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정PD가 식당을 열었다고?', 'KBS 키친스튜디오'의 食食한 도전[비즈엔터①]

이지석 2018. 11.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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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서울 영등포 여의도동 KBS 신관 옆 누리동 2층에 신기한 공간이 생겼다. ‘KBS 쿠킹스튜디오’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이 곳이 어떤 공간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가게 전면 통유리를 통해 살펴보면 카페 같기도 하고, 식당 같기도 한데 방송국 공개 스튜디오의 느낌도 받게 된다. 사실 이 모든 역할을 모두 하는 공간이 맞다. 이 곳은 카페이면서 식당이고, KBS 각종 제작발표회 및 촬영이 진행되기도 하고, 앞으로 음식 관련 이벤트나 각종 문화·예술 이벤트가 진행될 곳이기도 하다.

이 신기한 다목적 공간을 이끄는 이는 KBS ‘요리인류’ 브랜드, 음식·요리 문화 관련 시사교양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이욱정 프로듀서(PD)다. 그는 KBS를 퇴사하고 식당 운영에 나섰다는 오해도 받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새로운 시도를 원하는 KBS가 이욱정 PD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의기투합해 만든, 식당을 겸한 다목적 공간이 바로 ‘KBS 쿠킹스튜디오’다.

이 곳의 대표이자 셰프인 이욱정PD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입던 청바지로 특별제작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KBS 쿠킹스튜디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지난 2017년 사내 벤처를 도입하는 공모에 응모해 1위를 차지한 프로젝트다. ‘주식회사 KBS요리인류’는 기존 사내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제작팀이 만든 특수목적법인으로 KBS가 100% 투자한 회사다.

내가 공모 때 낸 제안은 ‘씨어터 키친’ 즉 ‘극장 같은 주방’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식당이면서 촬영장인 곳,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다목적 식문화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취지다.

지금까지 방송국 스튜디오는 촬영 만을 위한 세트였다. 요리 프로그램도 이런 세트에서 촬영됐다. 지금 시청자들은 자신이 TV나 인터넷에서 봤던 그 주방에 가서, 그 프로그램에 나온 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는 욕망, 니즈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종의 ‘체험형 식당’을 열게 됐다.

TV는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다. 일방적인 컨텐츠 전달만 해서는 안된다. 방송국 내에 이런 공간을 만듦으로써 시청자에게 방송국의 문턱이 높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곳에 오면 요리 프로그램에 나왔던 레시피로 만든 음식을 먹고, 해당 프로그램 프로듀서, 출연진을 만날 기회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KBS 쿠킹스튜디오’라는 공간이 셰프 등 요리하는 사람 뿐 아니라 요리를 공부하는 사람, 음식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 더 나아가 농부·어부 등 생산자들, 식기를 만드는 도예가 등 ‘식(食)’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아지트가 됐으면 좋겠다. 그게 이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의 기대이자 목표다.

사실 파격적인 공간이다. 내가 알기로 전세계 어떤 방송국 안에서도 이런 공간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레스토랑’이 아니라고 ‘스튜디오’라고 명명했다. 간판 만 봐선 어떤 공간인지 헷갈린다.

이름은 ‘쿠킹 스튜디오’지만 실은 식당이다. 식당인데 음식 뿐 아니라 컨텐츠까지 제공하는 장소가 되고 싶은 것이다. 방송국 안에 있으니 촬영장이라고 오해하는 분이 있는데 전국민에게 개방돼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밥을 사먹으러 올 수 있다.

-방송사 내 구내식당과는 다른가.

구내 식당은 말 그대로 직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여기는 식사 뿐 아니라 스토리와 컨텐츠를 즐기는 자리, 공간이 될 것이다. 식문화에 대한 강연, 요리 시연, 마스터 클래스. 갈라 디너 등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식사에 술을 곁들이며 음악, 미술 등 예술과 인문학 관련 강연을 듣는다거나 출판사와 연계해 신간 저자와 차나 술을 마시며 만남의 자리를 갖는 이벤트도 기획 중이다.

-언제 오픈하나.

