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수능 9등급, 지방대 출신인 無스펙 '힘콩'.. 맨몸에 노력 하나로 별이 됐다

김은중 기자 2018. 11.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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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어트 대표 유석종
‘힘콩’ 유석종 재미어트 대표는 맨몸 하나로 ‘별’이 됐다. “국민 모두가 우리의 운동 프로그램으로 재미어트(재미있게 다이어트)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수능 9등급. 배치표상에 갈 수 있는 대학은 없었다. 재수(再修)해서 간 지방대. 속된말로 '쪽팔렸다'. 수업도 빠지고 PC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돈과 시간을 축냈다. "아껴 쓰라"는 부모님 잔소리에 화가 나서 엄마가 하던 시장의 채소 가게로 달려갔다. 엄마가 손님으로부터 아파트 B동의 'B' 자도 모른다고 무시당하는 걸 봤다. 손님과 한바탕하고 나니 엄마는 말했다. "이제 돈이 필요하면 군말 없이 다 보내주겠다. 다만 앞으로 시장에는 절대 나오지 마라. 무 하나, 배추 한 포기 팔아 100원, 200원 남겨가며 키우고 대학 보냈는데 손님 끊어지면 어떡하라는 거냐." 자신이 너무 '쓰레기' 같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해병대에 자원했다. 그마저도 고등학교 때의 잦은 조퇴와 결석 때문에 삼수해야 했다.

바야흐로 '크리에이터'들의 시대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플랫폼의 파도에 올라탄 이들은 연예인 뺨치는 인기, 제도권 미디어 부럽지 않은 영향력을 누린다. 이 세계가 매력적인 건 '계급장'을 떼고 벌이는 한판 대결이기 때문. 스펙 한 줄보다, 이목(耳目)을 사로잡을 말솜씨와 콘텐츠만 있다면 누구나 스타덤에 오를 수 있다.

이 무(無)스펙의 30대 청년도 맨몸 하나로 '별'이 됐다. 아이템은 운동. 지난 5년간 열 손가락 마디 모두에 굳은살 박이도록 열심히 철봉에 매달렸다. 하루 1~2개씩 그동안 만들어낸 콘텐츠가 총 2200여개. 그의 영상을 보는 시청자는 페이스북 56만, 유튜브 21만, 인스타그램 12만. 일부 겹치는 숫자를 감안해도 그의 '신도'는 수십 만을 아우른다. 화제의 헬스 콘텐츠 크리에이터 유석종(31) 재미어트 대표를 지난 5일 인천 청라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이어트 말고 '재미어트'

'힘콩'의 친절한 운동 영상은 chosun.com에서

100만에 육박하는 시청자들은 '식구'라 불린다. 운동 콘텐츠를 올리면 호형호제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주요 시청자층은 10대에서 30대까지. 친근감 있게 소통하며 다가간 것이 주효했다."

―'재미어트'는 무슨 뜻인가.

"다이어트는 죽을 만큼(die), 헬스는 지옥만큼(hell) 힘들다. 특히 혼자 하는 운동은 더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다이어트도 재미있게 해보자는 뜻에서 '재미어트'란 이름을 지었다. 클럽의 디제이(DJ)를 생각하면 쉽다. 춤을 못 추는 사람도 클럽에 가면 분위기 때문에 고개도 흔들고 스텝도 밟는다. 우리는 그 분위기를 만드는 걸 고민한다. 그래서 때론 개그도 하고, 망가지기도 한다."

―'힘콩'이란 예명으로 더 유명하다.

"귀에 착 감기는 닉네임을 짓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다. 한 회원이 내가 원숭이를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힘센 킹콩'을 줄여 '힘콩'이란 이름을 만들었고, 곧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사람들이 유석종 이름 석 자는 몰라도, 힘콩은 안다."

―운동 콘텐츠는 원래도 많았는데.

"10년 전에도 몸짱 트레이너들의 운동 영상은 있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보고서 직접 따라 하기엔 부담스러웠다. 너무나도 완벽한 그들의 몸매에 기가 죽어 자괴감이 생길 정도더라. 외국 영상 수천 개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했다. 전문성은 조금 떨어져도,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따라 할 수 있는 영상을 찍기로 했다. 재미어트는 힘들면 힘든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표현을 해준다. 운동은 멋있게 하는 게 아니라, 얼굴 찡그리고 땀 흘리면서 힘들게 해야 하는 거니까."

철없던 지방대생, 청년 사업가로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나.

"체대를 나왔는데, 주위에 운동 관련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즐거웠다. 방과 후 교사가 되고 싶어 이력서도 쓰고 프로그램도 개발해 발표했지만 '우리가 널 왜 써야 하냐'는 얘기를 들었다. 지방대생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에 상처를 받았다. 좌절할 무렵 학교 게시판에서 재능 기부에 관한 공고를 봤다. 한 부모 가정, 장애인, 독거노인 등을 상대로 운동을 알려주고 비만·체형 관리를 해줬다. 보잘것없는 한 뼘 지식에도 나를 선생님으로 대접해줬는데, '선생님'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희열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 이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을 정도로 봉사활동에 꽂혀서 3년을 보냈다. 사회에서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나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이거다 싶었다."

