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빨고 만들었나? '애시드 재즈'의 거장, 자미로콰이

홍장원 2018. 11. 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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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키에서 테크노까지 장르 넘나들며
짬뽕음악으로 글로벌 거장 자리매김
리더 '제이케이'의 다재다능함 돋보여
'MTV 뮤직비디오상' 휩쓸기도
[스쿨오브락-82] '애시드(acid)'의 사전적인 의미는 '산성의' 혹은 '신' 정도가 되겠다. 덜 익어 신 과일이면 애시드 프루트(acid fruit)이라 표현하는 식이다. 수소이온농도지수가 7.0 이하여서 청색 리트머스를 붉게 변화시키는 것 역시 산성(acid)이다. 알카라인(alkaline)의 반대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애시드가 음악계로 넘어오면 사전적인 의미와는 또 다른 뜻으로 해석되게 된다. 사실 애시드란 뜻 자체에도 단순히 '산성'과 '신'을 넘은 새로운 뜻이다. 마약의 일종인 LSD를 가리키는 은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LSD는 1960~1970년대 히피의 상징 같은 약물이라 할 수 있다. 시공간을 극단으로 왜곡시키는 경험을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히피들은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환각상태에서 쓰여 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작중 주인공이 키가 커졌다 작아지고, 말을 하는 동물들을 만나 기이한 경험을 하는 모든 것들이 LSD를 복용한 이후 환각상태와 놀랄만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LSD를 빨고 만든 음악이 '사이키델릭 록'이었는데, 뮤지션들은 음악에 창조성을 불어넣을 요량으로 LSD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 LSD 예찬론자는 LSD를 하면 '음악이 눈에 보인다'며 창조성의 영감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음표가 음의 높낮이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로 보이고, 머리 안에 기발한 악상의 연주곡이 불쑥 튀어나오는 등 제정신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묘한 음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루이스 캐롤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LSD 예찬론자가 가장 사랑하는 동화였는데, 오죽했으면 이 동화를 모티브로 노래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1967년 사이키델릭 록의 대표주자였던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화이트 래빗(White Rabbit)이 주인공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One pill makes you larger, and one pill makes you small(알약 하나를 먹으면 거대해지고 알약 하나를 먹으면 작아져)

And the ones that mother gives you, don't do anything at all(엄마가 준 약은 아무런 효과가 없지)

Go ask Alice, when she's ten feet tall(앨리스 키가 10피트로 커지면 앨리스 한테 가서 물어봐)

And if you go chasing rabbits, and you know you're going to fall(토끼를 쫓다가 떨어질 것 같으면 토끼한테 말해)

Tell 'em a hookah-smoking caterpillar has given you the call(물담배를 피우는 애벌레가 널 부른다고 말이야)

And call Alice, when she was just small(엘리스가 작아지면, 앨리스를 불러)

When the men on the chessboard get up and tell you where to go(체스판 위의 남자가 일어나 갈 곳을 알려주고)

And you've just had some kind of mushroom, and your mind is moving low(니가 어떤 버섯을 먹고, 니 정신이 몽롱해지면)

Go ask Alice, I think she'll know(앨리스한테 물어봐, 내 생각에 걔는 알고 있거든)

When logic and proportion have fallen sloppy dead(논리와 균형 감각이 엉망이 되고)

And the white knight is talking backwards(백기사가 말을 거꾸로 하고)

And the red queen's off with her head(붉은 여왕의 목이 잘리면)

Remember what the dormouse said(쥐가 말한 걸 떠올려봐)

Feed your head, feed your head(머리에 먹을 걸 주라고, 머리에 먹을 걸 주라고)

후략

대놓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마약 경험으로 묘사한 가사다.(읽어보면 그럴 듯한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하지만 루이스 캐롤이 마약 중독자였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소설속 그의 묘사가,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이름 모를 약을 벌컥벌컥 마시는 행동 등이 뾰족한 시선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1960~1970년대는 마약과 록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놓고 사이키델릭록 혹은 애시드록이라 불렀다. 반복되는 몽환적인 리프, 최면에 빠지게 하는 듯 한 주술적인 보컬 등이 애시드록을 구성하는 요소였다(그 유명한 비틀스나 롤링스톤즈도 한때는 사이키델릭록을 했다. 시대를 점령한 주류 음악이었다).

