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중국서 진통제를 주문하면, 치킨보다 빨리 온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2018. 11. 19. 03: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보는 창 NOW] 중국, 30분만에 의약품 배달

3㎡ 정도 넓이의 '무인 진찰실'에서 혈압과 체온을 재고 영상의 인공지능(AI) 닥터에 증상을 얘기한다. 잠시 뒤 이를 기초로 원격지 의사가 추가 질문을 건넨 뒤 복용 약을 추천한다. 상비약 100여 종이 구비된 옆의 자판기에서 약을 구매한다. 없는 약은 휴대폰 앱을 켜 주문하면 집으로 1시간 내 배송된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미래 얘기가 아니다. 세계인터넷대회가 매년 열리는 중국 장쑤성 자싱시 우전에 지난 6일 등장한 '1분 진료소'다. 중국 최대 민영기업이자 보험 회사인 핑안보험 계열 인터넷 헬스 기업 핑안하오이성이 올해 세계인터넷대회 개막 전날 설치했다. AI 진단, 원격 의료, 온라인 주문 배송, 약 자판기를 결합한 무인 진찰실을 설치했는데, 1주일 만에 100여 명이 이용했다. 핑안하오이성은 연말까지 기업은 물론 아파트, 쇼핑몰, 학교, 관광지,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에 1000여 대를 깔 계획이다. 싱예은행 차이나텔레콤 등에서도 직원과 고객들을 위해 이 시스템을 이용 중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계열 알리헬스는 하루 24시간 의약품 빠른 배송 서비스를 8월 항저우에 이어 10월 베이징 광저우 선전으로 확대했다. 음식 배달 업체로 유명한 알리바바 계열 어러머와 손잡고 오전 9시부터 22시까지는 30분, 나머지 시간은 1시간 배송을 약속하고 이를 못 지키면 배상해준다. 상하이 충칭 등 20여 도시 약국에선 1시간 내 배송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휴대폰의 타오바오 앱을 켠 뒤 '지융야오(急用藥)'를 검색어로 치면 온라인 진찰을 받고 이용할 수 있다.

◇전국 어디서나 1시간 내 의약품 택배 중국 의약품 시장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고 빠른 배송을 내세우는 신유통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의약품 소매유통 시장은 전년보다 9% 늘어난 4003억위안(약 64조8486억원)에 달했다. 중국 전체 의약품 시장의 19.9%로 45만개 약국이 경쟁하는 소매유통 시장에 보험사,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연중무휴 하루 24시간' '빠른 진찰'과 '빠른 배송'을 내세우며 판을 흔드는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당초 약국 24시간 운영이 의무였지만 2012년 이 규제를 푼 데다 인건비 증가로 24시간 서비스 약국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런데 기술 혁신이 이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라면 기득권의 반발과 규제에 막혀 '불법 의료 영업'으로 찍힐 '혁신'이 꽃피고 있는 것이다.

1분 진료소 - 지난 6일 중국 장쑤성 자싱시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에서 공개된 ‘1분 진료소’에서 참관객이 원격 진료를 받고 있다. 1분 진료소는 AI(인공지능) 진단, 원격 의료, 약 자판기 등이 결합된 무인 진찰실로 중국 최대 민영 보험사인 핑안보험 계열의 인터넷 헬스 기업 핑안하오이성이 개발했다. /신화통신

