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이후'에야 비로소 남자도 제자리를 찾고 있어요
<한국, 남자> 펴낸 최태섭 작가
학교·또래 등 '집단'에 불편해하며
혼자 게임 몰두하다 인터넷에 관심
온라인에서 과잉 대표되는 남성과
그들 언어·논리체계 주목한 연구자
조선 후기부터 분석한 '한국 남자'
권력에 휘둘리며 국가·군대에 동원
식민통치부터 신자유주의 시대 건너며
가부장 지위 흔들리자 '억울함' 쌓여 한국,>
[한겨레]
일본의 현대미술가이자 소설가인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나라는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거울 보기를 불편해하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나 자신 같지만, 다른 사람이다. 나 자신은 이쪽에만 있다.”
그는 ‘거울에 비친 사람은 자신이지만 그 자신이라는 사람이 나를 보는 게 싫다’고 말하며 이런 내가 이상하냐고 묻는다. 의심할 나위 없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의 내가 거울 속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걸레’라고 불린 나, ‘창녀’라고 불리던 나였다. 어떤 연애를 하면서 나는 당시 상대에게 툭하면 걸레 혹은 창녀라는 소리를 들었다. 공연 전 무대용 메이크업을 한 김에 찍은 셀카를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고 창녀가 됐고, 어느 모임에서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걸레가 되었다. 연애로 묶인 관계를 벗어나서도 내가 아닌 나는 빈번하게 거울 속에 있었다. ‘된장녀’라고 불리는 내가 있기도 했고 ‘김치녀’라고 불리는 나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운전을 하게 된다면 거울 속에서 ‘김여사’를 볼 수도 있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거울 속에 ‘맘충’이 있을까 봐 매일 노심초사할 것이다. 지금은 웃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당시 나는 나를 향해 너무 간단하게 쏟아지던 그런 무지막지한 호칭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매번 떨었다. 분노와 수치가 부른 오한이었으나, 그렇게 덜덜 떠는 중에도 내가 본의 아니게 빌미를 제공했을지 모른다며 거울 속의 나를 검열하느라 부지런을 떨었다. 생각해보면 그게 더 슬픈 일이었다.
어떤 단어가 있다. 2015년에 생겨 이제 3년차가 되었다. ‘된장녀’ ‘김치녀’ ‘메갈년’ ‘보슬아치’ 같은 숱한 여성 비하어의 ‘미러링’으로 등장했다. 현재는 한국 남성 전반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학 연구자 최태섭 작가(이하 호칭 생략)가 지난 10월 말 출간한 신간 제목은 <한국, 남자>다.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란 부제가 책 앞표지에서, ‘근현대사와 팩트를 토대로 분석한 한국 남자들의 기원과 현주소’란 문장이 뒤표지에서 책의 내용을 설명한다.
제목을 보면 자연스럽게 ‘문제의 단어’를 연상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논란을 타고났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지금-여기 젠더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남성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책 소개 기사들마다 악플이 주르륵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꼼꼼히 읽은 다음 가장 대표적인 반응 세가지를 뽑아 들고 그를 만났다(11월14일 한겨레신문사). 악플들이 그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악플의 질문들
① 여자라는 이유로 (여러) 의무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누리면서 군대 끌려가서 헌신한 사람들 군복무 가산점 주자니까 그걸 특혜라고 한다. 3디(D)업종 비율도 남성이 월등히 높은데 임금이 일대일이길 바라면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
“병역 의무를 남자에게만 부여한 주체는 여성이 아닙니다. 그걸 왜 여성들에게 따지는 건가요. 국가에 따져야 하죠. 만약 국가를 상대로 이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면 전 동참할 마음이 있습니다. 게다가 사병 월급 인상하거나 군 인권 개선하겠다고 하면 ‘그게 군대냐, 더 빡세게 굴리라’며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집단이 예비역들입니다. 군 처우 개선에 반대하면서 여성들에게는 군가산점으로 핏대를 세우고. 논리적이지 않지요. 요즘 공무원 시험 보시는 분이 얼마나 많은가요. 당연하게도 만점자도 상당할 텐데요. 그 상황에서 군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군대에 갈 수 없는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들에게도 차별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남성이 군대 다녀온 노고를 인정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3디업종에도 막상 따져보면 남성이 월등히 많지 않습니다. 공사 현장이나 건설업 같은 데는 남성이 많겠지만, 청소업체 같은 쪽으로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저임금의 노동을 하는 분들의 상당수가 여성입니다.”