하지만 소위 '약 빨고 만든 음악'을 언제까지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렬했던 히피의 시대가 끝나고 애시드록은 시대의 뒷길로 퇴장하고 있었고, 단지 그들이 남긴 리프와 음악성만 '프로그레시브록'이 계승해 족보가 끊어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애시드록, 사이키델릭록이 남긴 충격이 워낙 컸기에 이후로도 '약을 하지 않은 채'로 몽환적인 리프를 주 무기로 내세우는 밴드는 속속 나오기 시작했고, 대중들은 그들을 두고 여전히 '사이키델릭록을 하는 밴드'라는 평가를 내려주었다. 한국으로 치면 산울림이나 델리 스파이스, 국카스텐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한때 록음악을 넘어 시대를 대변했던 물줄기였던 애시드록은 록의 외피를 넘어 인접 장르와도 활발하게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 중 재즈의 느낌을 내는 음악과 결합한 것이 '애시드 재즈'다. 그리고 애시드 재즈의 대표주자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는 아마 자미로콰이(Jamiroquai)라 할 수 있겠다.

자미로콰이는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밴드다. 많은 사람이 1인 밴드로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상 밴드의 리더이자 주춧돌인 제이케이(Jay Kay)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형태로 운영되기에 그럴 만도 하다. 지금껏 자미로콰이를 거쳐 간 일원만 줄잡아 10여명에 달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제이케이와 제이케이의 세션이 존재한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른다. 자미로콰이는 지금까지 6장의 앨범을 냈는데 그중 초기 3장의 앨범이 전형적인 애시드재즈 범주에 들어간다. 자미로콰이표 애시드재즈의 특징은 단연 펑키(Funky)함과 그루브(Groove)함이라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데뷔한 게 1992년, 전성기를 찍은게 20년도 더 된 1996년인데 지금 음악을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봐도 촌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멜로디와 화면 연출을 구상했는지 감탄이 날 정도다. 1992년 마이너레이블에서 웬유고나런(When You Gonna Learn)앨범을 내고 '될 성부른 나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자, 돈 냄새를 맡고 찾아온 소니뮤직이 자미로콰이에게 장기 계약을 제시한다. 쉽게 비유하면 막 마이너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유망주를 싼값에 장기계약으로 묶어놓은 셈이다. 그리고 자미로콰이는 '긁지 않은 복권'에서 '긁어서 대박이 터진 로또'로 신분상승을 시작하게 된다. 1994년 나온 더 리턴 오브 더 스페이스 카우보이(The Return of the Space Cowboy)는 영국에서 대박이 났다.

이름 그대로 제이케이는 우주에서 떨어진 카우보이였다. 카우보이모자 대신 익살스런 모자를 쓰고 나와 '이게 바로 세련됨이란 것이다'라고 훈계하는 태도로 관객을 열광시켰다. 댄서 출신이었던 그는 무대를 휘저으며 엇박을 타는 스텝으로 애시드재즈의 세련됨을 추가했고, 타고난 미성의 목소리 역시 흠잡을 데 없는 것이었다. 댄서로 시작해 보컬로 넘어간 그는(그렇게 보기에는 지나치게 노래를 잘했지만) 특유의 물 흐르는 듯 한 보컬로 당대 최고의 감미로운 보컬로 군림했다. 애시드재즈 특유의 몽환적인 기타리프와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여기에 제이케이 특유의 랩까지 잘 비벼진 진수성찬에 청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특정 장르에 국한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이어폰을 타고 청자 귀를 간지럽혔다. 초대박은 1996년 나온 다음 앨범 트래블링 위드아웃 무빙(Travelling Without Moving)에서 완전히 터졌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가 자미로콰이에 주목했다. 당시 "나 자미로콰이 듣는다"는 선언은 글로벌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섹시한 음악 조류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걸 의미했다. 쉽게 말해 '나 음악 좀 듣는 사람이다. 글로벌 음악 조류를 정확히 이해하는 선구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사인이었다.

트래블링 위드아웃 무빙에는 코스믹 걸(Cosmic Girl)과 버추어 인새니티(Virtual Insanity)로 대표되는 '투톱'이 실려 있었는데, 특히 버추어 인새니티의 인기는 폭발적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아마도 1996~1997년 MTV에서 가장 많이 틀어댄 곡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당시 케이블방송 붐을 타고 한국에도 기세를 떨친 MTV 방송망을 타고 자미로콰이의 인기는 한국에도 본격 상륙했다. 당시 자미로콰이류(流)의 음악은 한국에서는 전혀 시도된바 없는 장르였다. 음악 마니아를 상대로 자미로콰이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오죽하면 자미로콰이를 롤 모델 삼은 '클래지콰이'란 밴드가 훗날 한국에서 나와 인기행진을 벌였을 정도다). 버추어 인새니티 뮤직비디오는 '움직이지 않고 여행한다'는 앨범 이름을 영상으로 구현한 수작이었다. MTV에 주구장창 틀어댄 이 뮤직비디오는 끝내 1997년 MTV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의 영상상, 최고의 특수 효과상, 최고의 촬영상, 최고의 혁신상 등을 따내는 기염을 토한다.