11월 중순부터 프리오픈 상태다. 현재도 점심 식사 영업은 하고 있다. 저녁에는 이미 여러 이벤트를 시도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저녁에 ‘치맥(치킨+맥주)데이’도 시작했다. 지난 21일 오후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기념하는 한정판 버거를 먹으며 퀸과 프레디 머큐리 영상을 함께 보는 이벤트를 열었다.

현재 가구를 임시로 들여와 100% 세팅이 된 단계는 아니지만 식당을 이용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지금은 방송 용어로 보면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 기간이다. 버거, 각종 덮밥과 면 등을 내놓고 있는데 반응을 봐서 메뉴도 교체하고, 서비스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저녁 영업은 12월 1일부터 본격 진행하는데, 일단 연말까지 일주일에 두번씩 중요한 이벤트가 열린다. ‘더굿셰프’라는 이벤트인데 우리나라 유명셰프가 준비한 6~7코스 디너를 먹으며, 그들을 주제로 우리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는 시간이다. 예전 호텔의 ‘갈라 디너’는 셰프가 만드는 음식만 먹는 자리였다면 우리가 준비한 ‘더굿셰프’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그 셰프의 음식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깊이 있게 다가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토크쇼도 진행된다. 국내 최고 셰프들이 참여하는데 디너 이벤트 티켓 600매가 열흘만에 다팔렸다. 수익금은 내가 진행하는 브랜드 ‘요리인류’ 다큐멘터리 제작비에 보태게 된다. 그런데 수익은 별로 안남을 거 같다.(웃음)

우리 요리인류 팀이 촬영하고, 제작 중인 ‘더굿셰프’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추후 인터넷 등에 공개할 예정이다.

-식당 메뉴 선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요리도 직접 하나.

‘PD가 직접 요리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렇지 않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 온 손님이 유명 셰프에게 ‘내가 지금 먹은 요리를 당신이 직접 만들었는가?’라고 물으니 그 셰프가 ‘당신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수트를 입을 때 아르마니가 직접 재봉질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는 내용이다.

내가 메뉴를 디자인하고, 레시피를 짜는 건 맞는데 매일매일 요리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물론 특별한 디너 등 이벤트를 선보일 때는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식당에서의 내 역할은 방송 프로그램 총괄PD와도 닮아있다. PD는 촬영 현장에서 제일 노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든 걸 보고 있어야 하고, 모든 것에 관여해야 한다.

이 식당은 메뉴를 계속 변화시키는 것도 생각 중이다. 방송국 프로그램 개편 때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인기 프로그램은 남겨두듯,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며 변화무쌍, 자유분방하게 키친을 운영할 생각이다.

-이욱정 PD는 KBS PD인데, 이제는 식당 운영까지 직접 한다. 원래 공영방송 PD가 이렇게 자유로운 직업인가.

‘아직 KBS에 다니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웃음) 사내벤처 공모를 통해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KBS에 고마운 마음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내가 도전할 수 있게 해줬다. KBS가 음식문화, 한식에 관심을 갖고 배려해주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램 제작’과 식당 운영은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반 식당 운영은 내가 잘 할 수도 없고 굳이 내가 할 필요도 없고, 잘하는 사람도 많다. 요리하는 PD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F&B(식음료) 공간, 새로운 식(食)문화 체험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엄청난 자본을 앞세워 대형 쇼핑몰이나 푸드코트에 입점하는 게 아니라 적은 자본을 들여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을 공영방송국 안에 마련해보자고 생각했기에 이런 시도가 가능했다.

지금 ‘KBS 쿠킹스튜디오’는 KBS 건물에 보증금을 내진 않지만 월세는 낸다. 꽤 비싸다. 그래서 많이 힘들다.(웃음) 나는 음식 프로그램을 만들어오며 요리사, 식당 주인, 운영자를 많이 만나기 때문에 식당 운영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데 프로듀서로서 프로그램 하나를 히트시키는 것보다 식당 하나 성공시키는 게 훨씬 어려운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식당 운영은 종합 예술이다. 서비스와 음식 품질을 365일 동안, 그것도 20~30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영화나 음악,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듀서는 ‘대박’을 냈다가 실패도 경험하는 등 기복이 있을 수 있는데 식당 운영에선 그런 기복이 용납이 안된다. 그런 점이 힘들 것이란 걸 알았지만 한번 해볼만한 도전이라 생각해 시도하게 됐다.
-프로그램 제작과 식당 운영의 시너지 효과는.