②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현실이다. 남성들에게는 남성가족부도 없고 남성단체도 없다. 혜화역 시위처럼 사람을 모아서 남성 차별에 대해 낼 소리조차 없다.
“여성단체는요, 국가 지원을 일부 받는 곳들도 있겠지만 보통 회원들이 낸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저도 여가부에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여가부는 전체 장관급 부처 중에서 가장 예산이 적습니다. 이번에 ‘획기적으로’ 늘었다는데 전체 국가 예산 470조원 가운데 고작 1조원이에요. 그마저도 상당 부분이 가족 정책 쪽에 쓰이고 여성 정책에 사용되는 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남성들을 내버려두는 것도 아니잖아요. ‘남성부가 없어 불평등하다’는 식의 화법을 빌리자면 (한국 사회가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온 현실에 비춰 볼 때) 여가부 빼고 나머지는 다 남성부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혜화역 시위와 달리 남자들은 낼 소리조차 없다니요. 소리 내시지 않았습니까. ‘곰탕집 성추행 사건’(2017년 11월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한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실형 선고받음) 유죄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지난 10월27일)도 하셨잖아요.”
③ 남녀 갈등 조장하지 말라.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돕고 그래야지.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언제까지 싸우기만 할 거냐.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그러나 불평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 불평등을 무시하고 당장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다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부자들이 돈으로 갑질하고 차별하는 데 분노하듯이, 여성들이 받는 불평등한 차별에 문제제기하는 것입니다. 둘은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들에 담담하게 답하며 최태섭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댓글 반응들이 10년 전과 똑같아요.”
―10년 전요?
“욕먹은 지 좀 됐습니다.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2006년인데요. 제가 쓴 글 분량의 최소 다섯배의 악플이 달렸었죠. 어떤 사람은 저한테 ‘된장녀 자가진단 테스트’를 메일로 보내주기도 했어요.(웃음)”
2006년이면 그가 23살이었을 때다. 대학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여성학 수업에서 페미니즘 책들을 접한 그는 책 속의 말들이 다 맞는 이야기여서 남성으로서 반감이나 저항감이 없었다고 했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가장 여러번 읽은 책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이다.
―그 어려운 책을…. 저는 읽을 엄두도 못 내는 책인데요.
“너무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역자 강연에도 가고, 해설서도 샀어요. 때마침 대학원 수업에서 한 학기 동안 같이 읽자고 해서 연관 텍스트를 찾아가며 정말 열심히 읽었죠.”
―‘학생 최태섭’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꼬맹이 때는 말 많고 인사 잘하는 애였는데 학교는 싫어했어요. 초·중·고등학교 모두요. 꾸역꾸역 다 다녔지만 안 다닐 수 있다면 안 다니고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집단이 우선되는 공간을 불편해했던 것 같아요. 폭력을 겪을 때도 싫었고요. 중학교 때 술에 취한 남자 도덕 선생님이 죽도인지 목검인지를 들고 복도에 있는 모든 애를 영화에서처럼 때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술에 취한’이란 말과 ‘도덕 선생님’이라는 말이 이렇게 만날 수도 있네요.(웃음) 그럼 주로 뭘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혼자 놀았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동호회 찾아다니며 놀고. (어떤 동호회요?) 좀 부끄러운데요. 고등학교 때는 힙합. (힙합이 왜요? 저도 힙합 좋아했는데.) 동호회 활동 할 때는 공연도 했지만 20대 이후로는 끊었어요.(웃음)”
학창시절 최태섭은 게임에 몰두했다. 공부에도, 교복을 늘리고 줄이며 멋을 부리는 일에도, 교사들의 폭력적인 태도와 또래들의 과격한 집단성에도 염증을 느낀 그는 조용히 홀로 게임에 열중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잤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게임스쿨을 다니며 게임 제작을 배웠다. 자연스럽게 게임 개발자가 되겠지 생각했던 그의 미래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점수에 맞춰 간 대학에서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공부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신문방송학과로 갔는데 사회학을 복수전공 했어요. 생각보다 사회학이 적성에 맞더라고요.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까지 좀 열심히 다녔지요. 그런데 대학에서 가르치는 걸 열심히 배웠냐, 그건 아니고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책 읽고, 사람 만나면서 놀았어요. 주로 소속된 곳보다 소속 바깥으로 나도는 어떤 이상한 기질이 저한테 있나 봐요.”