Oh yeah, what we're living in let me tell ya

(오 예~,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이게 뭔지 알아, 내가 말해주지)

And it's a wonder man can eat at all when things are big that should be small

(작은 것이 크게 되었을 때 먹어치워 버리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지)

Who can tell what magic spells we'll be doing for us

(우리가 우리를 위한 마법을 부리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And Im giving all my love to this world only to be told

(나도 내 사랑을 이 세상에 모두 쏟고 있어, 들어봐)

I can't see I can't breathe

(볼수 없고, 숨도 못쉬고..)

No more will we be

(더 이상의 우리는 없을 거야)

And nothing's gonna change the way we live

(이런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어)

cos we can always take but never give

(우리는 받을 줄만 알지 절대 내주는 일은 없거든)

And now that things are changing for the worse

(상황은 더 나빠지는 쪽으로 변하고 있어)

See, it's a crazy world we're living in

(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쳤어)

And I just can’t see that half of us immersed in sin

(우리 중의 절반이 죄악에 물들어 있는 걸 볼 수 없어)

Is all we have to give these

(이게 우리가 하는 것의 전부일까)

Futures made of virtual insanity

(미래는 가상의 미친 짓에 달렸지)

now always seem to, be governed by this love we have

(근데 그건 우리가 하는 사랑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여)

for useless twisting of our new technology

(쓸데없이 뒤틀린 쓸데없는 새로운 기술을 위해서 말이야)

Oh, now there is no sound for we all live underground

(오, 근데 지금 우리처럼 밑바닥을 위한 얘기는 없네)

And I'm thinking what a mess we’re in

(우리가 얼마나 거지 같은 곳에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

Hard to know where to begin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수도 없지)

If I could slip the sickly ties that earthly man has made

(만약 인간에게 부여된 짜증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And now every mother, can choose the colour of her child, that’s not natures way

(그리고 모든 엄마가 자식의 색깔을 결정할 수 있다면, 아 그건 자연적이지 않네)

후략

가사의 절반도 소개하지 않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 그게 자미로콰이식의 문법이다. 그리고 'Y2K'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떠들어댔던 세기말을 맞아 자미로콰이의 이같은 초현실주의적인 가사는 청자의 심장을 파고 들었다. 비유하자면 껄렁해보이는 히피스타일의 동네 찌질이가 잔망스런 스텝을 밟으며 말도 안되는 내용을 지껄어대며 소란을 피우는 모습이다(물론 제이케이는 다재다능한 천재에 가깝다) 이런 자미로콰이의 스타일은 20년전의 불안한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것이었다. 영국을 넘어 전세계가 자미로콰이에 공감한 이유다.

세 번째 앨범으로 대박을 친 자미로콰이는 새로운 세기를 전후로 주무기를 바꾸는 결단을 내린다. 장기였던 애시드 느낌을 살짝 내려놓고 테크노를 빈자리에 채워넣는다. 그렇게 나온 네번째 앨범이 1999년 싱크로나이즈드(Synkronized), 이어 나온 어 펑크 오디세이(A Funk Odyssey, 2001년)다. 2005년 나온 다이너마이트(Dynamite)에 실린 세븐 데이즈 인 서니 준(Seven Days in Sunny June)은 포크와 테크노를 결합하는 독특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2010년 록 더스트 라이트 스타(Rock Dust Light Star), 2017년 나온 오토메이션(Automaton) 등으로 활동이 이어지는데 싱글 오토메이션(Automaton)은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의 고 웨스트(Go west)가 연상될 정도로 테크노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시기에 따라 자미로콰이 음악에 찍혀 있는 방점은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랩과 보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제이케이의 아슬아슬한 미성과 박자를 가지고 놀며 늘였다 줄였다하는 미려함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자미로콰이는 이 두 가지를 축으로 본인의 색깔을 확실하게 삼았기 때문에 장르가 변한 것이 경우에 따라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일관성을 자랑한다. 특유의 '약 빤 느낌'도 앨범마다 농도차이가 있을 뿐 한번도 거세된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장르의 구분이란 낡은 공식 위에 자미로콰이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장르를 넘나들며 가지고 놀 만큼 재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자미로콰이는 한국에도 여러 차례 왔다. 2008년을 시작으로 2012년, 2013년 등 방한 공연을 세 번에 걸쳐서 했다(2017년에도 1월에 공연공지가 떴으나 5월, 공연을 임박해 제이케이 건강이 악화되며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언제 또 올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내한공연 시 한국 팬 특유의 '떼창'과 '앙코르 선언'이 거셀 것만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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