―마침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인가.

그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한다. 유명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와 협업 모습. / 재미어트


"군대 다녀오고 계속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녔을 정도로 철이 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도 몰랐고. 그런데 누군가에게 운동을 알려주고 싶어 시작한 블로그가 적게는 하루 5000명에서 많게는 10만 명까지 접속할 만큼 잘됐다. '아, 내 콘텐츠가 먹히는구나' 하고 자신감이 붙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사무실도 구했다. 방음이 안 돼 계란판 300장을 구해다가 벽에 붙여야 할 정도로 허름했지만 너무 좋았다.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행복했다. 나는 살면서 코피 한번 안 흘린 사람인데, 내 '열정의 증거'를 확인한 것이니까."

―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힘콩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얻자 여러 운동기구 제조업체에서 제안을 받았다. 모델도 하고, 콘텐츠도 제작해달라고 했다. 키도 작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닌데 나 같은 사람한테 모델료를 주니 신기했다. 또 운동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100시간도 떠들 수 있으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어리기도 했다. '남자는 의리'라는 대표 말에 혹해 계약서를 썼는데, 결국 그때 만든 콘텐츠와 영상의 저작권이 다 넘어갔다. 1000만원에 가까운 빚도 따라왔다."

―'힘콩'의 위기 극복법은.

"그때 나이가 스물넷. 창피하고 막막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빚을 지는 사람들은 죄다 사장이고, 뭐가 됐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더라. 발상의 전환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내 운동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제품으로 구현되어 판매까지 된 것에 자신감을 얻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시장조사'를 한 거라 생각했다. 악착같이 프리랜서로 일해서 1년 만에 돈을 다 갚았고, 창업경진대회에 나가 운동 관련 아이템으로 1등을 했다. 2등을 한 친구(개발자)와 함께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다시 은행으로 갔다. 이번엔 1억원의 빚을 안기로 했다."

―나락의 순간에 '힘콩'을 다시 일으킨 것은.

"1억원 대출을 받아서 '힘콩 철봉'에 투자했다. 처음에 100대를 발주했는데, 불량률 50%에 배송도 두세 달이 걸릴 만큼 형편없었다. 하지만 재미어트 식구들이 '괜찮아'라며 이해해주고, 피드백을 주고 보완한 결과,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한 달에 50만원 하는 서버 유지비도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우리의 절박한 사정을 설명하고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자기가 '리틀 힘콩'이라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용돈을 모아 20만원을 보내왔다. '너 때문에 꼭 성공할 거야'라고 다짐했다. 그 뒤 우리가 출시한 애플리케이션은 홈트레이닝 부문 1위에 올랐고, 철봉은 1만 대를 팔았다. 지금도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우리 콘텐츠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절대 포기는 하지 않을 거다."

100일의 다이어트보다, 100일의 운동 습관을


―회복 탄력성의 비결은.

"사업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지만,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라고 생각한다. 바닥을 몇 번 쳐봤기 때문일까. 어느새 최악의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웃음). 위기가 오면 버릴 건 버리고, 다시 도전하면 된다. 무서울 게 없다."

―플랫폼에 기반한 창업이 대세다.

"흔히들 사업하는 일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에 비유한다. 나도 어린 나이에 대출을 받거나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창업 자체는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고, 실패해도 최선을 다했다면 쌓인 내공은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

―'힘콩'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는 계속 유효할까.

"아직은 유효하다. 나도 한때 좋은 학교를 나오고, 집안이 빵빵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당하다'며 비교만 하면 발전이 없다. 쿨하게 인정하자.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분명 그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공부가 부족하면 다른 부분에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몰리고 발전의 기회도 온다. '난 안 될 거야'라며 지레 포기하기엔 당신의 청춘이 너무 아깝다."

―'힘콩'의 최종 목표는.

"재미어트를 체육 교과서로! 내가 만든 운동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다.'유석종 재단'을 만들어 일반인과 장애인, 노인과 아동 모두의 건강한 운동 습관을 아우르겠다."

―주말이다.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

"지금 당장 이불 속에서 나와 운동을 시작해라. 무엇이든 좋다. 푸시업, 스쿼트 등 종류에 상관없이 하나라도 정해 매일 10번씩이라도 반복해보라. 자신감도 생기고, 삶의 질도 올라갈 거라 보장한다. 옆에서 '재미'는 우리가 불어넣어 주겠다. 힘콩도 한때 100만원짜리 옷을 입어도 태가 안 나는 '몸꽝'이였지만 하루 수백 개의 턱걸이를 하며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는 습관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며 "100일의 다이어트보다 100일의 운동 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그가 아버지에게 골수이식을 했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 세상을 훈훈하게 달궜다. "드라마에서 골수이식을 너무 무섭게만 묘사하는데, 해보고 나니 별거 없었다"고 했다. 의사의 권유로 일주일만 쉬고 다시 덤벨을 들기 시작했다. "운동을 멈췄던 지난 1주일이 인생에서 가장 좀이 쑤시고 답답했던 시간"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한번 들인 습관은 무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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