의약품 소매유통 배송 전쟁을 주도하는 곳은 어러머다. 어러머는 지난해 자체 앱에서 개설한 의료 건강 코너를 통해 500여 도시 1000만 가입자에게 의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판기를 통한 빠른 배송 체제도 구축 중이다. 어러머는 지난 7월부터 베이징과 상하이에 자판기를 설치하고 날씨와 시간대별로 배송비 4~12위안을 받고 24시간 의약 배송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택배원이 주문받은 약을 인근 자판기에서 빼내 배달한다. 어러머는 체인 약국과 협력해 자판기를 올해 말까지 1만여 대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온라인 결제 업체들도 새 수요처 발굴 차원에서 의약 소매유통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알리바바 계열 앤트파이낸셜의 알리페이가 지난 4월 정저우, 텐센트의 위챗페이가 7월 광저우에 현지 체인 약국과 손잡고 스마트약국 문을 열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알리페이의 '미래약국'은 얼굴로 신분 확인과 결제가 가능하고, 자판기도 구비돼 있고, 온라인으로 약사와 의사 문진이 가능하다. 반경 3㎞ 이내, 30분 배송 서비스도 제공한다. 중국 신유통 원조로 불리는 알리바바 계열 신선식품 유통 매장 허마센성이 내건 서비스와 같다. 지난 11월 충칭에도 완허의약과 협력한 알리페이 미래약국이 등장했다. 앤트파이낸셜은 연말까지 미래약국을 200여 곳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다선린 체인 약국과 손잡은 텐센트는 지난해 중국 정부로부터 AI 의료 시범 기업으로 지정될 만큼 이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의료계도 의약 유통 혁신에 동참

알리바바의 스마트약국 -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 계열의 알리페이가 최근 중국 현지 약국과 손잡고 문을 연 스마트약국 ‘미래약국’의 모습. 미래약국에서는 얼굴로 신분 확인과 결제가 가능하고 온라인으로 약사와 의사의 문진이 가능하다. 30분 배송 서비스도 제공한다. /알리페이 제공

중국 의료계도 의약 유통 혁신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원격 의료와 의약 배송 등을 위해 병원 3100여 곳, 건강검진 기구 2000여 대, 약국 1만여 곳, 기층 진료소 6만여 곳이 핑안하오이성과 손을 잡았다. 핑안하오이성이 자체 확보한 의료진만 1000명이고, 자문 계약을 맺은 의사는 5000여 명에 달한다. 알리헬스가 2016년 5월 결성한 중국 의약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선봉연맹은 65개 체인 약국 업체로 시작했지만 10월 말 기준 200여 업체로 늘었다. 이 업체들의 가맹 약국만 3만여 곳에 이른다.

약국 스스로 배송 서비스에 나서기도 한다. 청두에 거점을 둔 취앤위앤탕 대약방은 올해 현지 약국 40여 곳을 스마트 약국으로 개조하고, 반경 3㎞ 이내, 연중무휴 30분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사 약사단이 온라인 문진(問診)도 해준다. 천저우화 취앤위앤탕 최고경영자(CEO)는 "청두에서의 경험을 상하이, 광저우, 충칭, 시안으로 확산시켜 스마트 약국 1000여 곳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규제 완화로 혁신 유도 중국 의약품 유통시장에서 혁신 바람이 부는 것은 규제 완화가 이뤄진 덕이 크다. 의약 자판기는 2002년 상하이에서 처음 등장한 뒤 실용성 등을 이유로 존재감을 잃었지만 AI와 택배 시장이 발전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온라인 의약 판매는 2005년 베이징에서 첫선을 보였다. 1997년 해방군총의원에서 병원 간 원격 진료가 처음 허용됐고, 2014년엔 광둥성 제2 인민의원이 처음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를 시행해 혁신의 기초를 만들었다. 특히 지난해엔 AI 문진 프로그램을 의료 기기로 허가했다. 편의점 등 약국 외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비약이 20종을 넘지 못하게 돼 있고, 온라인 판매도 불허되고,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의료는 2000년 첫 시범 사업 이후 19년째 제자리를 맴도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행보이다.

중국은 의약 유통 혁신이 서민 삶의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2016년 교통 체증과 병원에서의 줄 서기를 포함해 중국에서 환자들이 매 차례 병원을 이용하는 데 평균 3시간이 소요되지만 실제 진찰 시간은 8분에 불과하다. 올 4월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이 의료 기구의 처방 정보와 약품 유통 소비 정보를 연계하고 온라인 약품 유통과 물류 배송 발전 등을 담은 인터넷+의료 건강 발전 촉진 의견을 내놓은 배경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