“저도 남자로서 태생적 한계 있지만
남자란 무엇인가 스스로 고민
남성 현실 부정하려 쓴 책 아니라
남자가 억압해온 존재들 말하고자”
“남자들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지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어떻게 타인을 대해야 하는지를”
‘소속 밖’에서 해온 공부
최태섭은 1984년생이다. 30대 중반인 그는 벌써 단독 저서 4권과 공저 5권을 냈다.
―나이에 비해 책을 정말 많이 쓰셨어요.
“어느 날 친구가 한 청년단체 면접을 보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이거 연예인들 고정 레퍼토리 같은데요.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자기는 붙고.
“(웃음) 단체에 계신 분이 제가 예전에 쓴 칼럼을 보셨다는 거예요. 그 단체에 출판팀이 있어서 출간을 추진했는데 아쉽게도 책은 나오지 못했지만 계속 글을 쓸 기회를 얻게 됐어요.”
게임을 좋아하던 그가 남성성을 분석하는 연구자가 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임에 친숙했던 최태섭은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청년·인터넷 하위문화에 관심이 쏠렸고 그 공간에서 거리낌 없이 발산하는 남성들의 언어와 논리 체계에 주목하게 됐다. 잉여를 만들어내는 현대 사회의 구조를 잉여 스스로의 눈으로 통찰한 <잉여사회>(2013), 한국 남자의 남성성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분석한 <그런 남자는 없다>(2017), 세월호에서 미투까지 다양한 ‘억울함’을 기록한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2018)로 이어지는 작업들에서 그가 이 사회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이해하고 싶어 하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번 책 <한국, 남자>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제가 청년 이슈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열정노동과 잉여사회 문제를 다뤄왔는데요. 그때마다 이 문제들에서 남성이 과잉 대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성비를 보면 70% 이상이 남성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한국에서 주목받는 인터넷 커뮤니티들도 남성 위주 공간이고요. 여성 위주 커뮤니티가 없진 않지만 대체로 회원제에 폐쇄적 방식으로 운영되거든요. 그래서 언론이 인터넷 여론을 수렴한다고 했을 때 남성의 의견이 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큰 거죠. 청년들에 대한 담론도 거의 남자 청년들이 불쌍하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 이런 식이고요. 그런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한국 남자들의 ‘남성성’을 본격적으로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구 곳곳에서 부상하고 있는 ‘남자 문제’를 조망하며 여정을 시작하는 <한국, 남자>는 ‘보편자로서의 남자’가 아니라 ‘개별자로서의 남자’에 대한 이론적·학문적 검토들을 살핀다.
―보편자로서가 아니라 개별자로서의 남자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두 개념 사이에서 페미니즘의 구실이 있었다고요?
“성별로만 국한해 봤을 때 대체로 남자가 인간을 대표해왔어요. 말하자면 남자의 덕목이 곧 인간의 덕목이었던 거죠. 물론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은 여성의 몫으로 한정해왔고요. 그러다 페미니즘 이후 남자를 하나의 성별로 상대화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보편자의 위상을 누리던 남자를 개별자의 위치에서 볼 수 있게 된 거죠. 페미니즘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남자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별자로서 남성에 대한 검토를 거치고 나면 한국 남성의 억울한 연대기가 펼쳐진다. 그 시작을 위해 책은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별히 조선 후기부터 서술을 시작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남자 덕목들’의 역사가 길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성리학을 신봉하는 선비들이 그 시대 헤게모니를 쥔 남성이었는데요. 이들은 관직에 나가는 것만을 중시했고 가정사를 돌보지 않는 것을 양반 사대부의 미덕으로 여겼어요.”
당연하게도 살림은 부인들 몫이었다. 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수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 결국 이 시대의 생산과 재생산은 사대부가 아닌 남성 대부분과 여성, 그리고 하층민의 몫이었다.
이런 ‘억울함’의 구조는 근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좀 더 본격화된다. 한국 남성 대부분은 언제나 권력을 쥔 일부 다른 남성에게 휘둘리며 군대와 ‘국가를 위해’ 희생되거나 동원되었다. 식민통치,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신자유주의 시대를 건너며 한국 남성성을 대표해온 가부장성이 흔들리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한국 남성들이 가슴에 새겨온 말을 최태섭은 ‘남자가 피해자다’라고 요약한다.
―그 박탈감의 공격 대상이 억울함을 강요해온 구조가 아니라 여성을 향하는 이유는 뭘까요?
