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sumer >車잡는 바이러스 '가짜 경유' 高유가 타고 여전히 판친다

박천학 기자 2018. 11. 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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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이후 年200여곳 적발

작년 의심신고 1400건 이상

불법유통 이득 커 근절 안돼

등유 단순혼합으로 쉽게 제조

고장 서서히 나타나 파악 곤란

지속적 주유땐 엔진 멈출수도

이달부터 등유 新식별제 도입

석유관리원 현장 단속도 강화

대구 북구에 사는 직장인 김 모(50) 씨는 최근 도심에서 아반떼 경유 차량을 운전하다 서서히 속도가 줄어들면서 계기판 바늘침이 흔들리고 엔진 소음이 크게 들려 화들짝 놀랐다. 그는 아반떼 경유 차량을 15만㎞ 정도 탔으며 6000∼7000㎞를 운행하면서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등 차량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러한 현상이 발생해 자동차서비스센터를 찾았다. 김 씨는 “연료공급계통 문제로 ‘가짜 경유’ 주입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센터 측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고 피해를 보상받을 뾰족한 방법이 없어 100만 원을 들여 연료 분사장치(인젝터)를 교체했다.

쏘렌토 경유 차량을 운행 중인 건설 근로자 박 모(45·서울 성동구) 씨는 “차가 언덕을 올라갈 때 속도가 감소하고 연료 필터 교체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면서 “기름을 넣을 때마다 가짜 경유를 의심한다”고 말했다. SNS 등에는 가짜 경유 주입으로 인한 중장비 건설기계 피해 의심 사례도 올라오고 있다. 가짜 경유로 매연이 많이 발생하고, 힘이 떨어져 일하는 데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가운데 가짜 휘발유는 줄어드는 반면, 등유를 혼합한 가짜 경유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가 6일부터 유류세를 인하했지만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는 재고를 소진해야 인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짜 경유 근절에는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류세 인하는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단행됐지만 당시 가짜 경유 적발 업소 수가 258곳에 달할 정도로 기승을 부렸다.

8일 한국석유관리원 소비자신고센터에 따르면 가짜 경유 의심 신고는 2014년 2287건, 2015년 2230건, 2016년 1636건, 2017년 1418건으로 집계됐다. 석유관리원이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짜 경유를 판매하다 적발된 주유소 등 업소는 2014년 289곳, 2015년 232곳, 2016년 243곳, 2017년 226곳으로 나타났다. 또 적발된 업소 가운데 알뜰주유소도 2015년 7곳, 2016년 11곳, 2017년 13곳으로 조사됐다. 석유관리원 측은 가짜 경유 주유소를 적발하면 관할 행정기관에 통보해 사업정지, 과징금 등의 행정 처분을 내리도록 하고 수사기관에 형사고발 조치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2017년 6월 사이 가짜 경유를 팔다 2차례 이상 적발된 주유소도 68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가짜 휘발유는 2014년 15건, 2015년 10건, 2016년 9건, 2017년 5건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해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가짜 휘발유도 한동안 기승을 부렸으나 2012년 가짜 휘발유 제조 주원료인 용제(시너)의 불법 유통을 추적해 관리하고 가짜 휘발유를 만들지 못하도록 시너 유통을 원천 차단했기 때문에 건수가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짜 경유는 가짜 휘발유와 달리, 이동판매차량을 이용해 공사현장 등에서 단순 혼합으로 제조할 수 있고 세금 차이에 따른 부당 이득도 많아 불법 유통 대상이 되고 있다.

경북 포항 북부경찰서는 지난 9월 가짜 경유를 판매한 대구, 포항, 경산, 칠곡 등의 주유소 업주와 공급책 7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2016년 1월부터 2017년 3월 사이 등유와 경유를 혼합한 가짜 경유 550만ℓ를 소비자에게 판매해 62억 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대구 동부경찰서도 지난 4~9월 사이 가짜 경유 5500ℓ를 제조해 팔거나 이를 구매한 농민, 건설기계 운전기사 등 10명을 최근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등유 가격이 경유보다 ℓ당 400~500원가량 싼 점을 이용해 가짜 경유를 매매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가짜 경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주유기 내부에 가짜 석유제조장치를 설치해 등유와 경유를 섞어 파는 불법 행위도 적발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5월 경기 고양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주유기에 특수 제작한 식별제 제거장치를 설치해 경유에 등유를 섞어 만든 가짜 경유 260만ℓ(시가 31억 원 상당)를 판매한 일당을 검거했다. 식별제는 경유나 등유에 부생연료유(副生燃料油) 등을 섞으면 이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화학물질로, 이 일당이 사용한 식별제 제거장치는 정수기처럼 등유를 통과시키면 식별제가 없어지도록 만들어졌다.

문제는 소비자들은 피해가 드러나기 전에는 사실상 가짜 경유를 주입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차량의 내구성 등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짜 경유를 넣었을 경우 당장은 별 증상이 없으며, 자주 넣으면 성능이 떨어지고 부품이 파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관리원이 등유 100%인 가짜 경유를 승용차에 주입한 뒤 내구성을 실험한 결과, 연료를 이송하는 고압 펌프와 연료 분사장치가 약 2만1000㎞를 주행할 경우 파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고속주행 중 갑자기 엔진이 정지해 2차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가짜 경유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근절 대책을 내놓았다. 식별제를 제거한 등유를 경유와 혼합한 가짜 경유 유통차단을 위해 제거가 어려운 새로운 식별제를 추가하는 것이다. 정유사, 수입사 등 생산·수입 단계는 식별제를 이달부터 적용했다. 또 일반대리점, 주유소, 일반판매소 등 유통단계는 2019년 5월부터 넣기로 했다. 등유에 사용 중인 식별제는 활성탄, 백토 등을 이용하면 쉽게 제거되기 때문에 식별제를 제거 후 등유를 경유와 혼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은 단속 과정에서 적발할 수 있으며 아예 식별제를 무시하고 등유와 경유를 섞어서 몰래 파는 행위도 많아 가짜 경유를 근절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석유관리원 측은 “새로운 식별제가 가짜 경유 단속에 100% 만족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장담은 못 하지만 같은 제품을 도입해 2015년부터 사용 중인 영국에서는 일정 부분 불법 유통을 보완하고 있다”면서 “가짜 경유 현장 단속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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