지난 5년간 ‘요리인류 제작팀’이 만든 음식 문화 요리 관련 콘텐츠는 다큐멘터리 25편, 매일 방영되는 ‘자연 담은 한끼’, ‘이욱정PD의 요리인류 키친’, UHD 방송에서 만든 한식 시리즈 등 약 200여편에 이른다.

‘요리인류 제작팀’이 만들어온 콘텐츠 제작을 한 쪽 날개로 두고, 방송 콘텐츠를 실제 공간에서 구현해 내는 일종의 레스토랑을 다른 날개로 둬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과 식당 운영,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게 가능한가.

당분간은 식당 운영에 시간을 오롯이 쓸 것이다. 원래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자주 옮겨다니는 편인데 스튜디오 프리오픈 기간 동안 붙박이로 붙어있다. 딴 건 몰라도 끼니는 제때 먹어야 하는데 그게 안돼 좀 힘들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셰프나 식당 경영자를 세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맛없는 음식을 비싸게 팔면 ‘범죄자’. 맛있는 음식을 만인이 사먹을 수 있게 합리적인 가격에 팔면 ‘성자’, 맛있는 음식을 비싸게 팔거나, 맛없는 음식을 싸게 팔면 ‘사업가’로 본다. 이 일을 시작했으니 최소한 ‘범죄자’ 부류에선 벗어나고 싶다. ‘성자’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새삼 오래된 식당, 내가 즐겨찾는 식당의 요리사, 경영자에게 존경심이 든다.

-프리오픈 기간이지만 아직 홍보가 덜 된 것 같다.

식당은 약 284㎡(86평) 규모이고, 직원은 아르바이트생까지 11명이다. 처음 식당을 오픈한 사람 치고는 큰 규모다. KBS 사내 벤처이기에 가능하다. 원래 이 규모로 시작하면 망하기 쉽다.(웃음) 아직 홍보가 안돼 KBS 직원 일부만 이용중이다. 이 공간 존재 자체를 사람들이 모르니까. 여의도의 ‘핫플레이스 맛집’이 됐으면 좋겠다. 여의도 부근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 방송국에 와서 식사를 즐기며 술 한잔 곁들이는 경험을 하고픈 분들이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

홍보를 위한 여러 계획도 생각은 하고 있다. 최근 포털사이트와 아이돌 요리쇼를 진행했는데 뉴이스트W와 함께 도시락을 만드는 이벤트를 열었다. 인터넷으로 500만뷰가 나왔다. 뉴이스트W와 정이 많이 들었는데, 혹시 이 기사를 보게 되면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KBS ‘뮤직뱅크’에 출연할 때 한번 방문해달라.(웃음) 만약 ‘뮤직뱅크’ 1위를 하면 내가 한번 쏘겠다. 다른 가수나 연예인도 많이 방문해줬으면 좋겠다.(웃음)

-사업적 비전은.

아직 일주일 밖에 안돼서...(웃음) 그런데 모델 자체가 흥미로워서인지 벌써 투자하겠다는 제안도 받고 있다.

나는 서울시와 함께 하는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이란 프로젝트의 총괄 프로듀서도 맡고 있다. 버려진 공간, 낙후된 지역에 음식을 통해 다시 생명을 불어 일으키는 게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이다. 지금 시작한 ‘KBS 쿠킹 스튜디오’는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의 모델하우스라는 생각도 한다. 두 프로젝트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내가 해온 콘텐츠 제작과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 사이 가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 이 ‘쿠킹스튜디오’라고 생각한다.

monami153@sportsseoul.com

<KBS 쿠킹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이욱정PD. 사진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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