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교환대는 왜 여자화장실에 더 많을까

김유태 2018. 11. 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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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 / 캐스린 H 앤서니 지음 / 이재경 옮김 / 반니 펴냄 / 1만9800원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화장실의 불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정치깡패와 무족보 검사는 민망한 결탁을 이룬다. [사진 제공 = 쇼박스]
영화 한 장면에서 출발해 보자. "후레쉬(fresh)한 참이슬"을 외치며 변기에 앉아 거사를 치르는 정치깡패 안상구의 거뭇한 실루엣을 노려보며, 무족보 검사 우장훈이 입술을 꽉 깨문다. 화장실 간이벽이 불투명 유리라니, 민망하기로는 피차일반이다. 곤룡포 입고 궁녀 앞에서 쩔쩔매던 매화틀(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보다도, 변(便) 보려다 지뢰 밟는 변(變)을 당한 갈대숲(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보다도 '변사마(이병헌)'의 저 점잖은 자세는 식겁할 화장실이 낳은 희대의 포즈일 터. 하지만 관객석에서 책의 저자가 안상구를 마주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안상구 무죄, 모텔 주인 유죄.'

서두부터 잠시 옆길로 샜지만, 웃자고만 하는 얘기는 아니다.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면 당혹스러운 설계가 영원한 고민을 안겨주는 때가 잦다. 인생의 물리적 배경으로만 보였던 공간과 사물은 사실 정신적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이를 고착화한다. 디자인에 얽힌 불편과 위험을 고발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은 건축학자인 저자는,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설계자를 폭로해 유죄 선고를 내린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지는 않다. 내심 낄낄대다 자못 진지해지는 이 책은 단권으로 꿰맨 '즐거운 시비'다.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독자는 공간과 사물을 보는 관점이 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캡슐 세제부터 공공기관 화장실, 스탠드형 TV, 이케아 말름 서랍장, 스틸레토 힐, 심지어 끈팬티와 런던 지하철 튜브를 단두대에 올린 저자는 공간과 사물의 디자인을 해부하며 무참하게 난도질한다. 무작위하게 고른 듯해도 이들을 하나로 엮어버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편견'이다. 디자인은 편견을 재생산한다. 편견은 불평등을 야기한다. 불평등은 소수자의 정신을 핍박한다. 이쯤에서 편견의 기준을 가르는 세 가지 단어가 등장하는데, 거칠지만 재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젠더, 연령, 체형이 바로 그것이다. 편견의 디자인이 우리 삶을 어떤 기형으로 빚어냈다는 얘기일까.

우선 젠더 불균형을 야기하는 디자인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여성용 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한 법을 1887년 통과시킨 이래 130년간 세계 화장실은 편견의 도가니였다. 나라를 불문하고 여성용 화장실의 줄이 더 길고, 기저귀 교환대도 유독 여성용 화장실에 더 많다. 남아용 소변기는 서서 일을 보지만 여아용 양변기는 누군가 번쩍 들어 앉혀줘야 하니 유년의 여아마저 의존적 성향을 체화한다. 남성이라고 고충이 없을까. 고작 두 뼘 떨어진 거리에서 극히 사적인 부위를 열어야 하니 '크기'에 대한 집착은 무릇 소변기 때문은 아닐까. 공간이 초래한 성별 편견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해진다.

다음은 연령을 고려하지 않는 디자인이다. 엄연히 소비자임에도 노인은 디자인에 대한 발언권이 없다. 노인은 하찮은 취급을 받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악력 약한 노인에게는 탄산음료 캔 뚜껑도 쉽지 않은 숙제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를 조심하시오(Mind the Gap)'란 안내 방송부터 떠오르는 런던 지하철 튜브는, 애초에 노인의 신체능력 따윈 배려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3600만점이 리콜된 이케아 말름 서랍장이 쓰려져 2015년 어린이 2명이 숨졌다. 심지어 스탠드형 TV가 쓰려져 사망한 미국 아동은 13년간 360명이었다. 연령을 도외시한 편견 앞에서 인간은 비극이 된다.

끝으로 신체를 획일화하는 디자인이다. 장신이든 단신이든, 뚱뚱하든 말랐든 남성에게 허락된 넥타이 치수는 한 가지다. 빅사이즈 승객에게 이코노미석은 불친절한 하늘이다. 왼손잡이가 겪는 비형평성은 지구상 모든 펜을 동원해도 모자랄 것이다. 디자인은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도 가뿐히 건너뛴다. 미국에서 발목에 엄청난 압력을 주는 하이힐로 인한 응급실 내원 건수는 10년간 두 배로 늘었다. 유방암 검진 때마다 여성들은 이른바 가슴을 상하로 짓누르는 '압착 고문 기계'에 눈물을 쏟는다. 체형을 통일하고 고통에 관대한 디자인 탓에 인간은 객체로 전락한다.

혁명의 목적은 자유의 확립이고 반란의 목적은 해방이라고 한나 아렌트가 썼던가. 공간은 이데올로기와 동떨어진 사물이 아니며 언제나 정치적이었다고 앙리 르페브르는 말했던가. 두 철학자의 문장을 빌려 표현하자면 '디자인의 배신'을 폭로하는 건 정치적 혁명이며 이데올로기적 반란이다. 공간과 사물이 겹치는 지점의 가혹한 설계에 대해 저자는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쳐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잠깐 서두로 돌아간다면, 우 검사도 안 사장의 실루엣에 성질을 낼 필요는 없다. 러브모텔의 안상구는 죄가 없으니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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