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따뜻한 공간이 암을 치유한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18. 11. 13.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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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유리로 안과 밖 연결되는 자연 친화적 癌 치유 센터.. 영국·홍콩 이어 도쿄서도 문 열어자원봉사·기부 결합해 환자 상담·명상 프로그램 운영.. 희망 북돋고 불안 줄여 치유 도와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일본 도쿄서 바다를 메워 만든 신도시 도요스, 옛 항만 근로자 거리에서 대규모 복합상업단지로 변했다. 고층 건물과 주상복합 아파트, 컨벤션센터가 비켜간 한적한 곳에 시골 전원주택 분위기의 단층집이 놓여 있다. 결이 보이는 나무 기둥이 지붕을 받들고, 골이 있는 나무 판이 바닥을 받친다. 입구서 현관까지 편백나무 사이로 어슷어슷하게 놓인 편평한 바윗돌 발판을 밟으니, 잠시나마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다.

거실에 앉으면 통유리창으로 밖이 환히 보인다. 그 안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열린 부엌에서 내리는 차(茶) 향이 거실 테이블로 올라온다. 처음 들어섰는데도, 왠지 모를 편안함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공간 여기저기 둘·셋이 소파에 기댄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두 암 환자들이다. 이곳은 암 환자들의 힐링 공간 도쿄 '매기즈(Maggies)' 센터다.

암 생존율이 60~70%라고 하지만, 어느 나라나 암이 사망 원인 1위다. 암은 여전히 절망의 은유를 갖고 있다. 그러기에 암 치료 과정에 놓인 환자의 삶은 늘 불안하고, 미래는 쭉 불명하다. 낫건 낫지 않건 간에…. 병원 의료진이 아무리 잘해줘도 근본은 치료 집중이다. 설명은 수치와 퍼센트 나열이 되기 십상이다. 위로를 더하고, 근심을 나눌 암 환자들에게는 나름의 힐링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매기즈 센터다.

1993년 봄, 영국 여성 매기 K. 젠크스는 유방암이 재발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녀 나이 쉰둘이다. 5년 전에는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치료받지 않으면 살 날이 두세 달 남았다고도 들었다. 새로운 항암제 임상시험을 받으며 삶을 이어갔다. 매기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살아가는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암 환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들어야 하며, 정신·심리 지지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줄이는 환경에 놓여야 한다고 봤다. 가족에게도 미안함을 느끼는 처지이기에 동병상련 환자들끼리 병원 밖에서 서로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새로운 암 치유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일 년 반을 살았고, "우리는 운(運)이 좋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 해, 매기즈 센터가 에든버러에 처음 문을 연다.

/일러스트=박상훈

공간은 환자 힐링을 목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됐다. 병원 밖이고, 자연 친화다. 태양이 실내를 비추고, 정원도 필수다. 투명 유리로 안과 밖이 연결되고, 열린 거실과 부엌이 있다. 1인 화장실을 두고, 간단한 처치실도 둬야 한다. 따뜻한 느낌의 벽난로가 있으면 백 점이다. 여기에는 "공간이 암을 치유한다"는 건축 전문가인 매기 남편의 신념이 반영됐다.

매기 온기는 사방으로 퍼졌다. 현재 옥스퍼드·리버풀 등 영국에 20개 센터가 생겼다. 바르셀로나 등 7곳이 곧 나온다. 아시아에선 홍콩에 이어 도쿄에 2016년 문을 열었다. 매기를 벤치마킹한 힐링센터도 네덜란드·덴마크 유럽 곳곳에 등장했다.

매기센터는 자원봉사와 기부, 양 날개로 움직인다. 동경의 경우, 도쿄가스(gas)가 집터를 제공했다. 유방암을 앓은 방송기자와 작가가 기부 캠페인을 벌여 30억원을 모아 건축비를 댔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를 재능 기부했다. 초대 센터장은 20여 년간 방문 간호를 하며 환자를 상담해 오다가 매기 센터 건립을 이끈 간호사가 맡았다. 한 해 운영비는 '개미 기부'와 서포터 30명이 댄다.

하루 방문하는 20여 명 암 환자와의 상담과 대화는 자원봉사자들이 한다. 이들은 주로 간호사·심리상담사들로, '암과 마주 보며 대화하는 법'을 교육받아야 한다. 암 정보 찾기, 치료 연장 결정, 자식 양육 문제, 심리 불안 등에 대해 환자 한 사람씩 암과 눈을 마주하며 친구처럼 대화하고 그들의 얘기를 천천히 들어준다. 그러면서도 자기 스스로 삶을 꾸려가도록 기운을 북돋는다. 불안과 두려움을 줄여주는 명상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직장 다니는 암 환자를 위해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는 날도 있다.

공간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바꾼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긍정적으로 움직인다. 그 에너지를 가진 힐링 공간이 암을 치유한다. 혼란스러운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암 카페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내가 안기고 누구를 안아주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가. 어떤 공간을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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