 오고 밤에 아침이 오는 일처럼, 기적은 기적이라 말하고 기적이라 부르는 즉시 기적이 되어버리는구나. 그러고 보면 세상에 기적 아닌 일이 없구나. 기적의 축적은 기적의 기쁨으로 날 풍요롭게 하겠구나.

며칠 전 파주에서 연희동을 가는데 한참을 졸다 깨보니 허거덕, 요금에 글쎄 0이라는 숫자가 박혀 있는 것이었다. “기사님 지금 금액이 0인데요.” 생각보다 흔히 있는 경험인데다 그간 기사님과 빚곤 했던 요금의 언쟁이 떠올라 내 양미간은 이미 찌푸려져 있는 상태였다. “어머 내가 간만에 장거리 뛴다고 흥분했나 보네요. 알아서 주시는 대로 받을게요.” 내게 가장 어렵고도 무시무시한 말 가운데 하나인 ‘알아서’. 내게 온전히 책임을 지우는 말 가운데 하나인 ‘알아서’. 나는 카카오택시의 탑승 이력을 뒤지기 시작했다. “기사님, 몇월 며칠 몇시에 얼마 나왔고 몇월 며칠엔 얼마 나왔는데요.” 나는 11월 한달 동안 기록된 네번의 이력과 금액을 불러드렸다. “안 누른 건 제 실수니까요, 제 책임이라니까요, 손님.” 기사님의 껄껄 웃음에 나는 도합 네번의 요금을 더하고 4로 나누었다. “평균 3만70원쯤 나오는데요.” “3만원만 주세요. 70원 깎아드릴게요.” 이쯤 하면 휴대폰에 계산기가 깔려 있는 것도 또 하나의 기적이 아닐까.

시인

[신뢰도 1위 ‘한겨레’ 네이버 메인 추가]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