“지금은 ‘대의’가 없는 시대예요. 산업화든 민주화든 (남자의 위상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시대적 대의를 앞세울 수 없을 때, 그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내 생각이 현실과 다를 때, 사회 변화에 맞춰 내 인식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식에 맞게 사회를 조작하는 방식이죠. 가짜뉴스가 사실은 그런 거겠고요. 효능감의 문제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 등 상대적 약자를 자꾸 괴롭히게 되는 거예요. 약자를 괴롭히는 게 강자를 괴롭히는 것보다 효능감이 좋으니까. 한국의 경우 젠더 이슈 등에서 분출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인종 문제, 이민자 문제 등에서 터지고 있고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저도 아직은 뚜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요.”
한국 남자는 왜 억울한가
―책을 내면서 어느 정도 ‘각오’는 하셨을 텐데, 남성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진영의 비판도 있다고요?
“뭐 꼭 집어서 비판하시는 분은 아직 안 계셨고요. 에스엔에스에서 ‘한남이 페미니즘 훔쳐서 책 팔아먹지 말라’고 하시는 정도예요. ‘남자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매도를 당하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책 자체가 페미니즘을 연구하신 분들이나 페미니스트들한테는 새로운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부터도 그분들 연구 결과를 많이 참고했으니까요.”
―스스로 소위 ‘한남’에 속한다고 보시나요?
“태생적 한계가 있지요. 남성 집단 내부에서 문제가 있었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넘어간 적도 많았고요. 우선은 말 그대로 남자란 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책에도 썼지만, 특히 요즘에는 제가 남자라는 사실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제 존재 자체가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었고요. 저는 남성을 욕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에요. 한국 남성들의 현실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자기연민에 빠지기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을 억압해온 역사가 길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남성 위주 사회에서 자신도 수혜자라고 생각해보신 적은요?
“당연히 있죠.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런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비교적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제가 남성이기 때문일 거예요. 제 주위에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데도 발표하기 부담스러워하시는 여성분들이 많아요. 제게는 악플이지만 그분들한테는 신변의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나 혼자 착한 남자가 되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고 결론에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들이 변해서 좀 더 조심하고 주의하고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남자들도 구조적 현실에 계속 문제제기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관점으로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남성들의 ‘행동’이 적극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세요?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죠. 세계적 추세잖아요. 남성들의 반페미니즘적 행동이 극우정치와 결합해 정권 차원으로 승인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협력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들이든, 정책 담당자든, 변화에 동의하는 남성들이든, 서로 힘을 모으도록 만들고 그럴 수밖에 없게 해야죠. 지금은 그 방법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 책을 쓴 것이고요.”
―책의 한계도 스스로 밝혀주셨는데요.
“이 책은 분명 반쪽짜리죠. 남성을 똑바로 보려면 여성도 제대로 봐야 하는데, 여성의 이야기가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왜곡된 남성성과 계속 싸워온 남자들도 있잖아요.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저항을 실천했던 남성들이 있었고, 그들이 변화의 흐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실을 부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어요. 가족 문제, 가족 안에서 아들의 문제, 섹슈얼리티 문제 등도 현실에 접근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하는데 거의 못 다뤘어요. 여건이 된다면 후속 연구를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여쭤볼게요. 남성성을 분석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때, 한국 남자 최태섭은 어떤 남자인가요? 어떤 남자가 되고 싶으세요?
“한국에 잘 안 맞는 남자죠.(웃음) 안 맞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남자. 20대 때는 남성성 자체를 거부했어요. 옷도 가능하면 ‘젠더리스적’으로 입으려고 노력할 만큼요. 그래도 책임감이나 의리는 나쁜 게 아니잖아요. 남성의 덕목만은 아닌데도 남성의 덕목들로 강조되어왔지만 그 자체로는 좋은 거잖아요. 이런 것들은 남성성이 아니라 인간의 덕목으로서 말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남자들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남성성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누가 강요하는 것인지를요. 진정한 남자, 진정한 여자, 이런 것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타인을 대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굳이 남자라는 타이틀을 지키려 여자와 싸우지 말고요.”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크고 작은 젠더 이슈가 매일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세상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11월20일)도 어떤 래퍼의 노래가 성차별 논란에 올라 있다.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이 시작된다는 기사도 있었다. 지난 9월 ‘에이핑크’ 윤보미와 국외 촬영 중 숙소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배우 신세경이 제작발표회에서 ‘절대 선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기사도 읽었다. 아마도 나는 이런 기사들을 내일도 모레도 읽게 될 텐데, 그때마다 <한국, 남자>의 한 부분을 떠올릴 것 같다.
“이런 작업들이 필요한 이유는 먼저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해는 타협을 위해서도 싸움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선행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구성하는 핵심과 취약점들에 대한 인식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화목해야 하며, 동시에 다투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태섭을 만든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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